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말, 일본의 재벌 3세 회장이 도박으로 큰 금액을 잃으며 회사를 떠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은 일본에서도 큰 논란거리였다. 이 재벌 3세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제왕학’을 배우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지만,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말았다. 자녀 양육의 실패가 가업승계의 실패로 이어진 뼈아픈 사례다.
[FAMILY BUSINESS CONSULTING] 제왕학 가르친 다이오제지가 가업승계에 실패한 까닭
사건의 주인공은 1943년 창립한 다이오제지(大王製紙) 창업자의 손자. 그는 2007년 사장, 2011년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다이오제지는 연간 매출 4조 원 규모로 일본 제지업계 3위였으며, 계열사가 35개에 달했다. 그는 일본 최고 명문인 도쿄대 법학부 출신의 엘리트 경영인으로, 평소 “나는 다른 창업자 가족 최고경영자(CEO)와는 다르다”고 말하는 등 엘리트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개인 재산을 불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식투자 등 재테크를 했지만, 2008년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거액의 손실을 보자 이를 만회하려다 본격적으로 도박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1500억 원이 넘는 돈을 탕진하는 데는 2년도 걸리지 않았다. 주로 싱가포르와 마카오 카지노의 VIP 룸을 이용했으며, 하룻밤 사이에 약 22억 원을 날리기도 했다. 회사 돈을 유용한 사실이 발각되기 직전에는 일주일 만에 150억 원을 인출하는 등 시간이 갈수록 베팅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의 파멸에 대해 엘리트의 실패 없는 성공 과정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제왕학(帝王學)을 배웠지만 진정한 친구를 사귀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는 유흥가에서 돈을 물 쓰듯 쓰는 ‘밤의 신사’로 통했고, 연예인들과 마작을 즐겼다. 그의 아버지인 전 회장은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비행기에 태워 도쿄의 학원에 보내는 등 누구보다도 자녀 교육에 열성이었다. 그러나 3세 경영자는 기업에 대한 책임보다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데 관심이 많았고 그것이 기업을 떠나는 원인이 됐다. 창업자 가족이 보유하고 있던 다이오제지 주식은 호쿠에쓰키슈(北越紀州) 제지로 넘어갔다.


장수 가족기업의 리더가 가져야 할 ‘청지기 정신’
다이오제지의 실패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세계 장수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갖춘 스튜어드십이 결여된 데 있다. 이에 더해 세대 간 올바른 가치와 경영철학을 이전하는 데 실패한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스튜어드십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건강하고 가치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켜 다음 세대에 성공적으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높은 책임의식을 의미한다.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청지기 정신’과 같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다. 그들의 역할은 자신이 맡은 것을 구성원의 가치와 비전에 따라 멋지게 관리하고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이론에 따르면 장수 가족기업의 리더는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 성과, 주주의 이익보다는 직원, 고객, 사회 등의 이해관계자를 더 중시한다. 그들은 더 높은 차원의 니즈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므로 회사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면서도 관리자로서 역할을 다한다. 그들은 현재뿐 아니라 자녀와 손자 세대까지 고려해 장기적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한다. 독일의 한 히든 챔피언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연도가 아니라 세대 차원에서 생각합니다. 회사가 다음 분기에 잘될지 어떨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세대를 이어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속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단기적인 목표들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의 장기적 전략과 비전은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항상 단기적 성공만 추구하는 사람에 비해 우월하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스튜어드십이 낮은 경영자는 기업을 개인 사유물로 여긴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승계를 전후해 가족 간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 오너경영자가 기업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거나 독단적인 의사결정으로 기업을 곤란에 빠뜨리는 것도 다 여기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가족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단지 한 가족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앞서 살펴봤듯, 기업을 개인의 사유물로 여기는 행위는 결국 기업의 영속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자녀 양육의 실패는 결국 가업승계의 실패로 이어진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람은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해 돈을 물 쓰듯 쓰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양육된 자녀들은 기업을 가족과 사회의 공동 재산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기 쉽다. 부모들은 풍요롭고 안정적인 기업을 이루는 것이 가족의 안녕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스튜어드십,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장수 가족기업에서는 각 세대가 의식적으로 스튜어드십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설립했거나 상속받았던 것보다 더 나은 기업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려면 이에 걸맞은 가족문화와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이는 ‘자녀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 ‘가족과 기업의 궁극적인 목표와 비전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돼야 한다.

스튜어드십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첫째, 자녀를 포함한 모든 가족이 가족의 핵심 가치(가훈)와 명확한 미래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은 하나로 묶인다. 그리고 이는 가족관계를 망칠 수도 있는 여러 문제를 극복하는 기반이 된다.

둘째, 부모들은 기업에 대한 가족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의사결정과 과업 하나하나에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들으며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가족은 자녀들과 함께 기업이 나아갈 방향이나 비전을 공유하며 동기부여를 하기도 한다. 따라서 가업승계를 계획하는 경영자라면 어떤 식으로든 자녀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가족기업을 영속기업으로 이어가게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껏 살펴본 것처럼 가족기업이 영속하려면 스튜어드십을 계승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시아드(INSEAD) 가족기업연구소의 랜들 칼록(Randel Carlock) 박사는 가족기업을 평가할 때 일반 기업의 성과 측정 방법에다 하나를 더해야 한다고 했다. 바로 스튜어드십에 대한 측정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성과 지표는 두 가지로 측정한다. 하나는 경영 성과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 창출이다. 우선, 경영 성과는 현금흐름이나 생산성, 수익성의 관점에서 특정 기간 비즈니스의 결과에 대한 재무적 효율성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영층이나 이사회에서는 분기별로 또는 연간 단위로 이러한 지표를 검토한다. 둘째, 가치 창출의 측정이란 경영 전략의 효율성이나 주주 및 이해관계자를 위한 장기적 가치 창출에 관해 측정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새로운 시장 개발, 재무 건전성, 경영팀의 자질, 그리고 효율적 지배구조 등이 포함된다.

칼록 박사는 여기에 더해 가족기업의 경우 스튜어드십을 측정하도록 제안했다. 스튜어트십 측정이란 가족들이 오너로서 또는 관리자로서 기업 성공을 위해 지속적으로 헌신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즉 스튜어드십은 인적 투자, 리더와 관리자로서의 행동, 전문성, 직원에 대한 배려, 자선활동 또는 공정성과 같은 관점에서 가족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가족기업이 대를 이어 영속하려면 일반 기업처럼 단순히 재무적으로만 측정해서는 안 되며, 스튜어트십 측정 등 평가 방법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