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준 쿠노요 대표
유럽 출장을 다녀오던 비행기 안에서 문득 오십이라는 나이의 무게가 느껴졌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자’는 생각 하나로, 30년을 다닌 넥타이부대 생활을 뒤로했다. 사표를 내고 4개월 만에 그는 사케 바 주인이 됐다. 박호준 쿠노요 대표의 이야기다. 어스름 해가 지고 상점마다 부산스레 불을 밝히며 도시의 밤을 여는 시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자그마한 사케 바를 찾았다. 무거운 나무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자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비욘의 아내’에 등장하는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일본 선술집의 정취가 그대로 오버랩 됐다. 실제로 가게 분위기는 일본풍의 소품들이 옹기종기 창틀마다 앉아 있어 시간여행을 하는 듯하다. 신주쿠 뒷골목의 여느 사케 바처럼 하루의 쳇바퀴를 마감하고 느슨한 넥타이 차림으로 마주 앉은 직장인들이 벌써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쿠노요’라는 이 사케 바의 대표인 박호준(57) 씨가 가게 이름의 뜻부터 설명해준다. “쿠는 먹을 식, 노는 마실 음, 요가 취할 요 한자입니다. 먹고 마시고 취하자의 약자죠. 인생 뭐 있나요”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여유가 많아 한량처럼 술집을 차렸나보다’라고 으레 짐작할 수 있겠으나 지금의 가로수길이 알려지기 전 이 동네 뒷골목에 터를 잡고 사케 좀 안다는 손님들이 부러 찾아오는 터줏대감 같은 가게가 되기까지 9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다른 술집과 달리 그는 술이 주(主), 이에 곁들여 먹는 음식이 종(從)이라는 나름의 철칙을 갖고 있다. “한겨울에 몸 좀 녹이자 생각에 따끈하게 덥힌 사케를 주문했더니 주인장이 나와서 사케는 차게 마시는 것이 좋다고 부드럽고 강력하게 말해 얼떨결에 그 말에 따랐다”는 친구의 전언도 쿠노요에 대한 믿음을 한층 더해준 것이 사실이다. 좋은 사케를 손님에게 알리겠다는 신념으로 장사를 해온 탓일까. 사케를 매개로 마음을 터놓는 손님이자 술친구도 늘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쿠노요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단골이고 JP모건 직원들의 회식 장소가 될 정도로 제대로 된 사케 바가 됐다.
빨간 양말에 담긴 열정의 의미
스타일이 좋은 박 대표를 처음 본 순간, 이런 별명을 붙여주고 싶었다. 가로수길의 조지 클루니. 희끗희끗한 대로 연륜이 느껴지는 짧은 헤어스타일은 깔끔해 보였고 화려한 컬러가 믹스된 체크 패턴의 재킷에 청바지를 매치했다. 얼굴형에 잘 어울리는 동그란 뿔테 안경은 요즘 가장 트렌디하다는 홍대 앞에서 마주칠 법한 20대 남성 패션의 필수품 같아 보인다. 여기에 마지막 반전 패션이 하나 더 있다. 갑자기 청바지 단을 올리더니 신고 있는 새빨간 양말을 보여준다. 빨간 양말을 너무 좋아해서 일본으로 여행 갈 때마다 수십 켤레씩 사오는 양말 전문점도 있단다. 이쯤해서 그의 전직이 궁금해질 터. 다름 아닌 패션디자이너 겸 기획을 해 왔다. 회사 다니던 때의 일을 묻자 대뜸 “트래디셔널 캐주얼 스타일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문을 연 박 대표. 그의 첫 직장은 쌍방울이었고 곧이어 국내에 폴로랄프로렌을 처음으로 들여온 멤버였다. 제일모직 빈폴 브랜드의 이름을 만들고 트레이드마크인 자전거 로고도 직접 만들었다. 마지막 직장은 다시 쌍방울에서 속옷 디자인을 하면서 ‘남성 란제리 디자인 실장 1호’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여성 속옷을 만드는 직업이었으니 퇴사할 때는 주변의 동성 친구들이 “그 좋은 직장을 왜 때려치우느냐”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고.
하지만 마지막 직장인 쌍방울 재직 당시 유럽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문득 ‘이제 곧 쉰 살인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고 폴로랄프로렌 일본 지사 시절 때부터 마셔 온 사케 전문 술집을 차리자는 결심을 했다. “당시에 월급의 70% 이상을 사케 사 마시는 데 썼던 때였지요. 이럴 바에는 원가로 마시자 싶어 그냥 사케 바를 차렸어요. 술이 여자보다 좋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좋아하는 걸 일로 하니 더할 나위 없겠다 싶었죠.”
남들 보기에 무모하게 시작해 술집 사장이 됐지만 그가 얻은 것은 공짜 술만이 아니었다. 방송·광고업계 직종의 손님이 자주 찾아왔는데 단골이던 광고감독에게서 어느 날 모델이 펑크를 내 대신 모델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광고모델이 됐다. 톱스타들도 꿰차기 힘들다는 단독 모델로 활약한 화장품 스킨푸드의 광고‘딸 상견례’ 편을 떠올리면 ‘아~, 그 사람’ 하고 낯이 익을 것이다. 박 대표의 멋과 맛에 취한 ‘열정 인생 시즌 2편’을 들어봤다.
대표님 원래 직업은 패션디자이너 겸 디렉터셨지요.
“직장 생활을 1982년에 시작했어요. 첫 직장이 쌍방울이었고 여자 팬티 디자이너였지요. 캐주얼 의류를 하고 싶어 회사를 옮기고 폴로랄프로렌 브랜드 론칭 멤버로 활약하고 이후 빈폴, 동일레나운의 까르뜨블랑슈 등 신규 브랜드를 많이 만들었어요. 마지막 직장에서는 란제리 디자이너 실장이었어요. 남자니까 쉽지 않았지요. 란제리 시장 분석도 해야 하고 여성 몸에 대해서도 완벽히 알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원래 디자이너고 패션을 사랑하니 일이 재미있었어요. 속옷이 다른 어떤 옷보다 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기능적인 면도 크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거든요.”
30년 가까이 해 온 좋아하던 일을 그만두시고 사케 바를 차리셨는데요.
“란제리 쇼에 참석차 유럽 출장을 다녀오던 때였어요. 문득 쉰 살이 코앞이라는 생각을 하자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자’라고 결심을 했어요. 뭐든 하면 부수적으로 돈은 벌리겠지 싶었어요. 사실 돈을 벌겠단 생각으로 시작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후배들한테 가게 차려서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누차 말해줘요. 좋아서 하는 일 아니면 못 한다고 합니다.”
사케 바는 순전히 사케가 좋아서 시작하신 거군요.
“가게 문을 닫으면 내일부터 당장 사케를 못 마셔서 그만둘 수가 없어요. 오픈한 지 9년이 다 돼 가는데 농담이 아니라 사케와 사랑에 빠져서 가게를 열었지요. 폴로랄프로렌 일본 지사로 파견 나가 있는 동안 제가 일본에 있는 모든 사케를 다 마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사케 바에서 일했는데 손님들이 마시고 남긴 사케 병을 모아 마시는 게 제 낙일 정도였어요.” 사케의 어떤 매력에 그렇게 빠지신 건가요.
“일단 저와 궁합이 잘 맞아요. 사케 바에서 아르바이트 할 당시에 술을 여럿 섞어 마셔도 안 취하더군요. 발효주가 좋은 술인데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술을 꼽자면 열매로 빚은 술은 와인이고 곡물로 빚은 술은 사케와 막걸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술에 대해 공부도 많이 했어요. 영양소가 가장 많은 술이 사케, 막걸리거든요. 둘 다 탄수화물, 미네랄, 아미노산까지 굉장히 풍부해요. 여기에 생막걸리의 경우 유산균까지 풍부하죠. 건강을 생각하면 이 좋은 술을 나라에서 제대로 키워줘야 하는데 일본에 비하면 그 점이 참 안타깝습니다.”
패션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하시다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하셨는데 불안함은 없으셨나요.
“월급쟁이만 30년 하다 술장사를 하는데 당연히 처음엔 겁이 났지요. 장사해서 돈을 번다기보다는 제가 좋아서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저는 뭐든지 열심히 한다는 겁니다. 제 모토가 ‘패션(fashion)은 패션(passion)이다’였어요. 열정이 중요합니다. 제가 가끔 사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 서면 제목을 ‘열정은 스펙을 이긴다’라고 정해요. 열정은 재능을 이기고 재능은 스펙을 이기게 돼 있어요. 나이에 상관없이 열정을 갖고 사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 보니 사케 바를 차리고서도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술에 대해 공부하고 다른 사케 바에 다니면서 배우고 노력했어요.”
가게 위치가 좋은데 가로수길이 이렇게 뜨리라 예상하신 건지요.
“쌍방울에 재직 당시 산책으로 가끔 들렀던 동네였지요. 이렇게 탈바꿈할지 몰랐지요. 그땐 막연히 뉴욕의 소호랑 비슷하다 생각하고 여기에 자리를 잡았어요. 일부러 가로수길 대로변에 자리를 안 잡고 한 골목 더 들어온 이유도 있었지요. 사케라는 술이 원래 뒤에 숨은 듯 다가오는 ‘숨겨진 맛’이 있어요. 그 느낌을 살리려고 이곳에 차렸는데, 아마 대로변에 차렸으면 제가 돈 좀 더 벌었을 거예요. (웃음)”
인테리어 디자인도 직접 하셨다고요.
“술 맛 나는 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목수 데려다가 인테리어를 하나하나 구상하고 만들었어요. 손님들에게 편안하고 운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어서 빈티지를 콘셉트로 정하고 그간 모아 온 제 소품을 활용했어요. 폴로랄프로렌의 화보 콘셉트가 소품 기법이에요. 유행 타지 않는 트래디셔널 브랜드를 추구하면서 소품만 변화를 주었거든요. 오래된 인형, 빈티지 트렁크 장난감, 일본풍 소품이 다 그때부터 모아 온 것들이죠.”
단골손님 덕에 광고모델이라는 세컨드 잡도 생기셨어요.
“광고인, 의상디자이너, 영화감독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주로 40대에서 50대로 제 또래입니다. 손님 오시면 제가 사케에 관한 설명도 많이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려고 합니다. 제가 술 파는 사람인데 술에 대해 잘 모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처럼 편해지더군요. 어느 날 광고감독이 모델이 펑크를 냈으니 모델 역을 해달라고 하면서 그 일을 시작했는데 그 뒤로 한국투자신탁, SKT, 한국씨티은행 등 많은 광고를 촬영했죠. 단독으로 찍은 스킨푸드 광고 보셨죠. 톱스타들도 찍기 어려운 단독 광고모델을 했다니까요. (웃음)”
디자이너 출신이라 그런지 패션이 멋지세요.
“저는 세 가지 액세서리에 특별히 신경 씁니다. 벨트, 양말, 넥타이예요. 해외에 나갈 때는 넥타이와 양말을 꼭 사 옵니다. 빨간 양말을 하도 좋아하다 보니 자주 신는데 식당 가서 구두 벗으면 다들 제 발 쳐다보느라 바빠요. 당연히 정장 입을 땐 안 신어요. 양말은 구두에 맞추는 것이 아니고 팬츠 컬러에 맞추는 겁니다. 빨간색이 어떤 색과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제가 선호하는 겁니다.”
중년이 돼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못 찾는 분들이 많은데요.
“우리나라는 옷차림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이 너무 열악해요. 일본은 기업에 입사하면 신입사원 교육에 패션은 물론 수염 깎는 법까지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요. 블레이저란 라펠이 달린 재킷이거든요. 남성 패션의 기본은 이 블레이저인데도 한국 남자들은 점퍼를 입고 다니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제대로 된 블레이저만 입어도 그 사람이 달라 보이는 데 말이죠. 옷차림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이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베이비붐 세대이신데, 주위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어떠신가요.
“우리 58년생 개띠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말 그대로 죽도록 일만 했어요. 가정보다는 회사에서 맡은 바 일을 미친 듯이 했는데 나이 들고 은퇴하고 나니 사생활이 없는 거죠. 여유 갖고 이제 살 만할 때가 왔는데 경제적으로 넉넉하든, 어렵든 나름의 고민들이 다들 있더라고요. 그래서 참 안타깝습니다. 저는 중산층이지만 부자의 기준이라는 것이 마음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가짐을 편안하게 갖고 젊었을 때 스펙이나 배경보다는 전문적인 일을 찾아 열정을 갖고 사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할 듯합니다.
“저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뭐라도 자꾸 하고 싶어요. 요즘은 수제 맥주를 배우러 다니고 있습니다. 강원도에 맥주 공장을 만들어 공급하는 것을 구상 중이에요. 정용진 부회장이 얼마 전 데블스 도어를 열었잖습니까. 그게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거였어요. 인생이 늘 재미있었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듭니다. 저는 호텔 웨이터도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전직 삼미그룹 부회장님이 호텔에서 웨이터를 하셨잖아요. 새로운 세계를 살고 싶은 욕구가 늘 있어요. 패션업체의 후배에게 언제든 무료 강연을 하겠다고 하고 돈 안 받아도 되니 일 있으면 저를 불러 달라고 합니다. 회사 다니면서 세계 각국으로 출장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보고 배웠습니다. 그 혜택을 받아 왔으니 이제는 제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개인만의 지식으로 끝내기엔 저 스스로 배신감마저 듭니다. 죄책감이랄까요. 제가 쌓아 온 것들을 이제 나눠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기획 박진영 기자│글 이지혜 객원기자│사진 서범세 기자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