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통해 마음을 자유롭게 하면 감성이 섬세해져 나도 모르는 사이 삶에 대해 깊이 느끼게 되는데, 이는 작품 활동을 위해 삶을 깊이 느끼는 예술가의 마음과 비슷한 것이다. 증상도 아니고 오히려 여행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그 슬픈 눈물을 더 즐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유롭길 원하지만 결국 내 욕망과 욕심, 질투, 분노, 불안 등에 끊임없이 사로잡히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를 향해 다가갈수록 한계도 함께 느끼기에 더 슬퍼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인생을 심각하게 살 필요는 없다. 여행 후 찾아오는 우울 정도는 잠시나마 인생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밀도 있는 행복 활동이 아닐까 싶다.
상당한 감정의 진폭, 창조의 산물
“블랙이 내 생명을 갉아 먹고 있어.”
미국의 대표적 추상표현주의 미술 작가 마크 로스코가 한 말이라고 한다. 최근에 마크 로스코 미술전이 서울에서 열렸다. 그의 대표작은 블랙이 아닌 레드. 유작이기도 한데 ‘무제 1970’이란 제목의 작품이다. 캔버스에 여러 겹으로 칠한 레드, 붉은색밖에 없다. 그 그림을 본 순간 ‘우와, 그냥 빨간색만 칠한 것 같은데 이 그림이 그렇게 유명하고 비싸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는 못하겠다. 그러나 계속 보니 무언가 심장을 뛰게 하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로스코는 이 빨간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생을 안타깝게도 스스로 마감했다. 블랙이 자신을 다 갉아먹기 전에 말이다.
로스코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중퇴한 미국 예일대에선 철학 등 인문학을 공부했다. 그래서인지 비평가처럼 자신의 미학 세계를 상세히 표현했고 그가 한 말들을 기초로 ‘레드’란 연극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작가의 상상력이 아닌 그가 실제 한 말을 토대로 한 것이라 그런지 그 연극을 보다 보면 로스코를 실제로 만나는 느낌이 든다. 친분이 있는 배우 정보석이 연극 ‘레드’의 주연을 맡아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갔었다.
연극을 보니 ‘블랙의 두려움’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는데 로스코에게 레드는 생명력의 극치, 삶의 최고조에서 느껴지는 색깔이었던 것 같다. 삶을 색깔로 느낀 것이다. 블랙은 말 그대로 블랙홀처럼 내 생명력인 레드를 빨아들이는 색깔이다. 내 삶의 절정이 시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당시 미국은 추상표현주의에 이어 앤디 워홀의 팝아트가 뜨고 있었는데, 연극을 보면 팝아트에 대한 경멸과 더불어 자신의 레드를 바라보던 대중을 빼앗아간 앤디 워홀에 대한 질투가 드러난다. 대중을 의식하지 않는 순수미술을 추구한다고 해도 결국 문화 콘텐츠는 누군가가 바라봐 줄 때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그 딜레마에 빠져 버린 것이다. 아마도 그 느낌이 ‘블랙이 로스코 자신을 갉아 먹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전시회와 연극을 보고 나니 내가 로스코인 양 약간의 우울감이 찾아왔다. 창조적 천재성을 가진 작가들의 삶을 보면 상당한 감정의 진폭이 보인다. 그것으로 인해 심리적 고통도 컸겠지만 그 덕분에 삶을 더 느끼고 그것을 창조적 작업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느낌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고.
약간의 우울감이 마음을 충전시킨다
앞의 사연으로 다시 돌아가면, 사연의 표면적인 고민은 바캉스 후유증이지만 조금 더 들어가면 ‘행복의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다. 현대인들은 부지불식간에 외부의 여러 메시지의 영향을 받아, 우리 마음에 행복의 정의가 느낌으로 설정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우울’의 반대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행복’이라는 질문이 가장 많이 나온다. 거꾸로 보면 우울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 있으면 우리가 불행하다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즐겁게 여행을 다녀왔으면 마음이 기쁘고 긍정적이어야 할 텐데 우울한 마음이 드니 황당하고 바캉스도 잘못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린 기분이 꿀꿀하고 좋지 않을 때 기분 전환을 하자고 한다. 그런데 기분 전환은 강력한 내 감정에 대한 통제심리 전략이다. 우울한 것은 불행이니 에너지를 써 억지로 기분을 좋게 만들자는 것. 가끔 사용하는 것이야 상관없지만 기분이 우울할 때마다 이 전략을 쓰면 뇌가 더 지치게 된다.
병적인 우울은 치료를 받아야겠지만 바캉스에서 느낀 자유로움 후에 찾아오는, 그리고 작가의 감성이 담긴 미술작품을 본 후 찾아오는 약간의 우울감은 내 마음에 역설적인 충전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정서이고 예술적인 창조적 감성도 풍성하게 해 준다.
“인생은 어렵다.”
어느 철학자의 말이다. 내가 잘못 살아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원래 어렵게 프로그램 된 것이 인생이란 이야기다. 그렇기에 희로애락을 번갈아 느끼는 것은 옵션이 아니라 필연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다양한 감성, 그 또한 내 취미의 재료로 삼아 감상하고 즐기는 여유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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