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지식나눔-세 번째 김종식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전 타타대우상용차 사장)

행커치프까지 갖춘 딱 떨어지는 슈트 차림에 은발의 머리칼,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해 최신 정보기술(IT) 기기를 만지작거리며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던 김종식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전 타타대우상용차 사장)를 보고 퍼뜩 고전 영화 속 젠틀맨 이미지가 떠올랐다. 몇 년 전 취미로 시작했다는 클라리넷 연주에 바이크를 타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얘기까지 인생을 즐기는 방식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체질적으로 재미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그에게 최근 새롭게 생긴 ‘즐거움’ 중 하나가 바로 지식 나눔이다.
[SHARING WISDOM] 끝 보이는 탄탄대로보다 굽은 길 가는 인생의 즐거움
“1970년에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낯선 땅에서 힘들게 공부를 하다 보니 오기가 생기더군요. 이 지식들을 나 혼자 알고 있기엔 억울하니 언젠가는 꼭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겠다고요. 저는 지식과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줄 때 희열을 느낍니다.”

김종식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CEO지식나눔에 합류했다. 타타대우상용차 사장 시절 팀장급을 대상으로 경영학 석사 학위(MBA) 과정을 손수 가르쳐 ‘강의하는 CEO’라고 불릴 정도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열성적이었던 그였다. 기계공학도이자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김 교수는 25년에 걸쳐 축적된 기술공학 이론과 현장 경험을 토대로 이 모임에서도 대학생과 경영인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나눠주고 있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갖는 분야가 벤처창업가 혹은 중소기업가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전략, 리더십 코칭이다. 모든 운동 종목에 선수들이 잘 뛸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코치가 있듯, 경영에도 멘토링과 컨설팅을 아우르는 코칭이 필요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기업 컨설팅을 가보면 어떤 경영자들은 전문가에게 문제를 뚝딱 해결할 수 있는 단편적인 솔루션을 제시해주길 원합니다. 경영이 그렇게 말처럼 쉽다면 누구나 성공하겠죠. 우리가 보약을 먹어 체력을 기르듯 회사도 경영자가 지속적으로 역량을 쌓아야 체력이 좋아집니다. 성공한 기업의 경우에는 리스크 관리가 무척 중요하죠. 저는 기업의 문제를 짚어내고 그들(경영자)이 체력 관리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김 교수는 얼마 전 CEO지식나눔에 소속된 한 회원사의 경영 자문으로 나서기도 했다. 이 회사는 시장조사를 주로 하는 벤처기업으로, 최근 하이테크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영역의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위해 기술경영의 대가인 김 교수에게 멘토링을 요청했다. 이처럼 CEO지식나눔은 회원사들 간에 서로의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기도 한다.


美서 교수직 제안 거부하고 작은 기업에 입사한 이유
김 교수는 서울대 공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일리노이공대에서 석사를 마친 뒤 퍼듀대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화려한 이력을 등에 업고 탄탄대로만을 달렸을 것 같은 김 교수는 그러나 “나는 고속도로가 아닌 구불구불한 국도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박사 학위를 따자마자 미 해군사관학교의 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젊은 나이에 정규 코스를 밟아 교수가 되는 것은 차를 몰고 끝이 정해진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쁜 사람들은 고속도로를 타고, 더디게 가더라도 무언가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국도로 갑니다. 대개 고속도로에선 속도계밖에 보이지 않지만 국도를 달리다 보면 아름다운 자연풍광도 눈에 들어오고 간이휴게소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지요. 제가 오토바이를 즐겨 타는 이유도 국도를 달리기 위해서입니다. 삶도 마찬가지예요. 끝이 빤한 대로보다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지 모를 구불구불한 길이 좋습니다. 길모퉁이에 진짜 인생의 묘미가 숨어 있으니까요.”

김 교수는 ‘젊은 교수’가 되는 길을 포기한 대신 당시 엔진업계를 선도하던 기업인 미국 커민스사에 입사했다. 세계 제1의 자동차 제조 업체였던 제너럴모터스(GM) 등 유수의 기업에서도 러브콜이 왔으나, 그는 결국 동양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면서도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커민스사를 택했다. 김 교수는 중앙연구소에서 엔진 연구를 하다 제품기획, 국제마케팅 부서로 옮겼고, 1991년 커민스가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한국 대표로 취임했다. 2000년 커민스 동아시아 총괄대표를 거쳐 2003년엔 커민스의 아시아 17개국 총괄본부장으로 승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조건 유명하고 큰 것을 좋아하죠. 취업준비생들 역시 대기업에 취업하길 선호하고요. 하지만 저는 제자들에게 기업의 크기보다는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날 수 있는 곳을 선택하라고 조언합니다. 제가 커민스사로 간 것은 결과적으로 잘된 선택이었습니다. 실제로 GM은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에 이미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저는 성장하는 회사였던 커민스에서 능력을 인정받았으니까요.”

그렇게 커민스에서 CEO로 10여 년을 보냈다. 그러던 2009년 초여름 윤은기 당시 서울과학종합대학원장과 조동성 서울대 교수가 MBA 강의를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다국적기업 CEO로 활동하면서 쌓은 글로벌 경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후학들에게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었다.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담아 뒀던 꿈이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나 불과 석 달 후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 찾아왔다. 옛 대우자동차의 상용차 사업을 인수한 인도 타타그룹에서 새로 출범하는 타타대우상용차의 사장직을 부탁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교수직을 수락한 상황. 그는 묘수를 냈다. 당시 라비 칸트(Ravi Kant) 부회장과의 면접에서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대학 강의를 겸하는 조건으로 CEO를 맡을 수 있게 해달고 제안한 것.

‘신뢰’를 기업의 핵심 가치로 삼은 인도 타타그룹은 이처럼 약속을 중시하는 김 교수의 자세를 오히려 높이 사 그를 CEO로 최종 낙점했다.
김종식 교수는 CEO지식나눔에서 한양대 경영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CEO 특강을 진행한다. 지난 4월 15일 한양대에서 학생들 앞에 선 김 교수의 모습.
김종식 교수는 CEO지식나눔에서 한양대 경영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CEO 특강을 진행한다. 지난 4월 15일 한양대에서 학생들 앞에 선 김 교수의 모습.
김 교수는 타타대우상용차에 입사해 가장 먼저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소매를 걷어붙였다. 창의적인 조직 분위기에서 기업 혁신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취임 당시만 해도 타타대우상용차는 옛날 대우 시절의 고리타분한 문화가 남아 있었다. 김 교수는 사장실 방문을 활짝 열어 임직원들이 언제든 사장실을 드나들 수 있게 했다. 형식에 치우쳤던 경영 현황 설명회는 사내 동아리 9인조 오케스트라와 사내 합창단 공연, 스포츠댄스로 시작되는 경영 설명회로 바뀌었고, 고객과 직원들의 의견을 함께 듣고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또 ‘코칭’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사내에 미니 MBA 교실을 개설, 팀장급을 대상으로 직접 MBA 강의를 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트럭회사 사장으로서 트럭을 몰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조언에 에 2개월간 운전학원을 다니며 대형 트럭 면허를 딴 일화도 유명하다. 신차 출시 때는 임원들과 타타대우상용차 군산공장에서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까지 220km의 트럭 로드쇼를 벌여 주목받기도 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성공 비결 중 하나가 유연성입니다. 융통성과 유연성이 있는 조직에서 창조적인 생각이 나옵니다. 취임했을 당시 대우의 시스템은 생산과 판매 조직, 서비스 조직이 각자 따로 분리돼 있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그런 부분들을 하나로 통합해 고객들이 원스톱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저 역시 제각각인 시스템들을 하나로 통합해 부품 판매와 서비스까지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조와의 갈등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의 반응이 좋았고, 기업 실적도 개선됐죠.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한 덕분에 저는 어린 여직원에게 ‘개떡’을 얻어먹는 경험도 할 수 있었지요. (웃음)”


환갑에 수상스키 마니아
“즐겁지 않은 일은 못하는 체질이죠”

김 교수는 2012년 타타대우상용차 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21년여에 걸친 CEO 인생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원래 꿈이었던 교수로 먼 길을 돌아왔다. 그는 2013년부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늘 60세 언저리가 되면 미련 없이 현장을 떠나 학교로 가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좀 편하게 즐길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하하. 저는 올해로 2년 차 교수입니다. 구불구불한 길을 돌고 돌아 왔기에 제가 걸어온 길 위에 경험은 훨씬 많이 쌓였지요. 후배들에게도 살아 있는 현장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제 강의가 학생들에게 은근히 인기가 많아요. (웃음)”

‘재미 추구자’인 그는 환갑 즈음 해 자신의 인생도 한층 다채롭게 꾸미고 있다. 5년 전 취미로 시작한 클라리넷은 이제 제법 수준급 연주 실력을 자랑한다. ‘공대생’답게 지금도 능숙하게 IT 기기를 다루는 얼리어답터인 그는 유투브에서 연주 동영상을 찾아가며 연습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또 수상스키가 취미인 그는 작년 여름 외발 스키(한쪽 발로만 지지해 수상스키를 타는 것)를 시도해 성공했다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아직 봄이지만 날씨가 더워져 수상스키 탈 날만 기다리고 있다. 60대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은 듯 보였다.

“도전은 자기에 대한 믿음입니다. 저는 아직도 저에 대한 믿음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두려움이지요. 나이 들어 두려움에 갇히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특히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은 더더욱 생각이 굳으면 안 되지요. 저는 나이 들어도 ‘노인티’를 내지 않는 게 목표예요. (웃음) 그러다 보면 더욱 즐겁고 재밌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