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림의 스타일이 있는 식탁

[Antique Salon] 카페의 오리진, 커피하우스와 티가든
얼마 전 10년가량 쓴 커피 기계가 탈이 나서 서비스센터로 보냈다. 열흘 정도 커피 기계 없이 생활했는데 그 불편함이 생각보다 훨씬 컸다. 이토록 내가 커피에 중독됐던 걸까 하고 반문할 정도로 빈자리가 아쉬웠다.
[Antique Salon] 카페의 오리진, 커피하우스와 티가든
오늘날 우리들이 즐겨 마시는 생필품이 된 커피가 새로운 음료로 폭넓게 확산된 것은 프랑스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 솔리만 라카 터키 대사가 부임한 1669년 이후였다. 당시 사람들은 초콜릿의 씁쓰레한 맛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고 차 또한 접하고 있었던 터라 커피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짙은 아로마 향을 지닌 검은 음료는 곧 사교계의 총아가 됐다.
스털링 티캐디스푼 노르웨이(빈티지).
스털링 티캐디스푼 노르웨이(빈티지).
1689년 명예혁명 후 영국은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 부처가 즉위하게 된다. 네덜란드 총감이기도 했던 윌리엄 3세의 고국인 네덜란드에서 높은 도수의 진이 수입됐고, 저렴하고 독한 진으로 인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알코올 중독자가 만연하게 됐다. 이에 국가는 주류를 규제했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커피하우스가 생겨나 성행하게 됐다. 커피하우스에서는 커피뿐만 아니라 차, 초콜릿, 셔벗 등의 음료와 찻잎, 설탕 등도 허가를 받아 판매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미국에서 수입된 새로운 기호품인 담배도 즐겼는데, 먼 나라로부터 온 새로운 음료나 기호품에 둘러싸여 이국적인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유럽 상류층 사교의 장, 커피하우스
1650년 영국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옥스퍼드에 개점했고 영국에 이어 프랑스 파리에도 1680년에 이탈리아 출신 프란시스코에 의해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1700년경에는 런던에 1만수천 개의 커피하우스가 개점할 정도로 급속히 유행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곳은 모든 계층의 남자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곳으로 자유롭게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가 됐다. 당시 런던 사람들은 하루에 한 번 이상 이곳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며 뉴스를 교환했고, 신분이나 경제력 차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모인 사람들끼리 비판과 토론에도 열심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영국의 언론과 문학, 정치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커피하우스가 정치 토론의 장이 되자 위협을 느낀 영국 정부는 1675년 커피하우스 폐쇄 법령을 발표했으나,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커피하우스는 더욱 성행하게 됐다. 커피하우스마다 각기 특징이 있어서 각자 기호에 맞는 곳에서 모임을 갖게 됐다. 예를 들어 상인들은 로이드, 개러웨이에서, 작가나 문예 애호가는 윌, 바튼 등의 커피하우스에서 주로 모임을 가졌다. 추구하는 것에 따라 만남의 장소가 달랐던 커피하우스는 근대 문화를 여는 새로운 장소가 됐다.
상아 꼭지의 스털링 티포트(1830년).
상아 꼭지의 스털링 티포트(1830년).
주로 도심에 있으면서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커피하우스가 쇠퇴하자 남녀가 함께 차를 즐길 수 있는 장소인 티가든이 1730년경에 영국에서 생겨났다. 티가든은 넓은 정원을 산책하면서 차를 즐길 수 있도록 런던 교외의 전원지대에 만들어졌다. 티가든 안에 새워진 티하우스에서는 버터 바른 빵, 차와 커피, 핫초코 등의 음료를 함께 제공했다. 커피하우스와 달리 신분과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라도 입장할 수 있었다. 낮에는 아름다운 정원을, 밤에는 화려한 전등 빛이 수놓아진 산책길을 어린 자녀들과도 함께 거닐 수 있었기에 가족이 즐기는 장소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또한 티가든의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열리는 연주회, 불꽃놀이, 차와 함께하는 무도회 등은 서민들의 오락의 장으로서 큰 사랑을 받게 됐다. 라넬라 티가든에서는 1764년 당시 여덟 살이었던 모차르트가 연주회를 열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문양이 아름다운 빅토리안 시대 스털링 티캐디.
문양이 아름다운 빅토리안 시대 스털링 티캐디.
가정 내 차 문화 발달, 도자기 개발로 이어져
상류층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동양의 차 문화를 중산층 이하의 여성들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가정에서도 차를 더욱 많이 소비하게 됐다. 이러한 티가든의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저택에서도 자연을 즐기며 티타임을 즐기는 영국인들이 급증했다. 정원을 가꾸는 원예가 인기를 끌었고 차와 차 도구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졌다. 영국 앤 여왕의 시대였던 1709년 서양 최초의 백자가 독일의 마이센에서 제작됐고 이것은 영국의 도공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영국의 도자기는 연구와 발전을 거듭해 1748년 동물의 뼛가루를 섞어 만드는 본차이나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이렇게 구워진 도자기는 부드럽고 투명도가 높으며 독특한 반짝임이 있었다.
영국 앤슬리 실버 오버레이 티잔(아트 앤 크래프트).
영국 앤슬리 실버 오버레이 티잔(아트 앤 크래프트).
이 기술은 영국 도자기 업계에 크게 공헌했고 이즈음 손이 뜨겁지 않도록 손잡이를 붙인 찻잔이 제조됐다. 비로소 서양인들은 오늘날 찻잔의 모습인 손잡이 달린 잔으로 직접 차를 마시게 됐다. 서양인들은 그 이전에는 손잡이가 없는 티 볼에 홍차를 마셨다. 처음에 중국으로부터 차와 찻잔이 수입되면서 그들의 차 마시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했다고 볼 수 있다. 뜨거운 찻잔을 직접 만지면서 차를 마시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 서양인들은 찻잔 받침에 홍차를 덜어서 마시기도 했다.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찻잔 받침 중에서 유난히 오목한 모양의 받침은 모두 이런 용도였다.
빅토리안 시대의 프랑스 티컵(1884년).
빅토리안 시대의 프랑스 티컵(1884년).
17세기, 사람들은 이국적인 정취 속에서 정보 공유를 위해 커피하우스에 모였고, 18세기 사람들은 레저 문화의 효시로서 티가든을 드나들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비즈니스 혹은 일상의 여유를 위해 카페를 찾고 그곳에서 그 옛날 상류층들이 즐겼던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커피 한 잔, 티 한 잔을 앞에 놓고 치열하게 토론을 펼쳤던 17, 18세기의 사람들처럼 그리 한가로운 삶을 누리지는 못하더라도 티타임의 순간만큼은 한 박자 쉬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티 테이블 세팅 TIP
1 더운 여름철에는 뜨거운 차보다는 아이스티를 준비하자. 미리 만들어 둔 홍차 베이스에 우유를 스티밍해서 얹어내는 아이스 로열밀크티는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여름철 메뉴.

2 시원한 느낌의 코발트블루 글라스 웨어를 한두 피스 곁들여 세팅하면 청량한 느낌을 줄 수 있다.

3 여름철 테이블 세팅에서는 유리의 비중을 반 이상 높여 세팅해보자. 우아하고도 시원한 느낌의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앤티크 컬렉터 백정림은…
품위 있고 따뜻한 홈 문화를 추구하는 하우스 갤러리 이고 대표다. 앤티크 테이블웨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테이블 세팅 클래스를 티파티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백정림 이고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