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면 뭐든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동화에 속아 얼마나 많은 날들을 자책하면서 살았나요? 오늘의 동화 ‘토끼와 거북이’입니다.
일러스트 민아원
일러스트 민아원
“옛날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고 있었다. 토끼는 민첩하고 빨랐으며, 거북이는 매우 느렸다. 어느 날 토끼가 거북이를 느림보라고 놀려대자, 거북이는 토끼에게 달리기 경주를 하자고 제안하였다. 경주를 시작한 토끼는 거북이가 한참 뒤처진 것을 보고 안심하며 나무 그늘에서 쉬었는데, 잠시 쉰다는 것이 깜빡 잠들어 버렸다. 토끼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거북이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기어서 어느새 토끼 옆을 지나쳐 갔다. 뒤늦게 잠에서 깬 토끼는 거북이가 경주에 이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력이 재능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는 이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 조금만 솔직해지죠.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요? 정말 노력만 한다면 모두가 1등이 될 수 있었나요?

분명 동화 속의 경주에서 토끼는 끈기 있는 거북이에게 완패당하고 맙니다. 너무 자만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만약, 다시 한 번 그들이 달리기 시합을 한다면, 거북이가 또다시 토끼를 이길 수 있을까요? 글쎄요. 동화 속 시합에선 졌을지언정, 토끼가 거북이보다 빠르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토끼가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거북이는 절대로 토끼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동화에 배신감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여기죠.

대학 시절, 굉장히 설계를 잘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린 후배였는데, 그 친구를 보고 있으면, ‘저런 사람이 건축가가 되는 거구나’ 싶었어요. 저는 밤을 새며 설계를 해 가도 교수님의 한숨을 자아내는 반면, 그 친구는 즉석에서 무언가를 제안해도, 교수님의 감탄을 자아내곤 했죠. 발상이 다르더라고요. 같은 부지에서 같은 목적의 건물을 설계하는데도 결과물은 전혀 다른 게 나오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너무 거북이처럼 느껴졌습니다. 토끼 굴에 혼자 동떨어져서 그들을 이겨보려고 애쓰는 거북이 말이에요.

하루는 같은 과 친구들과 MT를 갔어요. 제가 워낙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하루 종일 요리만 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면, 제가 바로 만들어줬는데, 제가 만든 음식들이 인기가 좋았습니다. 갑자기 그 친구가 저에게 대단하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은 라면밖에 끓이질 못한다면서 말이죠. 흔한 재료들로 요리를 뚝딱 만들어내는 모습이 그 친구 눈에는 신기했었나 봅니다. 요리가 별로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저는 별거 아니라고 웃으며 넘겼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는 건축가가 됐고, 저는 요리사가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친구와 저는 그저 다른 재능을 가졌던 겁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전 설계만을 능력으로 보고, 제가 가진 능력은 하찮게 여겼던 거죠. 요리 실력은 그저 취미, 혹은 아무 쓸모없는 능력 정도로 여겼던 거예요. 그 쓸모없는 능력 덕분에 지금은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됐고요.

우리가 사는 세상엔 달리기 시합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달리기가 느리다고 토끼를 부러워할 필요가 있을까요? 거북이는 토끼에게 수영 시합을 제안했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아마도 토끼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었겠죠. 재능을 무시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재능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능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어쩌면 토끼들 사이에서 오로지 달리기만으로 이기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기획 박진영 기자│글 김남규(‘아는 동화 모르는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