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묵 한국미쓰비시전기오토메이션 대표이사
일본 미쓰비시전기는 전 세계 18개국 현지 법인 중 유일하게 한국미쓰비시전기오토메이션의 대표이사로 현지 한국인을 임명했다. 그 주인공은 김형묵 대표다. 국내 공장 자동화 시장을 석권한 그의 성공스토리를 들었다. 공장자동화(FA, Factory Automation)는 산업화를 꽃피우게 한 촉매제였다. 이를 통해 대량 생산과 정밀 제작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미쓰비시가 제조하는 FA 제품의 판매·서비스를 담당하는 한국미쓰비시전기오토메이션은 국내에서 이 분야 최강자로 통한다. FA 시스템의 ‘두뇌’에 속하는 논리연산제어장치(PLC), 서보시스템 등에서 4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현대·기아자동차의 자동차 생산라인의 PLC 시스템이나 서보모터(로봇 팔 등이 정확한 거리만큼 이동할 수 있게 제어), 삼성전자의 액정표시장치(LCD) 분야의 생산 설비에 미쓰비시전기의 FA 제품이 적용된다. 한국 공장의 두뇌와 심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한능전기라는 서비스법인과 STC테크노 서울이라는 판매법인이 합병해서 만들어진 이 기업은 당시 매출 300억 원에서 15년이 지난 현재 3645억 원(2014년 실적 기준)으로 10배가 넘게 성장했다. 직원 수가 160명(2014년 6월 말 현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로만 직원 1인당 23억 원의 연매출을 발생시키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한국미쓰비시전기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최근 국내 기업의 설비투자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월 1일 취임한 김형묵 신임 대표(59)가 2년 내 매출을 5000억 원으로 끌어올리며 15% 이상 성장시키겠다고 자신했다는 점이다.
“한국인 대표라고 해서 크게 바뀔 건 없다고 생각해요. 15년 이상 한국에서 사업을 해오면서 본부하고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고 있었으니까요.”
김형묵 한국미쓰비시전기오토메이션 대표는 한국미쓰비시전기 최초 현지인 대표라는 타이틀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한국인 대표라고 해서 향후 경영 방향이 크게 바뀌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소리다.
한국인 최초 대표가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이번 대표 선임은 대외적으로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유럽과 미국, 중국 등 미쓰비시전기의 18개국 해외 FA 판매법인 중 유일하게 한국만이 현지인 대표 체제로 전환됐기 때문. 더구나 한국 법인의 등기임원을 포함해 임원 5명을 모두 한국인들이 맡게 된 것은 일종의 사건이었다.
변화의 시작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10년 전부터 본사와 인적 교류 시스템을 운영해 오며, 2년 주기로 직원을 교환 파견해 현재 한국과 일본에 각각 10여 명의 직원들이 상주해 있는 것.
사실 한국 내 사업 초창기에는 커뮤니케이션 등에 어려움도 많았다고 김 대표는 회고했다. “저희가 FA사업을 하다 보니 영업사원들이 거의 공대 출신이었어요. 그래서 과거에는 일본어를 못하는 직원들이 많아 일본에서 엔지니어가 오면 옆에 통역을 붙여주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직원들 대다수가 일본어에 능통해 의사소통 문제로 곤란을 겪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게 그의 귀띔이다.
또한 김 대표 자체가 한국미쓰비시전기의 산 역사이기도 하다. 그는 외환위기 한파가 매섭게 불던 1998년 한국미쓰비시전기의 전신 격인 STC테크노 서울에 영업부문 이사로 들어왔다. 그의 전 직장인 LG산전은 미쓰비시전기와의 합작 법인인 금성기전이 금성계전과 합쳐져 탄생한 기업으로 김 대표가 기획과장을 했던 1984년에는 당시 부사장이 일본 미쓰비시전기에서 나와 있었다.
“제가 기획과장을 지내면서 미쓰비시전기의 기술을 한국으로 가져오는 기술도입 계약 등을 여러 해 동안 했어요. 영업부장을 맡으면서도 기술제휴를 하면서 생산하는 부분이 있었고 일부 미쓰비시전기의 완제품을 갖다가 조합해서 판매하기도 했죠. 그때부터 미쓰비시전기의 본사와 나고야제작소와는 연이 있었다고 봐야겠죠.(웃음)”
김 대표는 미쓰비시의 기업 문화를 ‘도노사마’라고 소개했다. “도노사마는 양반이라는 뜻이에요. 한번 말을 뱉으면 잘 주워 담지 않죠. 예를 들어 부하가 나가서 일을 저질렀는데 상사가 그걸 인정하지 못하면 그 부하는 밖에 나가서 외부 사람과 한 약속을 회사에서 어기는 거잖아요. 그 부하를 야단칠지언정 외부에 뱉은 말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미쓰비시의 문화가 저희 회사에도 강하게 남아 있어요.”
이런 미쓰비시의 기업 문화는 15년 동안 한국화라는 과정을 거쳤다. 한국 기업들에서 많이 하는 직급별·직무별 교육을 연간 교육과정으로 진행하는 것은 일본 본사에는 없는 한국 특유의 기업 문화를 접목한 것이다.
“사장 취임 후 사원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학습, 도전, 개선’이었죠. 사실 혁신은 단절을 의미하니까. 그것을 요구하기보다는 연속선상에서 개선은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원의 능력 향상을 위해 제품, 기술, 마케팅의 학습을 계속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도전 정신과 자신의 약점에 대한 개선 활동을 계속하도록 주문하고 있어요.”
그는 여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일본과 한국은 업무 스타일이 많이 닮았어요. 워커홀릭이죠. 중국에 가 보면 오후 6시가 되면 직원들이 싹 없어져요. 남아 있는 건 한국과 일본 사람들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까요.” 김 대표는 넌지시 한국과 일본의 업무 스타일을 말하다가 겸연쩍었는지 이내 웃었다.
FA 시장 확대에서 한국의 희망을 읽다
김 대표는 최근 국내 설비투자 부진 등으로 인한 경제 비관론에 대해서는 “지나친 우려”라며 고개를 저었다. 국내 설비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향후 2년간 15% 이상 성장시키겠다는 그의 호언을 의심했던 기자를 향해 ‘글로벌 투자 지도’를 펼쳐 보인 것이다.
“저는 설비투자 부문에 있어서 너무 비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예를 들면 금형 산업 대부분을 중국으로 발주해 한국에는 없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고부가가치는 남아 있게 마련이에요. 그런 것까지 가 버리면 한국의 금형엔지니어들이 갈 데가 없잖아요. 저희가 방전가공기를 하는데 연간 수백 대의 수요가 아직도 있어요.” 김 대표는 “현재는 작지만 앞으로 커질 산업들이 한국에는 많이 있다고 본다”라며 “예를 들면 15년 전에 LCD가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요즘은 현대자동차에 LCD 응용이라고 해서 운전석 앞 유리창에 속도와 내비게이션 정보를 쏴주고 있는데 그게 바로 LCD 기술이에요. 서비스나 용도 쪽을 볼 필요가 있어요. LCD가 죽을 것이냐 살 것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디스플레이가 어떻게 될 것이냐를 봐야 해요. 과거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은 죽었지만 곧 LCD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나왔듯 말이죠.”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세우는 문제에 대해서도 해외에 공장을 세우더라도 현지의 FA 시스템은 한국에서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삼성이나 LG 등 기업들이 중국에다가 공장을 짓는다고 하는데 기업들이 해외에 투자를 할 때 어떻게 하냐 하면 생산설비를 한국에서 가져갑니다. 결국 저희가 FA 제품을 파는 곳은 한국이라는 말이에요. 저희 직원들이 해외 출장이 많은데 중국이나 베트남, 심지어는 인도, 말레이시아 등 한국 기업들의 공장이 나가 있는 데는 저희들이 많이 쫓아 나가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자동차, 휴대전화, LCD와 OLED 등은 활발하게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한국의 저력과 같은 이 분야의 성장이 한국미쓰비시전기가 높은 성장을 자신하는 토대라는 것이다.
한국미쓰비시전기의 모토는 ‘로컬 프렌드, 글로벌 파트너(Local Friend, Global Partner)’다. 한국 기업이 가는 곳 어디라도 최고의 FA 솔루션 파트너로서 함께 하겠다는 포부다. 특히 미쓰비시전기는 제어, 구동, 배전제어 기기 등 업계 최고 수준의 FA 제품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FA센터를 통해 해외에서도 신속하게 사후관리(AS)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한국미쓰비시전기는 작년 10월 본사 2층에 제품 전시장을 마련하고, 1층에는 방전레이저가공기 테크니컬센터를 열었다. 이는 기업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일본의 나고야제작소를 가지 않고도 서울에서 미쓰비시의 최신 FA 제품을 직접 시연해볼 수 있게 한 배려다.
김 대표는 신시장 개척에 대한 의지도 털어놨다. 소규모 발전플랜트 등의 ‘프로세스 오토메이션’ 분야, 식품기계 분야에 대한 영업을 좀 더 강화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최근 조직 내 식품포장영업팀과 PA영업그룹이라는 조직을 제품별 조직이 아닌 시장별 조직으로 별도로 신설한 것도 이를 위한 포석이다.
그는 “새 대표로서 어떤 상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직원들에게 티칭(teaching)하지 않고 코칭(coaching)하는 상사이고 싶다”고 밝혔다. 선생님처럼 “이건 틀렸다”라고 단호히 말하기보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라며 행동의 주체가 스스로 움직여 판단하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용섭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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