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국수·강명주 지지옥션 회장·가수 김장훈

가로, 세로 각 19줄의 교차점에 흑돌과 백돌을 놓는 게임인 바둑은 우주의 이치를 담고 있다고 한다. 체스 세계 챔피언을 꺾은 슈퍼컴도 바둑 고수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바둑판에 오만 가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기묘한 승부에 매료돼 평생을 바둑과 함께 살아 온 조훈현 국수와 ‘바둑광’ 2인이 지난 7월 17일 한경 머니의 특별 좌담을 위해 마주앉았다.
‘국수(國手)’ 조훈현(62) 9단과 지지옥션의 강명주(72) 회장, 가수 김장훈(48). 바둑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라면 본업을 제쳐두고서라도 발 벗고 나설 만큼 열성적인 강 회장과 김장훈이
‘팬심’으로 우상인 조 국수를 대면했다. ‘바둑과 인생’을 주제로 한 이날 대담은 서울 종로에 있는 한옥 레스토랑 민가다헌의 야외 테라스에서 이뤄졌다. 마침 무더위는 한풀 꺾이고, 산들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스쳤다. 치열한 대국, 기업, 무대 위에서의 긴장감은 내려놓은 채 한 수 한 수 바둑을 두듯 명쾌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왼쪽부터 가수 김장훈, 조훈현 국수, 강명주 지지옥션 회장.이들에게 선글라스를 쓰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취해 달라고 요청하자, 곧 실행에 옮겼다.
왼쪽부터 가수 김장훈, 조훈현 국수, 강명주 지지옥션 회장.이들에게 선글라스를 쓰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취해 달라고 요청하자, 곧 실행에 옮겼다.
조훈현 9단은 한 시대를 풍미한 승부사다. 아홉 살에 세계 최연소 프로 바둑기사가 돼 국내외 바둑대회에서 최다승(1938승)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89년 한·중·일 최정상의 기사들이 참가한 바둑 올림픽 ‘잉창치배(應昌期杯)’에서 내로라하는 세계 일류 기사들을 차례로 꺾고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하며 당시 변방으로 평가받던 한국 바둑을 세계 바둑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다. 바둑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그는 김포공항에서 종로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며 금의환향했다.

부동산경매 업체 지지옥션을 경영하는 강명주 회장과 가수 김장훈은 이날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당시 카퍼레이드를 보며 열광했던 조 국수의 ‘광팬’이라는 점. 강 회장은 “우리 세대에게 조 국수는 영웅이 아닌가”라며 “나도 그 열혈팬 가운데 한 명”이라고 말하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아마추어 4단인 그는 9년째 해마다 2억7000만 원을 들여 지지옥션배(杯) ‘여류 대 시니어 대항전’을 열고 있다. 이것을 계기로 한국 기원의 이사를 맡아, 조 국수와 바둑계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사이가 됐다.

김장훈 역시 연예계의 소문난 바둑 마니아다. 초등학교 시절 바둑 꿈나무였던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도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프로기사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하지만 가수가 된 후에도 꾸준히 바둑의 저변 확대를 위해 음양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아마추어 5단의 기력을 자랑하는 김장훈은 몇 년 전 조 국수에게 넉 점 지도기를 받아 한 집을 패한 추억이 있다. 조 국수는 “두 분(강 회장과 김장훈)의 실력이 엇비슷해 바둑을 두면 아마 굉장히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장훈이 뒤늦게 푹 빠져서 보고 있다는 tvN 드라마 ‘미생’ 이야기를 꺼냈다. 올 초 종영한 ‘미생’은 직장생활을 바둑에 비유해 풀어 낸 웹툰 원작의 드라마로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강 회장은 드라마와 더불어 윤태호 작가의 웹툰까지 섭렵했다고. 이들의 결론은 모두들 미생(未生)인 우리네 사는 인생이 바둑과 닮았다는 것. 조 국수는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복잡 미묘한 문제들을 바둑판 위의 일로 대입해서 생각하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강자인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다

강명주 회장과 가수 김장훈에게 섭외 전화를 걸었을 때 단번에 ‘좋다’는 회신이 왔다. 민가다헌에서 조우한 그들은 일단 얼싸안기 바빴는데, 이는 마치 조 국수의 팬미팅 현장을 방불케 했다. 각자의 바둑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대담을 열기로 했다. 김장훈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문을 열면서 금세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가수 김장훈(이하 김장훈): 프로기사를 꿈꿨고, 바둑을 좋아했던 제게 조훈현 국수는 인생의 스승이었어요. 30년 전쯤 한국의 바둑 실력이 한·중·일 구도에서 밀리던 시절, 일본에서 대국을 위해 건너 온 린하이펑(林海峰) 사범과 후지사와 교류단을 조 국수님이 격파하는 모습을 본 후 바둑에 광적으로 빠져들게 됐습니다. 중국의 녜웨이핑을 물리치고 잉창치배에서 우승한 뒤 금의환향하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훔친 기억도 있죠. 조 국수님 바둑만 1000판 가까이 봤어요. ‘조제비’, ‘국수’, ‘화염방살기’ 등 조 국수님의 여러 별명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전신(전쟁의 신, 戰神)’이에요.

조훈현 국수(이하 조훈현): 바둑판 위에서 하도 가열차게 밀어붙인다고 해 ‘싸움의 신’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어요. 어렸을 땐 안 싸우고 도망 다니면서도 잘만 이겼는데, 나이가 들면서 계속 잡히고 박살나니까 나도 모르게 싸움꾼으로 돌변하더군요.(웃음) 이길 수 있다면 이 악물고 이겨야죠. 고수가 갖춰야 할 싸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예의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강명주 회장(이하 강명주): 1989년 9월 5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잉창치배 결승에서 중국의 ‘바둑 황제’ 녜웨이핑과 대국하던 조 국수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해요. 겉으로는 고요해 보여도 막상 대회가 열린 현장엔 엄청난 기류가 흘렀을 것 같은데 실제 대국에서는 어떻게 마음을 컨트롤하나요.

조훈현: 경험상 대국에서의 승패는 실력 차이라기보다는 압박을 이겨 낼 수 있는 담력과 집중력의 차이가 더 큰 법이지요. 결승에서 비록 첫 판을 이긴 후 내리 2판을 졌지만, 2판이 남았고, 정신만 차리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대도 제 기운을 느꼈을 테지요. ‘어떻게 변방의 이름 없는 바둑 기사가 주눅도 들지 않나’ 하고 신기해했거나,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제 기세에 놀라 결국 수세에 몰려 바둑돌을 던졌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승부의 순간엔 의식적으로 어깨를 펴고 고개를 치켜든 채로 당당하게 걸으려고 하는 편인데 표정과 자세만 바꾸어도 얼마나 기운이 달라지는지, 놀라울 정도죠.

김장훈과 강 회장의 팬심을 담은 질문에 조 국수가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다. “고수가 갖춰야 할 싸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예의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한국 바둑의 세계화를 선두에서 이끈 명장의 기백이 느껴졌다. 이야기는 강 회장과 김장훈의 바둑 입문기로 이어졌다.

강명주: 저는 경북 울진의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딱히 하고 놀 만한 게 없었어요. 어른들 어깨 너머로 바둑을 배웠지요. 그 후 대학 땐 학보(學報)를 만드느라 바둑과 거리가 멀어졌다가 1983년 회사를 창업하면서 다시 바둑돌을 잡았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바둑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위기십결(圍棋十訣: 바둑을 두는 10가지 비결)’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죠.

김장훈: 바둑에서 배우는 경영이라…. 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한데요.

강명주: 경영학 서적을 보면 수익성과 과감한 투자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위기십결’에서 가장 강조하는 덕목은 기자쟁선(棄子爭先), 사소취대(捨小取大), 봉위수기(逢危須棄) 등으로 바로 ‘버리라’는 것이죠. 버리고 비움으로써 결국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요. 가령, 직원들이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빌딩이니 매매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꼼수’가 있다면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적은 돈을 버는 데 눈이 멀어 결국 패가망신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바둑을 오래 두다 보니 인생에서 막히는 순간이 와도 신기하게도 수가 보이고, 혜안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야 나이가 많으니 그렇다 해도 김장훈 씨의 바둑 세계도 꽤나 깊어 보여요.

김장훈: 저는 유년기에 건강이 좋지 않아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녔습니다. 밥 먹듯이 입원을 해야 했지요. 그때 병원 의사선생님이 제게 처음 바둑을 가르쳐 주셨어요. 24점을 놓고 맞바둑을 뒀는데, 그다음 날 얼떨결에 제가 이겨 버렸어요. 주변에서 “기재가 있다”고 하고, 몸도 허약하니 어머님께서는 바둑을 시키려고 하셨죠. 본격적으로 배워 보고자 바둑도장에도 나갔었는데, 오래 앉아 바둑 둘 체력마저 안 돼 프로기사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워낙 바둑을 좋아하니 1991년 가수로 데뷔한 이후에도 여러 바둑 관련 이벤트에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바둑은 제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해요. 저는 ‘오로바둑’ 등 온라인으로 바둑을 종종 두는데, 한·중·일 국기를 달고 대국하니까 지면 안 된다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한 번은 일주일 가까이 최소한의 식량만 먹으면서 바둑을 둔 적이 있어요.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어 그 이후로 바둑을 두진 않고 한국기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긴 기보(棋譜)만 훑어보고 있지요.
[Special Talk] 선글라스 낀 세 남자 바둑과 인생을 논하다
조훈현: 어린 시절에 바둑기사의 길로 접어들었다면 장훈 씨, 고생 많이 했을 겁니다.(웃음) 음악은 그 자리에서 승패가 분명하게 갈리는 장르는 아니잖아요. 다양성이 존중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바둑은 한 판 대결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데다 승리한 자만이 살아남는 ‘살벌한’ 분야이지요. 나야 이렇게 살아 왔지만, 장훈 씨는 바둑을 취미의 영역으로 남겨둔 게 다행이에요.(웃음)


인성(人性)
정상의 무게를 견뎌낼 만한 인성을 갖춰라

대화는 어느 순간부터 기(起)-승(承)-전(轉)-바둑으로 흘렀다. 한국 바둑계의 오늘을 걱정하고 내일이 더 밝을 수 있도록 미래를 도모하는 이들의 바둑 사랑은 남달랐다. 기자는 물었다. 당신들을 그토록 매혹시키는 바둑의 ‘한 수’는 무엇이냐고.

조훈현: 바둑을 두는 행위의 밑바탕엔 인성이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고 상대를 도발하거나 야비한 플레이를 해서도 안 돼요. 이기더라도 너무 기뻐해서도 안 되고 지더라도 너무 속상해해서도 안 됩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이런 단련이 돼 있지 않으면 정상으로 올라갈 수가 없어요. 정상의 무게를 견뎌 낼 만한 인성이 갖춰지지 않으면 잠깐 올라섰다가도 곧 떨어지게 돼 있고요. 참 묘하지요.

강명주: 저는 바둑 덕분에 장가 든 사람이에요. 대학 시절 고학생이었는데, 당시 만나던 여성이 부잣집 딸이었지요. 고심 끝에 무작정 처갓집을 찾아가 “지금은 빈손이지만 따님을 먹여 살릴 수 있으니 제게 주십시오”라고 했지만 장모 될 분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때 예비 장인이 제게 바둑을 두는지 물었습니다. 당시 3~4급 정도 실력이었는데, 예비 장인도 비슷한 수준이었죠. 실력이 엇비슷한 둘이 바둑을 두니까 무척 재밌었습니다. 밥상이 들어오기 전에 내리 세 판을 뒀죠. 예비 장인이 “바둑 두는 사내이니 우리 딸 마음고생은 안 시키겠다”고 허락해 주셔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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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이야, 장인어른이야말로 혜안을 가진 분이군요. 그토록 인성이 강조되는 종목이니, 누군가와 같이 바둑을 두다 보면 ‘만나면 안 되는 사람들’을 가려 낼 수가 있어요. 바둑판 위의 수를 보면 상대방의 매너를 알 수 있지요. 거기에다 바둑은 ‘룰’이 안 바뀌는데, 평생 똑같은 판이 나오지 않으니 한 번 익혀 놓으면 죽을 때까지 재밌게 놀 수 있습니다. 연예계에선 개그맨 신동엽이 바둑을 좋아해요. 둘 다 승부욕이 강한 편인데, 동엽이는 저보단 실력이 조금 부족해 밤새 치킨 30마리를 ‘털리고’ 간 적도 있어요.(웃음)

강명주: 특히 아이들이 어렸을 때 바둑을 배워 두면 두뇌 발달에도 도움이 되고 예의 바른 성인으로 성장한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바둑의 저변 확대가 되지 않고 있어 걱정입니다. 올해 여섯, 일곱 살인 손주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런 어린아이들마저 사교육을 받느라 시간 내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합니다. 아무렴 애들이 기업 회장인 저보다 더 바쁘겠습니까.(웃음) 저는 요즘 중국을 보면 무섭습니다. 그들이 바둑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중국에서는 바둑 실력만 뛰어나면 좋은 대학교에 골라서 입학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꿈같은 얘기죠. 일본 사람들은 과거 바둑을 좋아하다가 지금은 한·중·일 3국 중에서 제일 뒤처지고 있죠. 머지않은 미래에 더 쇠락할 것으로 봅니다. 바둑을 좋아하는 민족은 흥하고 싫어하는 민족은 쇠퇴할 거란 예측이 틀리지 않다고 봐요. 바둑은 지난 수천 년간 동양의 지혜를 응축한 인문학이에요.

김장훈: 강 회장님, 저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세돌-최철한의 뒤를 이어 한국 바둑계를 이끌어 나갈 만한 친구들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바둑이 유망 스포츠로 꼽히던 30년 전만 해도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면 신문 1면에 등장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단신으로 처리되는 지경이니 상대적으로 국민적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요. 그래서 저는 홍보대사로 ‘반크(사이버 외교사절단)’의 활성화를 위해 뛰었던 것처럼, 어린 자녀를 둔 저의 팬층을 대상으로 바둑의 장점을 역설해 볼 생각입니다. ‘세계지도 동해 표기’ 등 사이버 외교사절단 활동이 청소년들에게 좋은 교육 수단이 될 것이라고 홍보하고 다닌 덕분에 1999년 설립 초기 3만 명이었던 반크 회원은 현재 약 14만 명으로 늘어났지요. 독도에서 바둑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그땐 조 국수님, 강 회장님께서 꼭 나와 주셔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발의가 된 만큼 한경 머니에서도 반드시 취재해 주셔야 해요.

조훈현: 물론입니다. 그 문제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죠. 저는 2009년 온라인 바둑게임 ‘바투(batoo)’에 뛰어들어 젊은 친구들의 바둑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키고자 한 적이 있어요. 비록 실패했지만,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올림픽 때는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도록 최선을 다해 볼 겁니다. 바둑을 전국체전의 정식 종목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고요.


공피고아(攻彼顧我)
상대를 공격하려면 먼저 자신의 허점을 살펴라

8세기 중엽 당나라 현종은 왕과 바둑 대적을 할 수 있는 최고수를 위한 ‘기대조’라는 벼슬을 두었다. 기대조인 왕적신이 지은 바둑을 두는 10가지 비결인 ‘위기십결(圍棋十訣)’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살이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하물며 이들 바둑광들이야 오죽할까.

조훈현: 한 가지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앞서 말한 ‘바투’에 처음 뛰어들 때 저는 무척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국수가 체통 없는 짓을 한다’, ‘돈에 환장했느냐’ 등 비난이 쏟아졌죠. 당시 바둑 인구는 계속 줄고 승승장구하던 한국 바둑은 중국에 추월당할 위기에 몰려 있었죠. 젊은 사람들이 바둑을 외면하니 바둑이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악수(惡手)’를 둔 셈입니다. 바둑 격언에는 ‘묘수(妙手)를 잘 두는 것보다 악수를 두지 않아야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둑에서는 악수는 절대로 두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인생은 다릅니다. 악수인지를 알면서도 놓아야 할 때가 있어요.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을 때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이지요. ‘바투’는 결국 실패했지만 좋은 시도였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생각과 행동이 반드시 틀렸다고 볼 수 없어요.

강명주: 신념이라는 말이 정말 와 닿습니다. 저는 ‘사소취대( 捨小取大)’의 뜻을 참 많이 생각합니다. 9년 전 바둑계가 많이 기울어졌지요.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 대항전’을 열며 연간 2억7000만 원가량의 비용을 투자한 것은 오히려 회사에 플러스 요인이 됐습니다. 스폰서십을 하기 전 지지옥션을 아는 국민들이 10~20%였다면 지금은 70~80% 정도 될 정도로 큰 홍보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저희 계열사 중 자산운용사도 있는데, 자산운용사는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입니다. ‘바둑을 후원하는 회사는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시장에 퍼지면서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동수상응(動須相應)’은 행마를 할 때는 이쪽저쪽이 서로 연관되게, 서로 호응을 하면서 국세를 펴나가라는 뜻이죠. 사업에서도 직원과 경영자, 투자자와 경영자 간의 관계가 참으로 어려우면서도 중요하지요. 항상 우군과 상대방 돌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조화와 능률을 극대화시킬 최적의 지점을 찾습니다.

김장훈: 저는 바둑을 두면서 수없이 패배를 인정해 봄으로써 인생을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기원에서 바둑을 두다 연달아 패배한 적이 있습니다. 승부욕이 남다른 저 같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잘 못 견딥니다. 그렇지만 바둑에선 억지로 누르는 척이라도 해야 하잖아요. 척을 여러 번 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요. 모든 일에 있어 실수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성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조훈현: 장훈 씨, 정말 멋진 말이에요. 바둑에 복기(復棋)가 있는 이유도 바로 그거예요. 승자와 패자가 머리를 맞대고 대국 내용을 되짚어 보는 복기는 예의이기도 하지만 그 편이 효율적이기 때문이죠. 패자는 어떻게든 자기가 패한 원인을 알아내야 하는데 집에 가서 혼자 끙끙거리는 것보다는 앞에 있는 사람한테 물어 보는 게 훨씬 간단하죠. 나도 숱하게 경험했지만, 패자가 억울함과 분함 등의 괴로운 감정을 누르고 복기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복기를 해야 하는 건 그 과정을 거쳐야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정확히 알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복기를 잘해 두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가 있고 좋은 수를 깊이 연구해 다음 대국에 활용할 수 있죠. 아파도 뚫어지게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하는 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실패를 바로 볼 수 있어야 되풀이하지 않아요.

강명주: 저도 ‘실패’라면 할 얘기가 많아요. 젊어서는 공부가 어렵고 커서는 사업이 어렵더이다. 대학원 졸업 후 처음 뛰어든 석유곤로 제조업이 1년여 만에 제품 불량으로 망하면서 많이 쓰라렸습니다. 그래도 그 실패의 원인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기반성을 할 수 있었죠. 그 과정을 통해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전국의 경매물건을 수집해 정리한 정보지를 만들어 재기했고 그게 지지옥션의 시초가 될 수 있었죠.

김장훈: 개인적으로는 상대방을 공격하려면 먼저 자신에게 허점이 없는가를 살피라는 의미의 ‘공피고아(攻彼顧我)’를 좋아합니다. 가수이면서 독도, 위안부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다 보니 ‘소셜테이너’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누군가를 향해 비난의 발언을 할 땐 저 스스로는 모자람이 없는지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제가 나눔과 기부를 실천한다고 해서 하지 않는 사람을 비판하면 안 되죠.

한창 무르익은 대담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 국수의 다음 약속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면 아마 해가 지기 전에 마무리되지 않을 뻔했다. 기자는 마지막 질문을 해야 했다. 흔히 비유하듯, 바둑판은 인생의 축소판이 맞느냐고. 조 국수는 “세상이 바둑처럼 경쟁만 있고 1등만 살아남는 곳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다만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 스스로 영토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마지막 훈수를 했다.


이윤경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 참고 서적 ‘고수의 생각법’(인플루엔셜) | 장소 협조 민가다헌(02-733-2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