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부터 부지 선택·설계·시공·입주까지
건축가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나 빌라가 아닌, 나와 내 가족의 삶과 취향이 담긴 ‘내 집’에 살기 위해서는 불편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 불편은 사실 집을 짓기로 결정하는 순간부터 집 짓는 모든 과정에서 발생한다. 예산을 세우고, 땅을 구입하고, 설계를 하고, 시공을 거쳐 입주하는 순간까지 건축주가 챙겨야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한 후 내 집이 탄생한 순간의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터. 모르면 막막하지만 알고 보면 즐거운 집 짓기 올 플랜을 일목요연하게 담았다. 일단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면 이미 집 짓기는 시작된 셈. 집 짓기의 과정은 크게 예산 짜기와 땅 구입, 설계, 시공, 입주 등의 과정으로 나뉜다. 예산을 짜는 과정부터가 실질적인 과정이라면, 그전에 가족들 간에 ‘우리 집’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어떤 집에 살고 싶고, 라이프스타일은 어떤지, 또 그에 따른 최소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방이 몇 개인지 욕실이 몇 개인지 등 물리적인 결정은 그 후의 일이다. 인터넷이나 잡지에서 본 ‘멋진 집’이 우리 가족에게는 멋진 집이 아닐 수도 있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꿈꾸는 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확고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면, 추후 실질적인 집 짓기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가용 예산 및 항목별 예산 짜기
집 짓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항목이 예산이다. 막상 가용 예산을 정한 후 집 짓기를 시작한 건축주라 해도 실행 단계에서 예산 초과로 인해 꿈을 접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예산을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모든 집의 예산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옆집 누군가가 얼마에 집을 지었다고 해서 그 예산이 우리 집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집 짓기 예산을 크게 4가지 항목으로 구분해보면 토지구입비, 설계 및 감리비, 시공비, 이사비 및 각종 세금 등이다. 현금 자산과 함께 부동산 가치를 포함한 자산 규모를 파악하고 대출 가능 범위까지 조사한 후 가용 예산을 정확히 예측하면 항목별 예산 비중도 예측과 조정이 가능해진다.
전체 예산이 정해지면 항목별 예산 배분을 생각해야 한다. 먼저 가장 큰돈이 들어가는 항목이 바로 땅 구입이다. 어느 지역이냐에 따라 땅에 들어가는 비용이 다르겠지만 토지 구입에 너무 많은 비용을 쏟아 붓게 되면 다른 항목에서 비용을 감축하게 돼 애초의 계획에서 멀어지거나 건축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자.
토지 구입에 대한 예산을 정하고 후보지를 정했다면 그다음으로 어느 정도 규모와 사양의 집을 지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큰 면적과 고가 마감재를 원한다면 그만큼 예산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면적이라도 형태에 따라 소요되는 예산이 다르기 때문에 집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이 곧 예산 절약과 직결돼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규모에 대한 계획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전용면적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하다. 무조건 집을 크게 짓는 건 절대 금물이다. 요즘 가장 선호하는 규모는 115.70~132.23㎡.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작다고 느낀다면, 무엇 때문에 작은지 어느 정도 면적이 더 필요한지를 확인해 최소한의 면적만 키우도록 한다. 반대로 집이 넓다고 느낀다면 과감하게 면적을 줄일 필요가 있다. 규모 외에도 집의 구조 방식과 벽의 구성, 증축 혹은 분리에 대한 대비도 예산 작성 시 중요하다. 만일 예산이 부족하다면 추후 변형이나 증축 가능성을 열어 두고 예산 내에서 가능한 규모로 진행하는 방법도 있다.
부지 찾기 및 땅 구입
땅이 없는 집이란 없다. 땅과 예산이 항상 같이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체 예산 중 가장 많은 비중이 땅 구입비지만, 이는 지역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자금 계획에 맞는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지역이라도 크기, 위치, 주변 환경에 따라 땅값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땅을 고를 때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우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이 이뤄지는 권역 안에서 찾아야 한다. 전원주택에 살고 싶다고 인프라가 없는 산골로 갈 수는 없다. 가족 구성원에 따라 직장 위치, 학교 위치 등을 고려해 출퇴근이 가능한지, 편의시설이 잘 돼 있는지, 채광은 어떤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건강을 위해 외곽에 집을 지었다가 출퇴근의 어려움으로 건강이 나빠진다면 아니한 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대략 권역이 정해지면 그때부터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 원하는 지역의 부지 시세는 포털 사이트 등에서 부동산 검색을 통해 대략적인 금액을 추산한 후 반드시 현지답사를 통해 비용을 확인해야 한다. 서울은 부지 3.3㎡당 가격이 평균 1000만~1500만 원 이상이고, 수원 광교지구는 평균 550만 원, 성남 판교지구는 평균 1000만 원 정도다. 양평과 가평을 비롯한 비도시 지역은 평균 100만~200만 원 정도지만 대부분 부지 규모가 커서 매입비용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조건에 맞는 지역을 선택했다면, 현장을 방문해 부지와 주변을 꼼꼼하게 점검한다. 보행로의 편의성과 차량 접근의 용이성, 이웃, 동네 분위기, 커뮤니티, 보안, 가격 등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사안.
예산과 입지 조건에 맞는 부지 후보를 선정했다면 관련 법규와 규모를 확인해야 한다. 건축가에게 문의하거나, 인터넷 토지이용규제정보서비스(http://luris.mltm.go.kr)를 이용해 해당 부지의 토지이용계획을 열람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소재지 주소만 알면 지목과 면적, 지역·지구 및 다른 법령 등이 규제하는 정보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부지에서 가능한 건축물의 규모도 검토해야 한다. 도심 지역은 1, 2, 3종에 따라 건폐율이 달라지고, 판교의 경우 대지의 80%까지 가능하며, 산과 밭으로 가면 건폐율이 20%까지 줄어드는 등 제각각이다. 건축이 가능한 부지인지도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건축이 가능하려면 해당 부지가 도로에 면해 있어야 한다.
모든 과정을 거쳐 부지를 구입했다면 부지 측량과 지질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설계와 튼튼한 집짓기가 가능하기 때문. 측량은 부지 경계에 대한 지적 경계측량과 주변 상황까지 아우르는 현황측량으로 구분된다. 대한지적공사에 의뢰해 진행하며 측량 성과도와 현장에 박힌 빨간색 말뚝으로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측량이 땅 위의 상황 점검이라면, 지질조사는 전문 장비로 땅 속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다. 지질조사 비용은 1개의 시추공당 100만~200만 원 정도다. 측량과 지질조사 결과는 건축가나 시공사에게 제공해야 한다. 만일, 설계 전에 시행하지 못했다면 건축가와 논의해 진행하거나 설계비에 포함시켜 설계 업무에 포함할 수도 있다.
건축가 선택과 설계
아직도 많은 이들이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대신 시공사에 일임하거나 일반화 된 평면도로 ‘짓는’ 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에서는 전문 설계팀이 있다며 시공을 하면 설계를 공짜로 해준다고도 하지만, 법적으로 설계와 시공 겸업이 금지돼 있다. 집짓기는 방 3개, 거실, 주방, 화장실 2개의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가족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예산이 문제라면, 집의 면적을 조금 줄이더라도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것이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면서도, 시공과 감리 과정 등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어떻게 선택하면 좋을까. 결국은 개인 취향이 답이다. 먼저 검색, 건축사사무소홈페이지, 건축 관련 유명 블로그 등의 도움을 받아 건축가의 결과물이나 사진을 통해 자신과 맞는 성향의 건축가를 찾는 게 우선이다. 그다음으로 직접 미팅을 통해 설계비 수준이 어떤지, 성향이 잘 맞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체크해 결정한다. 유념할 점은, 집에 대한 경험이 있고,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건축주의 일처럼 할 수 있는 파트너라야 한다는 점.
설계비는 일반적으로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규모와 설계 기간에 따라 각기 다르게 결정된다. 설계비를 정당하게 지불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 집이 어떻게 지어지고 있는지, 어떤 모양인지 등 ‘과정’을 확인한다면 비용이 아깝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계 계약서에 단계별로 모형이나 스케치, 투시도 등을 정당하게 요구하는 명시를 하는 게 좋다.
본격적인 설계에 앞서 건축가와 함께 부지를 답사한다. 부지 답사는 앞으로 진행될 설계에서 건물의 방향과 층, 지붕의 형태, 마당의 이용과 출입, 재료의 사용, 창과 문의 위치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단계다. 설계는 기본적으로 건축가의 몫이지만 건축주가 확실한 생각과 의견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집을 작품 개념으로 접근했다가는 후회하기 십상이다. 작품과 집 사이의 괴리감을 조정해야 한다.
전체 집의 형태와 구조 및 내외장재에서부터 담장과 마당, 현관, 방 크기와 모양, 위치, 거실과 주방, 계단 등에 이르기까지 설계는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따라서 건축주와 건축가가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원하는 집에 가까워진다. 건축가에게 일임하지 말고, 모형 등을 통해 반드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공사 선정과 시공
대부분 건축가들은 잘 맞는 시공사 리스트를 갖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그들에게 집 짓기를 맡겨서는 안 된다. 보통 몇 억이 들어가는 공사를 하면서 시공사가 지은 집을 보지 않고 계약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직접 눈으로 실력을 확인하는 것을 포함해 시공사가 혹 건축주와 트러블이 있지는 않았는지 등을 체크해보는 게 좋다. 가장 좋은 방법은 건축가가 추천하는 시공사를 포함해 3군데 정도의 시공사를 추린 후 공사 견적을 받는 것이다. 회사마다 견적을 내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그럼에도 각 견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템과 수량에 대한 확인이다. 시공사가 제시한 견적서가 설계와 비교해 아이템이 누락됐거나 잘못 표기됐다면 수정해 진행해야 한다. 또 아이템 수량도 꼼꼼히 따져 공사 중 추가로 비용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과하게 산정된 수량 역시 정정해야 한다. 이 모든 확인은 건축가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는 게 좋다.
시공에 들어가면 보통 5~6번에 걸쳐 지급해야 하는 시공비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또 시공 과정에서 못마땅한 점이 생기더라도 현장 인부에게 토로하지 말고, 현장소장이나 감리자인 설계자에게 이야기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좋다. 아무리 유능한 건축가라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감리자와 시공자를 믿고 논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장에 매일 줄자 들고 가 직접 체크하는 일은 피하고, 감리자에게 맡긴 후 그 기간을 즐기면 된다.
건축허가 도면에 표현된 면적과 수량에 대한 조경 공사까지 마치고 준공 완료를 위한 준공청소(시공사가 현장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공사의 마지막 단계)까지 완료되면 건축주, 감리자, 시공자와 함께 예비 준공검사를 해본다. 이후 지방자치단체에 준공 접수를 신청하는 사용 승인, 건축 법규에 어긋나는 공사가 있는지 확인하는 특검 등을 거쳐 사용승인과 함께 자동 생성되는 건축물 관리대장이 만들어지면, 등기부등본에 건물 소유에 대한 절차를 마무리한다. 대부분 법무사사무실에서 대행하며 이때 발생하는 세금은 취득세와 등록세다.
최종 잔금은 서류상 준공이 났다고 주지 말고 마지막에 건축주와 감리자(설계자), 시공자가 모여 체크리스트를 공유하고 크고 작은 문제를 해소한 다음 지급하는 게 좋다.
입주 그 후
막상 입주를 하고 나면, 설레는 마음과 불편함은 잠시 잊고 문제들을 냉정하게 하나씩 체크한다. 시공 하자가 대표적이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공 하자는 문과 창문의 뒤틀림, 외장재의 변색 및 탈락, 전기 시스템 및 조명 불량, 욕실 및 주방 하수의 역류, 오수 관련 악취, 보일러 및 환기장치 작동 불량, 누수 및 결로, 도배지 변형 등이다. 건축주 입장에서 민감하게 느껴지겠지만 입주 초기 흔히 발생할 수 있고, 원인 분석 후 곧바로 처리 가능하니 여유를 갖고 문제를 해결하자. 시공 하자의 경우 계약서에 유지 및 보수에 대해 명기한 대로 처리한다. 주택의 경우 보통 1년을 사후관리(AS) 기간으로 설정하는데 주요 구조부 등은 3년, 5년으로 차등 적용한다. 시공사가 시공하자 보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더 확실한 보증을 원한다면 약간의 비용을 들여 ‘서울보증보험’ 등의 기관에 하자이행을 위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 참고 도서 ‘집’(HOUSE 집짓기 전 꼭 알아야 할 모든 것, 경향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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