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리스본 하면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먼저 떠올린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가면 파스텔 빛 거리 위로 햇살이 춤추고, 테주 강을 따라 낭만이 흐른다. 곳곳에서 대항해 시대가 남긴 유적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Healing Travel] 서유럽의 숨은 보석 리스본 대발견
리스본 & 근교 꽉 채운 2일 추천 코스
DAY 1
제로니무스 수도원-벨렝탑-발견기념비-코메르시우 광장-점심식사-리스본 대성당-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상 조르제 성-저녁식사

DAY 2
리스본에서 신트라로 출발-페나 성-무어 성-점심식사-카 보다 호카-카스카이스-저녁식사-카스카이스에서 리스본으로
[Healing Travel] 서유럽의 숨은 보석 리스본 대발견
DAY 1

travel Tip
리스보아 카드 Lisboa Card
리스본과 근교의 관광지를 무료로 입장하거나 입장료를 할인해주는 카드다. 이 카드 한 장만 있으면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탑의 입장이 무료. 리스본의 지하철과 트램은 물론 신트라를 오가는 국철 기차도 무료로 탈 수 있다. 관광안내소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가격: 24시간 18.5유로, 48시간 31.5유로, 72시간 39.4유로.


대항해시대의 재발견, 벨렝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가 대항해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손들어보시길.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리스본의 벨렝(Belem)에서 대항해시대가 시작됐다. 망망대해 너머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은 엔리케 왕자는 항해사, 지도제작자 등을 캐스팅해 원정대를 꾸렸다. 그들은 바다로 나갔고, 새로운 항로를 발견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은 콜럼버스와 마젤란을 더 알아주지만,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는 인도를, 페르두 알바레스 카브랄은 브라질을 찾아냈다. 거친 바다를 무대로 맹활약한 탐험가들이 가득 싣고 돌아온 후추 덕에 포르투갈은 황금기를 맞았고, 엔리케 왕자는 ‘해양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부와 왕위를 이어받은 마누엘 1세는 벨렝에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지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마누엘 양식을 꽃피웠다. 마누엘 양식이란 밧줄, 닻, 범선 등 대항해시대의 상징물을 모티브로 하는 화려한 건축 양식. 마누엘 양식의 결정판이라 평가받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백미는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55m의 사각형 회랑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정교한 장식에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마누엘 양식의 걸작이라면 테주 강 끝자락의 벨렝탑은 마누엘 양식의 수작쯤 된다. 드레스를 입고 강가에 서 있는 여인처럼 보인다고 해서 ‘테주 강의 귀부인’이라고도 불린다. 고깔을 닮은 장식, 동글동글한 포탑, 망루에서 바라보는 일망무제한 풍경이 관전 포인트다. 대항해시대 바스쿠 다 가마가 아프리카 항해를 떠난 바로 그 자리에는 해양 왕 엔리케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세운 발견기념비가 서 있다. 세계를 호령했던 영웅들을 조각조각 새겨 넣은 기념비에는 전성기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배어 있다. 그렇게 제로니무스 수도원, 벨렝탑, 발견기념비가 꼭짓점이 돼 벨렝의 3대 볼거리를 이룬다.


파스테이스 드 벨렝 Pasteis de Belem
[Healing Travel] 서유럽의 숨은 보석 리스본 대발견
벨렝에서 제로니무스 수도원 다음으로 줄이 긴 곳이다. 포르투갈어로는 나타(nata), 영어로는 에그 타르트 전문점이다. 그것도 제로니무스 수도원 수녀들의 비밀 레시피를 전수 받았다. 바삭한 페이스트리 안을 달걀노른자로 만든 커스터드 크림으로 꽉 채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긴 줄에 당황하지 말고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주문하자. 줄은 테이크아웃 전용이다. 갓 구운 나타에 커피 한 잔은 여행의 달콤한 쉼표가 돼준다. 리스본 스타일로 맛보려면 시나몬 가루를 솔솔 뿌려 먹을 것.

주소: Rua Belem 84-92 | 연락처: 213-637-423
영업시간: 오전 8시~오후 11시 | 주요 메뉴: 나타 1.05유로, 아메리카노 0.75유로.
알파마의 언덕을 지나는 28번 트램.
알파마의 언덕을 지나는 28번 트램.
파두가 흐르는 골목의 낭만, 알파마
알파마(Alfama)는 일곱 개의 언덕으로 이뤄진 도시 리스본에서도 가장 높은 곳이다. 1755년 리스본을 강타한 대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아 옛 모습이 오롯하다. 언덕 초입에 리스본 대성당이 있다. 레몬 빛 트램이 대성당 앞을 지나는 풍경은 엽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리스본 대표 이미지다. 대성당은 옆길로 올라야 비로소 흥미진진한 여정이 시작된다. 구불구불한 언덕을 따라 골목이 얽히고설킨 미로처럼 이어진다. 골목 안에는 알록달록한 집들이 빼곡하다. 창문마다 빨래가 바람에 나부끼고 어디선가 파두 가락이 흘러나온다. 파두(fado)란 리스본의 서민들 사이에서 생겨난 포르투갈의 민요로 제법 많은 파두 하우스들이 알파마의 골목 안에 둥지를 틀고 있다.

백만불짜리 전망을 선사하는 무료 전망대도 군데군데 있어 보물찾기 하듯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힌트는 미라도루(miradouro). 전망대란 뜻의 미라도루 표지판만 잘 따라 가면 숨은 보물 같은 풍광을 발견하게 된다. 그중 최고는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사진가들도 카메라를 들고 찾아보는 뷰포인트다. 푸른 테주 강과 오렌지색 지붕 위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상 빈센테 드 포라 수도원과 판테온의 하얀 돔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황금 비율로 어우러진다.

사람들의 어깨 위로 금빛 햇살이 부서질 쯤엔 상 조르제 성에 가야 한다. 한때 포르투갈을 점령했던 무어인(지금의 아랍인)들이 알파마 꼭대기에 지은 성이다. 성 자체보다 성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압권이다. 성벽 위에 서면 석양에 물든 리스본의 전경이 한눈에 담긴다.


travel Tip 28번 트램 타고 알파마로!
땡땡 종소리를 내며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고 빛바랜 건물 사이를 닿을락 말락 지나는 노란 트램은 리스본의 상징. 마르팅 모니즈(Martim Moniz)에서 프라제레스 (Prazeres)까지 총 서른다섯 개의 정류장을 오가는데, 주요 정류장을 미리 알아두면 요긴하다. 마르팅 모니즈에서 승차해, 알파마의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가 있는, 라르고 다스 포르타스 두 솔(Largo das Portas do Sol)이나 리스본 대성당 앞 정유소 세(se)에 내려 알파마 여행을 시작해보자. 단, 트램 안에는 관광객들의 가방을 호시탐탐 노리는 소매치기들이 있으니 주의하자.
골목의 낭만 그대로, 산투 안토니오 드 알파마.
골목의 낭만 그대로, 산투 안토니오 드 알파마.
산투 안토니오 드 알파마 Santo Antonio de Alfama
산투 안토니오 드 알파마의 허브 도미구이.
산투 안토니오 드 알파마의 허브 도미구이.
하늘이 코발트블루 빛으로 변할 무렵 골목의 낭만이 무르익는 레스토랑이다. 디귿(ㄷ)자형으로 세운 세 개 건물 중간에 레스토랑이 있어 은밀하고 아늑한 야외 공간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예약도 받지 않고 선착순으로 테이블을 내주는데도 금세 꽉 찰 정도로 인기다. 생선구이의 신세계를 맛보고 싶다면 허브 도미구이를 주문해보자. 한 입 먹을 때마다 입 안 가득 번지는 허브향이 예술이다. 야들야들한 오리고기에 촉촉한 소스와 산뜻한 오렌지를 곁들여 먹는 오리다리구이도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 편이다. 와인 리스트도 풍성하다.

주소: Beco Seo Miguel 7
연락처: 218-881-328
영업시간: 정오~오후 2시, 오후 7시~새벽 2시
주요 메뉴: 허브 도미구이 14.5유로, 오렌지와 올리브 샐러드를 곁들인 오리다리구이 15.5유로
무어 성에 오르면 페나 성과 신트라 왕궁이 보인다.
무어 성에 오르면 페나 성과 신트라 왕궁이 보인다.
DAY 2
바이런이 노래한 에덴의 동산, 신트라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신트라(Sitra)를 ‘에덴의 동산’이라 예찬했다. 바이런이 신트라와 사랑에 빠지기 전부터 포르투갈 왕족은 신트라와 연애 중이었다. 수령이 수천 년이 넘는 울울창창한 고목들 사이 수백 년의 역사가 깃든 성이 사랑의 증표다. 여행자들에겐 리스본 호시우역에서 기차를 타면 40분 만에 도착하는 가까운 낙원이다.

신트라에 가면 나무가 뿜어내는 초록의 기운에 코끝이 먼저 반응한다. 자꾸 심호흡을 하게 된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온몸으로 피톤치드가 스며드는 기분이다. 3000여 종이 넘는 나무가 살고 있어 한여름에도 리스본보다 기온이 섭씨 3~4도 낮다. 옛 왕족들이 왜 가파른 산비탈을 일궈 여름 별궁을 만들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산꼭대기의 페나 성은 페르난두 2세가 아내 마리아 2세를 위해 지었다.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만든 프로이센(현재의 독일)의 건축가 루트비히 폰 에슈테게를 초빙해 동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 알록달록한 성을 완성했다. 빨강·노랑·원색의 벽, 독일식 둥근 첨탑, 아랍풍 기하학적인 타일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페나 성에서 내려다보는 무어 성의 웅장한 풍경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산등성이를 따라 누워 있는 용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무어 성은 8~9세기경 무어인들이 지은 요새다. 성벽을 따라 걸으면 신트라 왕궁부터 멀리 대서양 바다까지 시시각각 다른 전망이 눈을 즐겁게 한다.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은 덤. 신트라는 시간을 넉넉히 잡고 페나 성부터 시작해 무어 성, 신트라 왕궁을 찬찬히 돌아보면 좋다.
바칼라우 아 브라스.
바칼라우 아 브라스.
로마리아 드 바코 Romaria de Baco
신트라 관광안내소 옆 맛과 분위기를 겸비한 레스토랑 겸 와인바다. 미모의 매니저가 미소를 흩날리며 주문을 도와주니 음식을 맛보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진다. 매니저의 강력 추천 메뉴는 포르투갈의 솔 푸드 ‘바칼라우 아 브라스(Bacalhau a Bras)’. 염장 대구인 바칼라우 살과 감자, 달걀, 볶은 요리다. 에그 스크램블처럼 보드랍고, 감칠맛이 있어 계속 먹게 되는 중독성 강한 맛이다. 여기에 가벼운 타파스 몇 가지와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주소: R. Gil Vicente 2, Sintra.
연락처: 219-243-985
영업시간: 오전 11시~자정
주요 메뉴: 바칼라우 아 브라스 12.8유로
신트라의 명물, 트라베세이루.
신트라의 명물, 트라베세이루.
피리퀴타 Piriquita
파스텔 톤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신트라의 마을을 구경할 때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피리퀴타에서 트라베세이루(Travesseiro) 맛보기다. 트라베세이루는 ‘베개’라는 뜻의 이름처럼 길쭉한 베개 모양의 페이스트리. 설탕을 솔솔 뿌린 바삭한 페이스트리 안을 달디 단 달걀 크림을 꽉 채웠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온몸에 퍼지는 달달한 기운에 몸을 부르르 떨게 되는 맛. 그래도 신트라의 언덕길을 걷느라 노곤한 오후엔 이만한 디저트가 없다. 커피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주소: R. Padarias 1/7, Sintra.
연락처: 219-230-626 | 영업시간: 오전 9시~밤 9시
주요 메뉴: 트라베세이루 1.3유로, 에스프레소 0.7유로
카스카이스 여왕의 해변 풍경.
카스카이스 여왕의 해변 풍경.
세상의 끝, 카보 다 호카
신트라 기차역 앞에서 403번 버스를 타면 카 보다 호카(Cabo da Roca)에 닿는다. 북위 38도 47분, 동경 9도 30분에 있는 유럽 대륙의 최서단이다. ‘호카에 있는 곳’, 즉 호카 곶이란 뜻의 카보 다 호카는 14세기 말까지 세상의 끝이라 여겨졌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에서 세상의 끝까지 이동하는 데는 버스로 1시간이면 충분한 셈이다.

가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다. 구불구불한 시골 길을 덜컹대며 지난다. 멀미를 유발하는 버스에서 탈출하듯 호카 곶에 내려서면 바람이 와락 달려든다. 호카(Roca)의 ‘R’를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낸 ‘ㅎ’으로 발음하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억양처럼 거센 바람이다. 옷깃을 단단히 여민 후에야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노란 꽃이 핀 언덕이 완만하게 이어지고 그 너머로 대서양이 넘실댄다. 언덕배기에는 등대가 그림처럼 서있다. 1772년 세워진 포르투갈 최초의 등대로 지금도 묵묵히 제 역할을 한다. 해안을 따라 난 산책로에서 고개를 숙이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파도가 쉴 새 없이 몰아치며 포말을 만든다.

몽환적인 풍경보다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것은 십자가가 돋은 커다란 기념비다.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기념비에는 포르투갈의 국민 시인 루이스 카몽이스(Lues de Cames, 1524~1580년)의 시구가 새겨져 있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와도 세상의 끝을 마주한 여행자들이 표정은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끝이라는 이름은 또 다른 시작임을 온몸으로 느끼는 각별한 순간이니까.


travel Tip
유럽 최서단 증명서 발급 받는 법
카보 다 호카를 둘러본 여행자들은 증명서를 발급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 갈림길에 선다. 관광안내소에 가면

‘유럽 최서단에 도착했다’는 증명서를 만들어준다. 멋들어진 손 글씨로 이름을 써주는데, 두 폭으로 펼쳐지는 큰 증명서는 11유로고, 한 폭의 작은 증명서는 5.6유로다.
세상의 끝, 카보 다 호카.
세상의 끝, 카보 다 호카.
카스카이스
카보 다 호카에서 버스를 타고 리스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를 수 있는 휴양지다. 카스카이스에는 페스카도레스, 레이냐, 콘세이사오, 두케사 총 네 개의 해변이 있는데, 그중에서 19세기 아멜리아 여왕의 개인 해변으로 쓰여 ‘여왕의 해변’이라 불리는 레이냐 해변이 제일 아담하고 호젓하다. 해변을 따라 카페와 영국식 펍, 시푸드 레스토랑도 즐비하다.


글·사진 우지경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