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의 양적완화 정책 결정이 Fed의 양적완화와 마찬가지로 자산 가격과 실물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유로존의 현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실제 효과는 미지수다. Fed의 양적완화 추진 당시보다 유로존 내 국채금리 수준이 이미 낮게 유지돼 있어 국채 매입에 따른 실제 효과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른 시일 내 유로 경기 회복이 어렵다면 ECB 양적완화 정책의 궁극적 목표인 ‘디플레이션 탈피’도 상당 기간 경과해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변동 요인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경제성장률, 원유 가격 변화율, 비원유 상품가격 변화율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ECB 양적완화 효과는 미지수
국제금융시장에서 캐리 트레이드란 증권 브로커가 차입한 자금으로 주식과 같은 유가증권의 투자를 늘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 투자한 유가증권의 수익률이 차입 금리보다 높을 경우 ‘포지티브 캐리(positive carry)’라 하고, 그 반대의 경우를 ‘네거티브 캐리(negative carry)’로 구분한다.
차입한 통화에 따라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과 달러 캐리 트레이드 자금으로 양분화 돼 왔으나 유럽 재정위기 이후 유로 캐리 트레이드 자금도 부쩍 증가하고 있다. 캐리 트레이드를 운용하는 주체도 엔 캐리의 경우 ‘와타나베 부인’, 달러 캐리의 경우 ‘스미스 부인’, 유로 캐리의 경우 ‘소피아 부인’으로 차입국의 가장 흔한 성(姓)을 따서 부른다.
캐리 트레이드의 이론적 근거는 피셔의 국제간 ‘자금이동설[m=rd-(re+e), m은 자금 유입 규모, rd는 투자 대상국 수익률, re는 차입국 금리, e는 환율 변동분]’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투자 대상국의 수익률이 통화가치를 감안한 차입국 금리보다 높을 경우 차입국 통화로 표시된 자금을 차입해 투자 대상국의 유가증권에 투자하게 된다.
7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들이 통화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모두가 저금리를 지향해 각국 간 금리 차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웠던 여건이 올해 들어서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각종 캐리 자금 흐름은 각국 간 금리 차에서 올 수 있는 수익보다 환차익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신흥국과 우리처럼 준선진국 입장에서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은 캐리 트레이드는 반드시 레버리지(증거금 대비 총투자 가능 금액 비율) 투자와 결부된다는 점이다. 어떤 국가에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유입될 때마다 레버리지 투자로 자금이 증폭돼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자산 거품이 쉽게 발생하고 반대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이탈될 경우 디레버리지(투자 원금 회수) 현상까지 겹쳐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신용경색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종 캐리 자금이 신흥국에 유·출입될 때 투자자를 비롯한 모든 경제주체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이 심하게 나타나는 점이다. 경기순응성이란 금융 시스템이 경기 변동을 증폭시킴으로써 금융 불안을 초래하는 금융과 실물 간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차입국 통화별 캐리 자금 흐름을 살펴보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캐리 자금은 주로 엔 캐리 트레이드를 주도하는 ‘와타나베 부인’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당시 제로금리 정책에 따라 엔 캐리 트레이드 조건이 충족됐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아베노믹스가 추진된 이후 1990년대 중반과 비슷한 여건이 조성되다가 올해 들어서는 다소 완화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를 주도하는 ‘스미스 부인’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한때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엔 캐리 트레이드를 웃돌 만큼 급증했다가 작년 10월 양적완화 종료 이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그리스의 선택이 변수
유럽 재정위기가 발생된 이후 유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을 주도하는 소피아 부인의 활동도 눈에 띈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ECB가 미국식 양적완화 추진 계획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유로화가 뚜렷한 약세를 보임에 따라 유로 캐리 포지티브 트레이드 여건이 재차 형성돼 앞으로 소피아 부인의 향방이 가장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갈수록 유로 캐리 트레이드와 소피아 부인의 향방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유로화 가치가 추가적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ECB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올해 3월부터 매월 600억 유로의 자산 매입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할 경우 유로화 가치의 추가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렉시트’ 우려와 관련해 그리스 집권에 성공한 알렉시스 치프라스 신임 총리가 앞으로 어떤 방안을 선택하느냐도 유로화 가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그렉시트(Grexit, Greece+exit)’와 그대로 잔존시키는 ‘G-유로(Greece+Euro)’ 방안이다.
이 중 ‘G-유로’는 외형상으로 그리스를 유로존에 잔존시키면서 독자적인 경제 운용권을 주는 방식이다. 이때 그리스와 같은 경제취약국은 수렴 조건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위기를 풀어갈 수 있고, 독일 등 경제핵심국은 구제금융 부담을 덜 수 있는 ‘윈윈(win-win) 방식’으로 ‘그렉시트’보다 현실적이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도 이 방안에는 동조하고 있으나, 그렉시트 우려가 높아지는 것은 구제금융 수용 조건인 긴축을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 때문이다. 경제의 취약 정도가 심한 회원국일수록 재정 긴축에 따른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타격이 심하기 때문에 트로이카(EU, ECB, IMF)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 예측기관들은 유로화의 약세 흐름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로화 환율 전망과 관련해 가장 보수적으로 보고 있는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내놓은 ‘올해 세계경제전망(The World in 2015)’에서는 등가수준(1유로=1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3월부터 ECB의 양적완화 정책에 따라 자금이 본격적으로 풀릴 경우 크게 3가지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유로 내에서는 독일로의 ‘쏠림 현상(tipping effect)’, 시중에서 아예 빠지는 ‘퇴장 효과(hoarding effect)’, 유로존 밖으로 이탈되는 ‘누수 효과(drain effect)’다.
캐리 자금의 성격이 강한 유로 밖으로 이탈되는 자금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유로 역외국, 대만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지역으로 마치 부챗살처럼 흐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이런 조짐은 올해 1월 말 ECB의 양적완화 정책 발표 이후 글로벌 자금의 움직임을 보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유로화를 조달해 원화 자산에 투자할 때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보여주는 유로·원 캐리 트레이드 지수도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유로화 자금이 우리에게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유로·원 캐리 트레이드 지수는 1월에는 지난 14년 이래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
이는 양적완화 확대로 유로화 조달 비용이 낮아진 반면, 우리나라는 기준금리가 2%로 상대적으로 높은 데다 막대한 경상흑자 외환보유액으로 환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원화가 가파른 약세를 보이면 환차손을 볼 수 있지만, 한국의 경우 안정적인 외화 안전망으로 원화 가치가 급락할 가능성이 낮다.
특히 경제 위상별로 볼 때 우리는 준(準)선진국 위치에 있기 때문에 신흥국과 다른 통로로 영향을 미친다. ECB의 양적완화로 선진국의 장점인 금융시장 안정은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외자 유입 시 과다, 이탈 시 제한)됨에 따라 다른 신흥국(외자 유입 시 과소, 이탈 시 과다) 통화에 대해서도 원화 가치가 불리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유럽 이외의 수출 지역이 다변화됐다 하더라도 국내 수출기업들이 환율상으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낀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샌드위치 쇼크(sandwich shock)’다. 이 때문에 아베노믹스 추진 이후 국내 수출기업들은 엔저에 따른 쇼크를 받았으나 올해 들어서는 ‘유로화 초약세에 따른 원화 강세 쇼크’가 더 우려된다.
2분기 이후 환율 변동성 커질 듯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유입은 양날의 칼이다. 자금이 국내 금융시장에 유입된다는 측면은 긍정적이나 과도하게 유입되면 시장 혼란기에 급격히 이탈돼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특히 캐리 트레이드 자금은 투기 성격이 짙기 때문에 국제금융시장이 출렁일 때 대외 환경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 경제는 의외로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유로 캐리 자금의 우회 쇼크와 샌드위치 쇼크, ‘서든 스톱’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 자금이 유입될 때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외자 유입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종전에 유입된 외자를 사들이는 태환 개입, 유입된 외자를 사들이되 풀리는 국내 여신을 흡수하는 불태환 개입으로 양분된다. 하지만 두 방안 모두가 태환 개입 시에는 국내 통화량이 증가하고, 불태환 개입 시에는 국채 발행에 따라 이자 부담이 있는 등 국내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해온 ‘영구적 불태환 개입(PSI)’이 가장 바람직한 방안으로 판단된다. PSI란 국부펀드나 내국인에게 권유해 유입된 외자만큼 해외 자산을 사들이고 외자 이탈 시에는 이 자산을 들여오는 방안이다. 이 경우 외자 유·출입에 따른 환율 급등락을 방지해 금융시장과 경제주체의 착시와 교란을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환율구조 모형 등을 통해 추정된 원·달러 환율의 적정수준이 1080원(달러 강세 요인으로 약 20원 정도 상향 조정됨) 내외로 나오기 때문에 올 들어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하더라도 국내 기업들엔 최근 원·달러 환율 움직임이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교역국 통화가치와의 교환 비율인 환율은 적정수준에서 상하로 50원 범위 대에서 움직이는 것이 정상적인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 범위 대에서 이탈된 것은 ‘위험 지대(오버 혹은 언더 슈팅)’로 곧 돌아오고 환율 예측도 적정수준 밑으로 떨어지면 올라가고 높으면 떨어진다고 보면 무난하다. 성장률 등과 같은 우리 펀더멘털의 개선 여부에 따라 개선되면 적정수준을 낮추고 악화되면 높이면 된다. 특히 올해 2분기 이후부터는 환율 변동성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환위험 관리를 잘 하는 것이 외화 운용의 관건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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