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가구업계의 선두 업체인 한샘의 창업주 조창걸 명예회장이 자신이 소유한 주식의 절반, 약 4000억 원가량을 공익재단에 출연한다는 흐뭇한 뉴스가 있었다.

조 회장은 기부 의사를 밝히며 한국판 ‘브루킹스재단’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Family business consulting] 자선 활동, 가업승계의 핵심 플랫폼
브루킹스연구소는 성공한 기업가 로버트 브루킹스가 1927년 설립한 연구소로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 뉴딜 정책, 마셜 플랜, 유엔 설립 등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정책의 산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회과학연구소이자 싱크탱크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의 의미 있는 행보가 앞으로는 성공한 기업가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더 높은 차원의 공익 활동에 나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미국에는 인류 문화의 발전을 위해 재산의 상당량을 사회에 기부하는 가문들이 많다. 카네기, 포드, 존슨, 켈로그, 멜런, 모건, 록펠러 등의 가문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등장해 아직까지도 활발한 자선 활동을 하고 있는 가문들이다. 그들은 기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자선 활동을 통해 나눔을 실천한다. 그들은 부를 나누는 것을 성공한 리더의 덕목으로 여긴다.

세계에서 자선재단이 가장 많고 규모가 큰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에는 약 4만 개 이상의 자선재단이 있는데 그중 한 가문이나 가족기업이 설립한 가족재단의 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010년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를린치의 ‘세계 부 보고서(World Wealth Report)’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가족기업의 자선 활동은 점점 느는 추세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향후 자선 활동에 참여하겠다고 응답한 가족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가족재단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들어 세대교체를 앞둔 많은 가족기업들이 성공적으로 가업을 승계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가족지배구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선 활동을 가족기업을 성공적으로 승계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플랫폼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미국, 4만 개 이상의 자선재단 활동
최근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자선재단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다. 이전에는 가족재단을 사회적 기여와 함께 자산관리 및 세금 절세 전략의 일부로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성공한 가족들은 가족이 함께 자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가족 운영 체제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다. 특히 장수기업들은 창업 세대부터 후손에 이르기까지 자선 활동에 적극적이다. 가족의 사명선언서가 가족의 가치관을 표현한 것이라면, 자선 활동은 가치관을 행동으로 옮기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선 활동이 지역사회 공동체의 삶뿐 아니라 자기 가족의 삶도 증진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성공한 가족들은 자녀들이 함께 자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이것은 가족의 화합과 결속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문 가문에는 청지기정신과 기부정신이 뿌리내리고 있다.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자선 활동은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

첫째, 가족의 유산을 계승한다. 가족기업의 장기적인 비전은 대를 이어 사회에 가치와 부를 창출하는 것이다. 성공한 가족기업들은 지속 가능 경영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으며, 기업의 성공이 자신들의 후세뿐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혜택이 되기를 원한다. 가족이 함께 자선 활동에 참여한다면 창업자는 가족을 통해 개인적 가치와 영적 가치까지도 실현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지역사회에 대한 헌신인 동시에 가족의 유산으로 계승된다.

둘째, 가족 간 또는 세대 간 결속을 강화한다. 가족 자선 활동에는 기업에서 일하지 않는 가족들을 포함해 부모와 자녀, 또는 조부모와 손자, 손녀가 함께 참여한다. 이를 통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 함께 만나서 대화하며 자선 활동에 대한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고 가족 간의 결속을 다질 수 있다. 이는 가족들이 가치를 공유하는 장이 될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셋째, 승계 전략으로 활용한다. 어떤 가족기업은 자녀가 회사에 입사하면 가족재단의 이사 일을 2~3년간 맡긴다. 재단 활동을 통해 사업에 필요한 스킬과 경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녀들이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형제 또는 사촌들과 공동으로 의사결정 하는 법도 배운다. 이 때문에 성공한 많은 가족들이 가족재단을 자녀들의 리더십 개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넷째, 자녀 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 많은 가족들이 자선 활동을 통해 자녀들에게 좋은 태도와 습관을 물려주고 기업 운영이나 사회에서 필요한 스킬을 교육한다. 성공적으로 가족재단을 운영하는 가족들은 대부분 자녀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자선 활동에 참여시킨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참여하지 않으면 나중에 자선 활동을 의무로 생각하거나, 이를 위해 시간 내는 것을 꺼리거나, 부담스럽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개념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부와 봉사의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해외 명문가는 어떻게 자녀를 자선 활동에 참여시키나
자녀들을 자선 활동에 참여시키는 방법은 가족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면, 록펠러 2세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면서 그중 3분의 1은 기부할 것을 가이드라인으로 정해주고 실천하게 했다. 어떤 가족은 자선재단을 설립하는 단계에서부터 자녀들을 참여시켜 재단 설립의 목적과 가족이 추구하는 가치 등을 함께 의논한다. 또 어떤 가족은 후세대를 위한 별도의 기금을 만들어 자녀들이 서로 협의해 기부 방법을 정하도록 한다. 미국에서 3대째 가족기업을 운영하는 한 가족은 가족별로 기금을 할당하고 각 가족들은 저녁식사 시간을 활용해 자녀들과 자선 활동에 대해 토론하며 자녀들의 교육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씩 전체 가족모임에서 서로 자신들의 활동 내역을 발표함으로써 모든 가족들을 직간접적으로 자선 활동에 참여시킨다. 만일 그룹으로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개인들에게 일정 금액을 주고 각자 자기가 원하는 비정부기구(NGO) 등의 단체를 지원하도록 하는 가족도 있다. 자선재단이라고 해서 꼭 재벌기업처럼 수천억 원씩 내놔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자선재단의 90%가 소규모 가족재단이라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각종 자선재단을 세우고 있음에도, 한편에서는 가족들의 재산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자선 활동을 단지 사회적 기여 차원으로밖에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족 시스템이 건강하고 기업이 건전하다면, 자선 활동은 가족 공동의 열정이나 비전을 표현하는 장이 될 수 있다. 특히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자선 활동은 사회적인 기여뿐만 아니라 창업자의 경영철학과 정신을 후손에게 계승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고, 결국 가족에게도 더 유익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세계적인 명문가들이 수대를 걸쳐 명성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는 자선 활동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