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기에는 본인 또는 배우자의 퇴직, 자녀의 독립, 만성질환, 지인의 죽음 등 예기치 못한 삶의 변화들과 마주하며 스트레스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지’ 하는 공허감이 든다면 인간관계를 한 번 되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Lifestyle Design] 은퇴자가 직장인보다 스트레스 더 받는 이유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에서 2013년 전국의 60~75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은퇴한 사람들이 현재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보다 피로감, 좌절감 등의 스트레스를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를 하면 홀가분하고 행복해야 할 텐데 우리나라의 은퇴자들은 노후 생계유지에 대한 불안감과 더불어 사회적 역할 상실로 인해 정서적 어려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년기 스트레스를 겪을 만한 여건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삶에 만족하고 행복감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국내외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 사람들은 심리적 회복탄력성(psychological resilience)이 높은 사람들이다. 똑같이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심리적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긍정적인 적응 행태를 보인다. 대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대처자원(coping resources)들이 있는데, 다양한 연구 결과에서 한국인들의 삶에 ‘인적 관계’ 또는 ‘사회적 지지와 돌봄’이 매우 의미 있는 요인들로 나타난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가족이나 친구들과 늘 함께 하고 있다는 연대감,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임을 알 때 느끼는 행복감 등이 노년기 삶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은퇴 후 생계유지도 시급한 문제지만, 누구와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중년기 우울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해소
중년기에 겪는 우울, 좌절감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 주위 사람들 또는 이웃과 내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고 느끼는 과정에서 해소될 수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 의미를 발견할 때 중년의 허무감이나 외로움도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는 시기에는 물질 지향적인 삶보다는 나와 주위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가꾸며,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사랑을 베풀며 사는 것이 행복의 열쇠다. 배우자, 가족, 친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특히 배우자와 서로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보살펴 주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또 중년기 이후에는 끊임없는 상실(loss)을 경험하는 시기이므로 이 시기에 좌절하지 않고 순항하려면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마음의 훈련이 필요하다. 신체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 몸 근육을 탄력 있게 만들듯이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서 탄력적인 마음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근력을 키워야 한다. 마음의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효과적이다. 배우자, 가족 또는 친구들과 공감할 수 있도록 자신의 대화법을 개선하고, 현재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우선적으로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다. 은퇴 후 인적 네트워크의 양적 크기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단 몇 명의 친구라도 질적으로 친밀하고,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으며,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자기 일처럼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삼성생명에서 올해 전국의 20세 이상 성인 남녀 40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세 이상 은퇴자들은 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로 ‘여행’을 꼽았다. 그다음으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은퇴자들은 ‘속죄하겠다’, ‘용서를 빌겠다’는 의견도 매우 높게 나타났는데, 중년기 은퇴를 겪고 난 후 내면적인 성찰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맺어 온 관계 속에서 응어리진 것이 있거나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냥 물 흘러가듯이 흘려보내는 것이 어떨까?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이겨낸 환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그동안 왜 그렇게 아등바등 긴장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을 경계하며 상처 받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는데 막상 아프고 보니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더라” 등이다. 더불어 내가 그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단다. 암이라는 예상치 못한 큰 역경을 겪고 난 후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때 함께 떠올리는 생각 중 하나가 자신이 죽고 난 후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먹고, 노래하고, 사랑하자(mangiare, cantare, amare)’를 인생의 모토로 삼는다고 한다. 먹는다는 것(mangiare)은 충분한 수면, 균형 있는 영양 섭취, 즐거운 식생활, 신체적 건강관리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고, 노래하는 것(cantare)은 여가 생활을 즐기고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의미한다. 사랑하며 사는 삶(amare)은 배우자, 가족, 친구들과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고, 이웃과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내가 가진 재능을 기부하며 베푸는 삶이다. 지금부터라도 이 세 가지를 우선적으로 챙긴다면 노후에 행복한 인생을 꾸려 갈 수 있을 것이다.


기획 이윤경 기자 | 글 박지숭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