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을 누리는 소수가 기득권 사수를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조롱한다. 그들이 내미는빵 한 조각에 자존심을 접는 다수에게도 칼을 들이댄다. 군림도, 복종도 위험하니까.
[Contents] 특권층에 대한 풍자적 보고서 ‘풍문으로 들었소’
드라마나 영화에도 고급 기술이 존재한다. 그냥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보다 반전이나 수수께끼 형식을 취하는 것이 세련된 스토리텔링 기법이며 단순한 슬랩스틱 코미디보다 그 안에 비판적인 견지로 해학을 담는 것이 난이도가 높은 서술 방식이다. 하지만 예술성보다는 대중성에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매체의 특성상 풍자 드라마는 섣불리 꺼내 입기 힘든 파격적인 디자인의 옷이다. 그런데 쓰기도 힘들고 만들기도 어렵다는 풍자 드라마 한 편이 요즘 위력을 떨치고 있다. 바로 SBS TV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다.


군림하는 자와 복종하는 자에 대한 양날의 비판
극의 초반부는 특권의식에 젖은 상류층을 꼬집는다. 먼저 대형 로펌을 운영하는 한정호(유준상 분). 그는 아침마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낭독시키면서도 함부로 귀족성을 드러내지 말라고 가르친다. 평등을 실천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우매한 대중은 차별에 민감하기에 조심하라는 뜻이다. 평범한 다수는 어리석고 감정적인 반면 스스로는 합리적이며 이성적이라 여기는 위험한 생각의 소유자. 대중의 눈을 항상 의식하다 보니 격식과 세평이 중요하고 그러다 보니 매사가 이중적이다. 겉으로는 준법을 외치면서도 뒤로는 편법으로 재산을 불려 왔고, 믿음과 화목이 최고의 덕목이라며 밥상머리에서 훈계하다가도 집만 나서면 조직 관리를 위해 미행과 감시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돈과 권력을 누리는 소수가 기득권 사수를 위해 어떻게 발버둥치는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상식적 일들이 얼마나 우습고 졸렬한지 낱낱이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조롱한다. 상류층이 곧 지도층이라는 식의 잘못 입력된 봉건적 사고를 비판하면서 말이다.
[Contents] 특권층에 대한 풍자적 보고서 ‘풍문으로 들었소’
정호에 대한 신랄한 풍자는 서봄(고아성 분)의 등장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순혈주의로 똘똘 뭉친 한정호에게 있어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녀는 ‘나쁜 피’. 아들의 2세만 가지지 않았다면 감히 자신과 겸상할 수 없는 족속이다. 하지만 입방아가 두려운 나머지 아들의 결혼을 계층 간 화합으로 포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한정호의 통치 기술. 어떡하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되게끔 상황을 몰아간다.
[Contents] 특권층에 대한 풍자적 보고서 ‘풍문으로 들었소’
그런데 풍자가 여기에만 국한됐다면 이 드라마는 그다지 고급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회를 거듭하면서 풍자의 대상이 군림하는 소수에서 순응하는 다수로 서서히 옮겨지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특권의식도 위험하지만 부와 권력에 기생하려는 속물근성 역시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돈으로 누리는 특별함이 신분의 차이인 줄 아는 소수. 그들이 내미는 빵 한 조각에 자존심을 접고 불합리를 견디는 다수.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정호의 비서와 집사들이다. 그들은 인내와 복종을 최고의 덕목이자 직업정신으로 여기며 산다. 그러다 보니 부당한 처사에도 그냥 지나치기 일쑤요, 치욕적인 ‘갑질’에도 아무런 저항을 못하는데 잔다르크 같은 서봄이 되묻는다. 고용관계인지 주종관계인지. 하지만 그들은 변화를 선택했다가도 끝내 한정호가 내미는 당근에 철저히 각개격파 당한다.
[Contents] 특권층에 대한 풍자적 보고서 ‘풍문으로 들었소’
종영을 향해 내달리는 지금, 과연 어떠한 결말로 끝맺음을 할지 궁금하다. 이 드라마를 쓴 정성주 작가의 전작이 ‘아내의 자격’, ‘밀회’인 것을 감안해볼 때,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 결국엔 현실의 벽에 막혀 좌절되지 않을까도 싶지만 뭐, 상관없다. 이 드라마를 빚어내는 작가와 감독은 고수다. 매회 시청자를 상대로 허를 찌르는 대사와 상황들을 묘수처럼 내어놓는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볼 때면 마치 고수와 대국을 벌이는 느낌마저 든다.


김상명 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