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의 패션 코드
많은 남성들이 슈트에 비해 셔츠는 대충 고른다. 셔츠의 색상이나 패턴이 비슷하면 같은 셔츠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셔츠도 슈트만큼이나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원단이 같아도 무늬의 차이로 전혀 다른 디자인의 셔츠가 만들어지기도 하며, 품질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남성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슈트가 5만 원짜리부터 1000만 원이 훌쩍 넘는 것까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셔츠 역시 5000원짜리부터 100만 원이 넘는 것까지 다양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물건이 그러하듯 가격은 품질에 어느 정도 비례한다. 셔츠 전문 브랜드 중 최상급부터 살펴보자면, 마리아 산탄젤로를 꼽을 수 있다. 몇 해 전, 국내에 단독 매장을 열기도 한 마리아 산탄젤로는 1953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됐다. 20만 원대의 중가 풀 머신 메이드 기성복 라인도 갖고 있긴 하지만, 플래그십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인은 약 80만 원대의 기성품이다. 어깨 전체와 단춧구멍을 비롯해 움직임이 이뤄지는 곳은 빠짐없이 손바느질로 처리해 최상의 활동성과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들어준다. 기계로 마감한 부분의 재봉 역시 비슷한 가격대의 럭셔리 브랜드 셔츠와 비교했을 때 그 수준이 월등히 높다. 특히 바느질의 장력을 이용해 살짝 벌려 놓은 단춧구멍은 단추를 여닫을 때 튕겨 나가는 듯한 감촉을 선사한다. 매 시즌마다 나폴리의 장인이 내한해 비스포크 주문을 받기도 하는데, 최고 290만 원대에 이르는 셔츠를 소개하고 있다. 그밖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셔츠 브랜드로 루이지 보렐리, 바르바, 프라이, 오리안, 기 로버, 마리오 무스카리엘로, 지오반니 마시, 피에트로 프로벤잘 등이 있다. 20만~40만 원대 가격으로 국내에서는 샌프란시스코 마켓과 피넬타 1935, 란스미어 등의 셀렉트 숍에서 만날 수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셔츠 브랜드로는 턴불 앤 아서를 꼽을 수 있다. 영국 로열 패밀리뿐 아니라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셔츠를 맞춰 입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킹스맨’ 속 콜린 퍼스의 셔츠도 마찬가지다. 비스포크가 전문이다 보니 기성복은 거의 생산하지 않지만, 한 번 사이즈를 맞추면 계속 주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힐디치 앤 키는 턴불 앤 아서와 이웃한 또 다른 최고급 비스포크 셔츠 전문점이며, 조금 더 대중적인 토머스 핑크는 글로벌 진출 브랜드이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나라가 많다. 참고로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영국의 정통파 셔츠 브랜드는 없다. 프랑스의 샤르베는 세계 최초의 비스포크 셔츠 전문점이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보유한 셔츠의 명가이며, 미국의 브룩스 브라더스는 버튼다운 셔츠를 처음으로 개발한 역사를 갖고 있다. 국내에도 뛰어난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우는 셔츠 전문 브랜드가 있는데 핸드메이드를 주력으로 하는 스테디 스테이트와 일 카미치아이오, 머신 메이드이지만 만족스러운 품질을 보여주는 고셰, 앤드루 앤 레슬리가 대표적이다.기획 양정원 기자│글·사진 김창규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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