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근 차병원그룹 고문(전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
김수근 차병원그룹 고문은 삼성그룹에서 36년 동안 몸담았고 그중 10여 년을 삼성인력개발원의 부원장 등을 지낸 ‘인사통(人事通)’이다. 3년 전 차병원그룹으로 옮겨 인사 부문에서 고문을 맡고 있으니 사람을 보는 ‘매의 눈’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그가 분석한 성공하는 이들의 습관이 있으니 바로 ‘미인대칭’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에 위치한 차바이오텍 컴플렉스에서 김수근 차병원그룹 고문을 만났다. 회의실로 취재진을 안내한 김 고문은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머그컵에 물을 한가득 담아 들고 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컵 표면에 대학생들과 어깨를 걸고 찍은 사진 아래 ‘미인대칭’이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CEO지식나눔에서 강의 부문 대표를 맡고 있는 그가 멘티인 한국장학재단 대학생들과 함께한 모습이었다.
“작년에 담당했던 멘티들이 스승의 날에 준 선물인데, 그 어떤 선물을 받았을 때보다 가슴이 따뜻했습니다. 학생들이 제가 늘 강조했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여기에 새겨 주었지요. 이럴 때 누군가를 가르치고 봉사하는 보람을 느낍니다.(웃음)”
‘미인대칭’은 김 고문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는 문구다. 상대방에게 ‘미’소 짓고 ‘인’사를 잘 하며, 늘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대’화하고 ‘칭’찬 하는 습관은 36년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한결같이 준수하고자 했던 삶의 지침이다. 자신이 실천하는 것을 넘어 직장인, 대학생, 경영인 멘티들에게도 이 삶의 지혜를 이식해주고 있다.
“인사 업무를 오래하다 보니 사람을 관찰하는 데 익숙합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삶에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대부분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녔어요. 표정이 밝고요. 후천적으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기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지난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연구한 결과가 ‘미인대칭’이죠. 미소나 인사, 대화나 칭찬 모두 손쉽고 돈을 들일 필요도 없어 지위고하, 남녀노소, 동서고금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전공 외에 음악·미술 알면 삶이 풍요로워져
김 고문은 1974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다.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 비서실에 2년간 몸담았다가 삼성물산에서 이라크, 방글라데시 지점으로 파견돼 10여 년간 해외 근무를 했다. 1992년 삼성그룹 인사관리실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인사 업무를 시작했으며,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삼성그룹 인재 양성의 산실인 삼성인력개발원의 부원장을 맡았다. 2009~2010년에는 삼성 디자인학교 ‘사디(Samsung Art & Design Institute, SADI)’의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인력개발원에 최고책임자로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1년에 삼성그룹에서 교육을 받는 직원만 4만 명인데,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다수 개발했습니다. 2005년에는 삼성의 핵심 가치를 다섯 가지로 압축해 전 임직원의 의사결정, 사고와 행동에 기준이 되는 지침을 만들었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조직의 중간 관리자들을 위한 리더십 교육도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신을 360도 비추는 거울이 놓인 방에 들어가 몸 구석구석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360도 평가를 통해 평소 자신이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고 너무 놀라 펑펑 우는 경우도 있지요. 후배나 상사, 동료가 바라보는 자신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요. 먼저 자신을 알고 이해해야 리더가 돼서도 조직원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국내 기업과 중국, 일본 등의 스타트업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인사’와 ‘리더십’ 강의를 펼치고 있다는 김 고문은 요즘 스타트업 기업의 창업주들이 범하는 인사 실수를 지적했다. 그는 “‘기업은 곧 사람이다’라는 정신으로 조직을 이끄는 경영자와 그렇지 않은 경영자가 이끄는 기업은 10년 안에 확연한 차이가 난다”고 했다. 내외부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강력한 리더십 아래 임직원의 마음이 하나가 된다면 그 기업은 지속될 수 있다. 김 고문은 창업한 지 15년 만에 아시아 최대 갑부로 성장한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마윈 회장을 예로 들었다.
“알리바바가 15년 전 직원 18명의 작은 조직으로 출발할 때만 해도 구성원들에게 월급도 주지 못할 정도로 회사 사정이 어려웠지만, 경영인의 철학, 공유 가치, 확실한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고비를 함께 견딜 수 있었죠. 스타트업 기업일수록 경영자가 비전과 자신감을 직원에게 심어주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리더가 배를 채워주고, 머리에 지식을 채워주고, 주머니를 채워준다면 직원은 절대 회사를 떠나지 않습니다.”
김 고문이 최고경영자(CEO)나 대학생 멘티들에게 강조하는 또 하나의 영역이 있으니, 바로 미술이다. 그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9년 ‘사디’에 학장으로 있으면서다. 디자인 학교에 학장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관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전시회를 보다가 그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현재 대학생, 주부, 직장인 등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든 스터디 모임인 ‘아트패밀리’ 멤버로 8년째 활동 중이다.
그는 “창조적 사고가 중요해진 21세기에는 누구든 자신이 하고 있는 전문 분야 외에 두 가지를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음악과 미술이다”라고 강조했다.
“미술의 세계를 알고 난 후부터 제 인생에 즐거움의 요소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미술은 어렵다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저 같은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흥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동선에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있을 때 삶은 행복해지지 않습니까. 그림은 도처에 널려 있으니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에 좋지요. 무언가를 새롭게 알아가고 거기에 푹 빠지는 것은 인생(라이프)을 멋지게 디자인하는 방법이 될 수 있어요.”
김 고문은 인터뷰 하는 동안 ‘라이프 디자인(life design)’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흔히 ‘인생 설계’라고 해석되는 ‘라이프 플랜(life plan)’보다 한 차원 높은 아트적 차원의 개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플랜’이 효율과 효과를 따지는 영역이라면, ‘디자인’은 즐거움과 행복 등을 아우른다. 스스로 인생을 디자인하는 것은 그러니까 행복한 삶을 좇는 그만의 방법이다.
김 고문의 왼손 약지에서 까르띠에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셔츠 위에 딱 떨어지는 붉은색 에르메스 타이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는 “명품을 착용하는 것 역시 남에게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 품위를 높이고 그 물건 속에 깃든 장인정신을 배우기 위한 것”이라며 “이 역시 라이프 디자인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요즘 평생에 걸쳐 몸소 깨친 지혜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눠줘야 할지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다.
“인간의 수명을 90년으로 봤을 때 30년은 공부하고, 30년은 일하고, 30년은 봉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60년을 살았으니 지금부터는 공부하고 일한 것을 나누면서 살아가야겠지요. 봉사하겠다고 작정을 하니 아이러니하게도 더 열심히 공부하게 돼요. 옛날과 달리 21세기엔 지식의 유효 기간이 짧아졌잖아요. 직장 다닐 땐 테스트를 위한 공부를 했다면, 지금은 호흡이 긴 공부를 합니다. ‘미인대칭’이나 ‘라이프 디자인’처럼 제가 몸소 겪으면서 캐낸 보물 같은 지혜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줄 겁니다.”
이윤경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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