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사회다. 바이러스가 전국을 휩쓸면서 심리적 공포를 넘어 경제 위축이라는 실질적 공포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금, 불안과 공포에 지친 우리에게 멘탈 바캉스가 절실히 필요하다.
[Enjoy] 바이러스 공포, 수용, 그리고 멘탈 바캉스
지금 바이러스 공포가 개인의 삶을 위축시키고 더 나아가 사회경제적 활동에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7월은 한 해의 전반기를 잘 마감하고, 새로운 힘을 재충전할 바캉스 계획을 기분 좋게 짜야 할, 한 해의 연결 허브 같은 기간인데 바이러스의 실질적인 공포에 마음 답답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물론 필요하다. 공포는 위험을 인지했을 때 나오는 감정 반응이다. 공포가 있어야 위기관리에 들어갈 수 있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위기관리 활동에 동기 부여를 제공할 공포 이상의 공포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게 없다. 마음도 지치게 하고 심하면 불면증, 공황 장애로 이어질 수 있고 만성적인 과도한 스트레스 반응은 신체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불안 관리를 위한 ‘조정’과 ‘수용’ 전략
과도한 불안 신호가 생길 때 현대인들이 주로 쓰는 마음 관리법이 ‘조정(control)’이란 심리 전략이다. 뇌의 에너지를 태워 불안을 찍어 누르고 긍정적인 마음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힘이 충분하다면 상당히 효율적이지만 반복적으로 사용해 뇌가 지치게 되면 잘 먹히지가 않는다. 그리고 불안이란 녀석은 힘으로 찍어 누를수록 블랙홀처럼 에너지를 빨아들여 더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힘으로만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불안 관리에 조정을 주로 쓰게 된 것은 기술문명의 발달로 사회 위험을 통제하는 인류의 힘이 실제로 강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마을 사람의 반 이상이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게, 그래봐야 100년이 안 된 이야기다. 조정만으로 불안을 극복하기엔 인간의 힘이 너무 약했던 것. 그러다 보니 ‘수용(acceptance)’이란 심리 전략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다.

조정만 쓰지 말고 수용이란 불안 대처 기술도 함께 쓰는 것이 효과적이다. 현대인들은 조정에 익숙하다 보니 수용이란 단어도 억지로 상황을 이해하려는 것으로 여기는데, 여기서 수용은 그냥 내 상황을 묵묵히 바라보는 것을 이야기한다. ‘내 인생’이란 영화의 주인공에서 잠시 물러나 관객의 입장에서 내 삶을 바라보는 것을 말하는데, 신기하게도 한 발짝 물러나면 그렇게 힘들고 불안했던 현실이 조금은 살 만한 것으로 여겨지며 긍정에너지가 차오른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것이 다 이런 거구나’ 하는 심리적 성숙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힘들 때 먼 산을 바라보다 보면 긍정의 힘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자연에 몰입하다 보면 산이 내 인생을 바라봐주는 듯한 수용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를 읽을 때나 미술작품을 볼 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화창한 봄날을 지나 휴가 기분을 일깨우는 여름 날씨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위험 사회에서 불안을 억누르느라 지친 뇌를 재충전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있지 못하다면 내 뇌의 발전소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사람과의 따뜻한 만남, 자연과 일체감을 느끼는 운동 활동, 문화 콘텐츠와 내 내면과의 공감에서 사람은 지친 뇌를 충전할 수 있다. 쉬는 것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건 권태다. 또 단순히 공포나 불안에 따른 회피 행동도 나에게 쉼을 주지 않는다. 불안할수록 더 적극적으로 현재의 행복을 즐기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현재의 행복감을 느낄 때 긍정에너지가 차오르고 에너지가 있어야 세상을 바꾸는 조정이란 심리 전략도 강하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Enjoy] 바이러스 공포, 수용, 그리고 멘탈 바캉스
자유롭고자 하는 욕구, 멘탈 바캉스가 먼저!
노래 가사 하나가 있다.

‘태양이 내 얼굴을 비추고, 별들은 내 꿈을 채우고, 난 시공간의 여행자, 오래된 목적지를 향해 / 홀린 듯 길을 따라 노란 사막의 강줄기, 6월의 먼지가 떠오를 때 카슈미르를 지나서 / 그 길을 떠날 때 기다려, 쓰러지면 널 데려 갈게, 그곳에 데려 갈게, 그곳에 데려 갈게’

더운 날씨에 웬 정신없는 가사인가 싶겠지만 록 음악 역사에서 비틀스만큼이나 존재감이 무거운 레드제플린이란 그룹이 부른 ‘카슈미르’의 한 부분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해보면 2007년 공연 실황이 있다. 1969년에 데뷔해 1980년에 해체한 그룹으로, 이미 환갑이 넘은 멤버들이 오랜만에 모여 공연을 펼치는데 열정과 깊이가 전성기 때 이상의 느낌을 준다. ‘나도 저렇게 늙어 갔으면’ 하는 부러움마저 느껴진다.

노래 제목인 ‘카슈미르’는 지역명이다. 인도와 중국, 파키스탄의 경계에 있는 산악 지대다. 몽롱한 가사처럼 멜로디도 인도 선율이 가미되면서 신비로우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준다. 막연한 상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실제 레드제플린 멤버들이 인도 카슈미르 여행을 한 후 그 느낌을 곡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상상력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뇌’라는 책을 쓸 때 ‘카슈미르’를 들었다고 한다. 상상력이라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 컴퓨터’에 쌓인 내 경험과 지식을 ‘감성 컴퓨터’에 보내면 감성 컴퓨터가 비논리적이고 상징적인 알고리즘으로 그 내용들에 변형을 가하는 과정이다. 그 변형된 내용을 다시 논리 컴퓨터에 보내 세상과 소통하는 형태로 바꾸어주면 그것이 작품이 되는 것이다. ‘카슈미르’를 듣다 보면 감성 컴퓨터가 꿈틀대는 것이 느껴진다.

바캉스의 라틴어 어원이 자유인 것처럼 여행의 욕구는 자유를 얻고자 함이다. 그 자유는 내 감성이 통제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꿈틀댈 때 느껴진다. 꼭 먼 곳으로 여행을 가지 않아도 내 감성을 터치해주는 노래, 책을 볼 때도 멘탈 바캉스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에 지쳤을수록 멘탈 바캉스가 더 절실히 요구된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 한국경제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