최상석 중소기업융합서울연합회장

내수경기가 여전히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가 수출까지 흔들리며 중소기업들이 사면초가에 직면했다. 생존의 비상구를 알려 줄 멘토가 절실한 상황이다.
[Leader] “시련 딛고 거둔 성공 젊은 기업가들에게 돌려줘야죠”
아이디어 하나만 있어도 창업이 가능한 시대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실시한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5명 중 1명이 10년 내 폐업을 우려하고 있었으며, 중소기업청 등에 따르면 경기도의 경우 6~7월 현재 800개 중소기업이 문을 닫았는데 이는 전년 동기 500여 개 대비 300여 개(60%)가 늘어난 것이다. 현실이 참담하다고는 하지만 방향타 자체가 멈춘 것은 아니다.

최상석 중소기업융합서울연합회장(61, 지오라이트 루미안 대표)은 청년 기업가들에게는 멘토로 통한다. 서울연합회 산하 28개 단위교류회를 발로 뛰어다니며 성공 DNA를 전파하는 데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융합연합회는 대기업에 비해 인력, 자본 등의 경영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이업종 간 교류 활동을 통해 핵심 역량을 키우기 위해 1994년 창립된 단체로 서울연합회는 그 산하 단체다.

최 회장은 반사 안전 제품 브랜드 지오라이트 루미안을 비롯해 서흥알이에프, 지오텍 인터내셔널, 월드플렉스알이에프, 지오솔테크 등 5개의 강소기업을 이끌고 있는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그는 국내에 불모지였던 반사원단을 제품화해 연매출 200억 원 시대를 열었으며, 2006년부터 3년간 한국무역협회(KITA)로부터 1000만 달러 수출의 탑을 받았다. 또 전 세계 300여 개국에서 연간 100억 원 이상의 수출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가 말하는 중소기업 성공의 조건은 간단명료하다. 도전과 혁신, 끈기, 그리고 상생이다.


성공하는 법, 혁신을 배워라
최 회장은 2014년 제14대 중기융합서울연합회장에 오른 직후 중소기업 CEO들에게 성공 DNA를 심기 위해 성공조찬포럼을 정례화했다.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성공을 이룬 회원사의 사례를 공유하게 한 것이다.

또 연합회가 융합과 협업의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도록 이를 전담할 조직인 회원지원분과와 융합창조분과를 만들었다. 이후 제조, 유통, 지식 서비스 등 업종 간 비즈니스가 연계되도록 회원사들의 제품, 기술, 시장 등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도 공을 들였다.

여기에 더해 최 회장은 석·박사급으로 7명의 기업 연계 전문가를 위촉해 연구·개발(R&D), 협업, 경영 지도, 정부 정책 등에 대한 컨설팅을 하도록 했다. 무엇보다 중소기업 오너들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 능동적인 혁신을 이끌도록 한 거다.

최 회장 스스로는 목표 대비 30% 정도 성과를 냈다고 자평했지만 이러한 노력을 높이 산 것은 정부였다. 2014년 9월 26일 중소기업융합 활성화를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최 회장은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그는 “대기업에 비해 인력, 자금, 기술 측면에서 열악한 중소기업이 상호간 교류 협력을 토대로 경영 자원과 핵심 역량이 기반이 된 새로운 기술과 제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바로 중소기업의 융합”이라며 “중소기업이 기술력만 가지고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무엇보다 도전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전과 혁신은 최 회장이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20대의 나이에 서흥양행이라는 회사를 창업한 뒤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시킨 동력이기도 하다. 1980년 서흥양행은 다국적기업 3M에서 재귀반사원단을 들여와 가공해서 제품을 만들던 하청기업이었다.

재귀반사원단은 입사 광선을 광원 방향으로 되돌려 주는 특수 원단으로 환경미화복, 중앙분리대 띠, 안전모, 유니폼 등번호, 소방복 등에 활용된다. 당시 이 분야에서는 3M이 독보적인 존재였으며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독과점에 대한 불만도 상당했다.

최 회장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반사원단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제품 개발에 도전해 15년 만에 결국 자체 생산력을 확보했다. 달콤한 성공이었지만 시련도 있었다.

처음 5000만 원을 투자해 2억 원어치의 제품을 생산했으나 여름 원단으로 개발된 것을 겨울이 다 돼서야 시장에 내놓게 돼 앉은 자리에서 제품을 모두 폐기할 위기에 처했던 것. 하지만 해외 전시회 등을 통해 얼굴을 익힌 노르웨이 바이어가 제대로 된 제품만 만들어 준다면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와 유럽 등에 판로를 개척하며 겨우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겁 없는 도전이었어요. 제품 개발만 하면 날개가 돋친 듯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판매가 쉽지 않았던 거예요. 지금에서야 알게 됐지만 사실 시장지배자였던 3M의 경우 경쟁 제품이 시장에 나오면 거래 업체들과 2~3년 계약을 맺고 엄청나게 가격 덤핑을 할 수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예요.” 최 회장은 당시만 생각하면 아찔한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2011년에는 바이오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지오솔테크를 설립해 또 다른 혁신을 이끌고 있다.

이 회사는 수분이나 미생물 효소 등에 의해 스스로 썩는 생분해성 수지를 만드는 곳으로 물고기를 잡는 어망, 농촌에서 사용하는 농업용 비닐, 장례식장과 요식업소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식탁보 등에서 점차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끈기가 만든 결실, 상생이 만든 보람
최 회장은 요즘 젊은이들이 영악하지만 나약한 측면도 많다고 진단했다. 최근 정보기술(IT)이나 게임 등에서 성공을 거두려는 젊은 사업가들 중에서는 사업을 꾸준히 키워 나가는 끈기를 보여 주기보다는 단기간 노력으로 너무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최 회장이 국내 시장이 전무한 반사원단을 해외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한 것은 독일 산업안전전시회 등 해외 전시회를 적극 이용하는 것이었다. “제가 무역을 전공한 이유도 있지만 제품을 알리기 위해 공을 들인 것이 해외 전시회였어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나 한국무역협회에 문의해서 해외 전시회에 적극 참여했던 거죠. 뭐, 동양 사람들이 무턱 대고 싸매고 나간다고 거들떠나 봅니까. 전시회라는 것은 무조건 3회 이상 나가야 말을 붙여요. 처음에는 가격만 물어보고 두 번째쯤엔 명함만 주고 가요. 그렇게 해서 제가 반사원단을 한국 최초로 해외에 수출할 수 있었던 거죠.”
[Leader] “시련 딛고 거둔 성공 젊은 기업가들에게 돌려줘야죠”
그의 목표를 향한 집념이 잘 드러나는 것 중 하나가 골프다. 그의 사무실 한편을 채우고 있는 게 각종 골프대회 상패였는데 그 배경에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최 회장이 골프에 입문한 시기는 1990년경이었는데 한번은 남부컨트리클럽(CC)에서 내기골프를 쳐서 70만 원을 잃게 된 것이다. 이에 그는 헤드 프로에게 매월 200만 원을 주고 골프레슨을 받았고, 골프장 라운딩도 이 헤드 프로와 나갔다. 그렇게 3년 동안 칼을 간 그는 70~80타 수준(베스트 68타)의 단단한 싱글 플레이어로 거듭났다. 이처럼 무엇이든 끈기로 돌진해 해답을 얻어 냈던 게 최 회장이었다.

그렇다면 36년간 기업을 가꿔 온 그에게 보람을 느끼게 한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묻는 기자에게 최 회장은 빙그레 웃으며 “내가 회사를 5개나 경영하게 된 이유를 아느냐”고 되물었다.
이유인 즉 거래 업체가 경영상 위기를 겪자 투자를 통해 자회사로 인수한 뒤 해당 대표에게 다시 회사를 맡겨 운영하는 곳이 월드플렉스알이에프와 지오텍 인터내셔널이었던 것. 최 회장이 상생의 방법을 모색하다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는 “‘이게 바로 상생이구나’, ‘결국 경영이든 뭐든 사람이구나’ 하고 느낀 거죠”라며 “월드플렉스알이에프는 자회사로 인수한 이후 정상 궤도에 오르며 최근 제2공장까지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최 회장은 업계에서 창업사관학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밑에 있다가 회사를 창업한 후배들만 29명에 이를 정도다. 그는 이 같은 사실이 늘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이는 혁신을 통해 업계를 이끈 선구자로서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한용섭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