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가의 인맥을 ‘금맥(金脈)’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인맥으로 뭉친 금융 실세들이 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소리다. 모피아로 대변되던 관료 출신들과 경기고와 서울대, 고려대 출신의 금융인들이 다소 주춤하는 사이 최근에는 서강대와 연세대 출신들이 빠르게 금융권을 접수하고 있다.


2013년 6월 ‘곰탕회동’으로 회자된 만남이 있었다. 당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가 경제 현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기 위해 서울 명동의 한 곰탕집에서 만난 것인데 당시 두 사람 간 대화만큼이나 개인적인 인연도 화제가 됐다.

현 전 부총리와 김 전 총재는 경기고, 서울대 3년 선후배 사이로 나란히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김 전 총재의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자리를 4년 차이로 현 부총리가 넘겨받는 등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 사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당시 경제 관료와 금융권 다수 임원의 프로필에는 ‘KS(경기고와 서울대)’는 수식어처럼 따라다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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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MB) 정부 시절 고려대 출신의 위세도 상당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른바 금융권을 호령하던 4대 천황 중 3명(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고려대 동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KS’와 고려대 출신은 금융·경제 분야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었다.

한 금융지주사 임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고려대 출신들이 워낙 단결력이 강해 내부적으로 고대 사모임을 금지하기도 했다”며 “특정 대학의 사모임을 금지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전했다.


금융권 실세로 떠오른 연세·서강대 인맥
최근에는 연세대 출신들이 빠르게 금융권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2014년 6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연세대 상경대학 동문인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내정자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황해하며 “국회 업무보고 당시 먼발치에서 바라본 것 말고 그 이상의 관계는 없다”며 “최 내정자도 총재가 되고 나서야 내 이름을 알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경환 부총리는 연세대 경제학과 75학번, 이주열 총재는 같은 대학 경영학과 70학번으로 이 총재가 5년 선배다.

최근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연세대 경제학과 78학번인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합류하며 기재부-금융위-한은으로 이어지는 경제 라인 삼각 축이 모두 연세대 출신들로 채워지게 됐다. 임 위원장은 최 부총리와 2년 정도 학창 시절을 같이 보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연세대 출신의 금융인들은 2008년 7월 ‘연세금융인회(연금회)’를 출범시킨 바 있다. 이어 2005년 ‘연경 금융리더스포럼’을 다시 발족했다. 그동안 연세대 출신 금융인들은 고려대 출신들의 위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었다. 고금회로도 알려진 호금회(고려대의 상징인 호랑이와 금융인의 합성어)나 고대경제인회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연경 금융리더스포럼의 초대 회장 박종원 전 코리안리 사장이 기틀을 닦은 뒤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영어영문 74), 김한조 외환은행장(불어불문 75), 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경영 70) 등 연세대 출신의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속속 배출되며 탄력을 받았다.

그동안 금융협회나 금융사의 수장 자리에는 어김없이 당국의 입김이 몰아쳤다.

하지만 최근 관료 출신 낙하산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며 4대 금융협회인 전국은행연합회(하영구 전 씨티은행장), 생명보험협회(이수창 전 삼성생명 사장), 손해보험협회(장남식 전 LIG손보 사장), 한국금융투자협회(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가 모두 민간 출신의 수장으로 채워지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관료 출신들이 비운 자리를 빠르게 채워 나간 인사들이 바로 서강대 출신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들은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수학 67)을 위시해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경제 71), 이광구 우리은행장(경영 76), 홍성국 KDB대우증권 사장(정외 82), 정연대 코스콤 사장(수학 71), 이경로 한화생명 부사장(경영 76), 김병헌 LIG손해보험 사장(경영 76) 등이 있으며, 금융권에 막강 인맥 라인을 구축했다.

금융권 일부에서는 서강금융인회(서금회) 출신들이 정치적 인맥들을 동원해 무리하게 로비를 펼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에 이광구 행장은 취임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서금회는 단지 식사 모임일 뿐”이라며 일부의 추측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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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회는 박 대통령이 2007년 당내 대선 경선에서 낙마한 직후에 결성됐다. 박지우 KB캐피탈 사장 등 서강대 75학번 금융인 10여 명이 창립 멤버로 알려져 있으며, 매년 두 차례 정기적인 친목 모임을 갖는다. 이 모임은 금융가에 주목을 끌며 어느덧 회원 수는 300명을 넘어섰다.

서강대와 연세대의 위세에는 못 미치지만 고려대 출신들도 서진원 전 신한은행장(사학 70)의 바통을 이어받은 조용병 신한은행장(법학 78)과 김한철 기술보증기금 이사장(행정 74)이 건재해 있으며,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법학 73),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행정 73) 등 성균관대 금융인들도 성대 금융인 모임인 성금회를 주축으로 활발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금융수장 임종룡과 진웅섭의 인맥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폭 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우선 최경환 부총리는 연세대 경제학과 직속 3년 선배다. 또 그는 전남 보성 출신으로 최근 부쩍 많아진 호남 출신 인사들과 친밀감이 높다. 은행권 CEO 중 호남 출신으로는 윤종규 회장(전남 나주),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전남 강진), 권선주 은행장(전북 전주) 등이 있다.

임종룡 위원장은 행정고시 24회 출신으로 동기에는 같은 연세대 출신의 강호인 전 조달청장, 최규연 저축은행중앙회장 등이 있으며, 행시 20회로 4기수 선배였던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과도 절친이었다. 특히 이 둘은 과거 우리투자증권 인수와 관련해 대결을 펼치기도 했는데 임종룡 위원장이 임영록 전 회장에게 “형님, 이번에는 제가 꼭 인수합니다”라고 어깃장을 놓는 등 격이 없는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행시 24회 동기인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과도 막역한 사이로 전해지고 있으며, 행시 동기생들과 청풍초(靑風草)라는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연세대 동기인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공교롭게도 유 사장은 최근 이사회에서 재선임안이 통과돼 한국투자증권을 9년 연속 이끌 수 있게 됐다.

임 위원장은 황영기 금투협 회장과도 나이를 떠나 과거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시절 금융, 경제 관련 업무로 인연을 맺은 이후 지속적으로 교류를 나눠 오고 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동지상고를 중퇴한 후 검정고시를 거쳐 건국대에 입학했으며, 학연보다는 공직 사회에서의 인연이 더 두텁다. 행시 28회로 합격해 재무부에 들어와 이규성 재무부 장관의 수행비서 사무관으로 일하며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행시 21회)과 최수현 전 금융감독원장(행시 25회)을 알게 됐으며, 군대를 다녀온 뒤 행시 30회 후배들과 연수를 같이 받은 인연으로 안완기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김기용 전 경찰청장 등 30회 출신들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재무부 법무담당관실 수습사무관 시절에 함께 일한 인연으로 최상목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과 유지창 유진투자증권 회장 등과도 친분을 맺고 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