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농부 박영옥의 투자 칼럼 - 아홉 번째
주식을 통해 큰 소득을 올린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왠지 불편하다. 주식투자가 도깨비방망이도 아닐 터인데 마치 불로소득을 거둔 행운아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하지만 주식투자는 시간과 인내를 투자한 치열한 노동의 산물이며, 개인투자자가 기관이나 외국인들과 상대해 수익을 낼 수 있는 포인트도 바로 ‘시간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미 주식시장을 경험한 투자 선배들 중에는 주식시장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분을 걱정하는 그들의 마음은 진심이다. 여차하면 도시락 싸들고 말릴 기세로 절대 주식투자를 하지 말라고 한다.그들에게 주식시장은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 그리고 대주주의 음모가 횡행하는 곳이다. 개인투자자는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으며 그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처절한 실패담을 들려주기도 할 것이다.
개인투자자가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를 이길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맞다. 자본, 정보력, 인력을 비롯해 주식투자에 쏟을 수 있는 시간까지 절대적으로 열세다. “개인투자자는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필자의 대답은 “그렇다”다. 그러나 “주식투자를 하지 말라는 말이냐”라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필자는 다음의 질문으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꼭 그들과 싸워야만 하는가?” 기관·외국인 투자자와 싸운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주식투자를 수급으로 본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빠져 있는 것이 바로 주식의 본질인 기업이다.
시간이라는 종목의 경주를 펼쳐라
매년 매출이 늘고 수익도 늘어가는 기업이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외국인들이 자금을 회수하면서 주가가 급락한다고 하자. 그래도 기업의 수익은 줄지 않는다. 그러면 좋은 기업의 주식을 싸게 매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반대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전망이 불투명한 기업의 주식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누군가 대량 매수한다고 하자. 그러면 기업의 가치가 갑자기 올라가는가. 전업 투자자로 일하고 있는 필자도 외국인과 기관이 왜 사고파는지, 그들의 자금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야 ‘이러저러한 이유로 국내에 자금이 유입됐구나’라고 추정하는 정도다. 그나마 이것도 전체적인 그림일 뿐이고, 개별 기업의 어떤 면을 긍정적으로 봐서 매수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알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기업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수급에 흔들리면 작전세력의 먹잇감이 되기에 딱 좋다. 갑자기 매수세가 폭증할 때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일주일 내내 상한가를 갈 만큼 대형 호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호재는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 모두가 아는 호재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나의 기회가 아니다. 외국인, 기관, 작전세력의 수급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칼자루를 내주고 시작하는 싸움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토끼와 거북이’라는 우화의 교훈은 잘났다고 자만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빠른 자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아이들이 이 우화를 읽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도 아니고 단 한 번의 경기로 끝나지도 않는다. 한 번 잠을 잔 토끼는 다음에는 결승점에 도달할 때까지 절대로 잠을 자지 않을 것이고 더 나은 성과를 낼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치명적인 문제는 애초에 거북이가 자신에게 불리한 이 경기를 승낙했다는 데 있다. 토끼가 약을 올리며 달리기 경주를 제안했을 때 거북이는 이렇게 대응했어야 한다.
“좋아! 그럼 내일 해변에서 만나. 저 앞에 보이는 섬까지 왕복하는 거야.”
거북이의 다리는 뜀박질이 아니라 헤엄에 최적화 돼 있다. 왜 짧고 굵은 다리로 달리기 경주를 하는가. 이는 개인투자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왜 거대 자본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금액으로 수급이라는 경주를 하는가. 왜 최강의 정보력을 가진 그들과 정보력이라는 경주를 하려고 하는가.
개인투자자들은 시간이라는 종목의 경주를 해야 한다. 이는 장기 투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관과 외국인은 팔아야 할 때가 있고 사야 할 때가 있다. 사실 말이 ‘외국인’이지, 세계인의 돈이 모인 ‘거대 자본’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다르다. 마음에 드는 기업,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기업이 나타날 때까지 투자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주가가 올라도 매도하지 않고 더 기다릴 수 있다. 평생 가지고 있다가 자식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도 있다.
심리적 차원에서 보면 ‘느긋함’이다. 도가 튼 느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기업을 꼼꼼하게 살피고 지켜본 다음에 투자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꼼꼼하게 살펴본 후 투자를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주인이 된 다음에 관찰과 소통이라는 정성을 쏟아야 시간이 여러분의 편이 돼준다.
주식투자는 치열한 노동이다
현란하게 오르내리는 시세는 여러분에게 지금 당장 경주를 시작하자고 유혹한다. 당신이 불리한 것은 맞지만 그래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고, 인생 모르는 거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딱 봐도 짧은 건 굳이 대볼 필요가 없다. 인생은 모르는 거라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올 확률은 극히 낮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그래서 ‘의외’인 것이다. 서두를 것 없다. 충분히 공부하면서 투자해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내실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해 공부를 하던 중에 시장이 기업의 가치를 인정해서 주가가 제 가치까지 상승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헛된 시간을 보낸 건 아니다. 여러분의 실력이 상승했으니까 말이다. 주식투자로 번 돈은 자주 불로소득으로 간주된다. 그들의 구분법에 따르면 필자는 지난 10여 년 동안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도 있고 직원들도 있는데, 그렇다면 필자와 직원들은 여기 모여서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현장탐방이랍시고 전국을 다녔는데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새벽에 일어나서 세계 시황을 살피는 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눈은 자주 씀벅거리고 때로는 코피를 쏟기도 한다. 가장 궁금한 것은 노동을 하지 않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그들은 도대체 왜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것일까.
필자는 사람들이 내 자산을 거론하면서 부럽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운이 따라준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엎드려 절 받는 것 같아 머쓱하지만 필자가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면 그에게 할 말은 이것이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어요?” 부럽다는 감정만으로 변화를 일으키기는 어렵다.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아야 그것을 참고해 자신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을 들은 사람도 자신의 고생을 알아준다는 느낌 때문에 최대한 많은 노하우를 알려주려고 할 것이다.
그의 성공은 그의 것이다. 함부로 부럽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아름다운 동작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발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은 개인투자자의 절대 무기이면서 가장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시간을 절대 무기로 활용하기 위해선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식투자를 시작한 사람은 100만 원이 200만 원이 되고, 200만 원이 400만 원이 되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발레리나의 발을 떠올릴 줄 아는 투자자는 ‘만만치 않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시간을 인내와 노력으로 채우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인생 뭐 있나. 그냥 즐기면서 살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결단에 결단을 거듭해야 한다.
주식투자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매수를 클릭하면 ‘펑’ 하면서 순식간에 수익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무와 같다. 나무는 온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성장하는 순간을 알아챌 수 없지만 열심히 거름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다 보면 어느 순간 훌쩍 자라 있다. 투자 수익금은 불로소득이 아니다. 치열한 노동의 결과다. 여러분이 이 말을 반드시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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