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섭 한국투자증권 브이 프리빌리지 강남센터장

윤동섭(54) 한국투자증권 브이 프리빌리지(V Privilege) 강남센터장에게는 ‘증권업계의 카멜레온’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1987년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한국투자신탁에 입사한 이후 본점 영업부와 대표 비서실, 주식운용본부, 감사실, 리서치센터, 법인영업부, 증권영업부, 고객자산운용부, 상품개발부, PB전략부를 두루 거쳤다. 증권가에서도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법인영업부와 검사역, 센터장 등 웬만한 주요 업무를 모두 경험한 증권맨은 보기 드물다. 윤 센터장이 이끈 브이 프리빌리지 강남센터는 작년 300억 원 사모펀드를 팔아치우며 한국투자증권 프라이빗뱅킹(PB)의 자존심을 지켰다.
[DINNER WITH PB] 30년 다양한 업무경험 베테랑 증권맨 되다
윤동섭 한국투자증권 브이 프리빌리지 강남센터장은 “지금까지 살면서 학창 시절에 공부 열심히 안 한 게 가장 후회스럽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사회에 나와서 무슨 일이든 힘을 쏟아 부어 열정적으로 임했다. 그러다 보니 사내에서도 ‘뭘 맡겨도 성과를 내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입사 후 영업부 사원으로 시작해 1년 뒤 비서실로 발령이 났다. 그다음에 ‘증권사의 꽃’으로 불리는 주식운용부로 적을 옮겼다. 고향인 대구지점에서도 근무했다. 전국 주식모의투자대회에서 2년 연속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다시 본사 리서치센터로 들어가 애널리스트 업무를 경험한 후 주식운용부의 펀드매니저 업무를 맡았다. 한국투자신탁이 한국투자증권으로 사명이 바뀌는 과정에서 본점 증권영업부장 타이틀도 달았다. 당시 보수적인 회사 분위기에서 만 39세의 나이에 최연소 부서장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었다. 다양한 이력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상품 개발이다. 랩어카운트, 펀드,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한국투자증권의 히트 상품 개발을 주도했다. 2008년부터 PB전략부장을 맡았으며 이 때 본사 전문가와 PB가 시황과 고객의 투자 니즈에 맞추어 고객의 자산을 운영, 관리하는 종합자산관리 상품인 Profit을 개발했는데 지금도 회사의 종합자산관리 상품의 근간이 되고 있어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 후 여의도PB센터를 거쳐 2013년에 지금의 브이 프리빌리지 강남센터로 왔다. 윤 센터장은 요즘도 ‘열공’ 중이다. 한국투자증권 브이 프리빌리지 강남센터에서 매일 아침 스터디가 열리는데, 프라이빗뱅커(PB)들이 세무, 부동산, 시황 등 공부한 것을 서로 토의하고 공유한다. 이를 토대로 고객들에게 발 빠르게 정보를 전달한다. 바쁜 시간을 쪼개 책도 부지런히 읽는다. 군 복무 중인 아들이 면회 때마다 독서 토론을 하자는 미션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작년 한국투자증권은 투자은행(IB)과 자산관리 업무를 기반으로 업계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내는 등 선방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요.
“한국투자증권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매년 리테일(소매) 사업에서 꾸준한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는 본사에서 표준 모델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영업점의 PB들이 고객에게 최고 수익을 안기는 것입니다. 저희 영업 파트에 수준 높은 PB들이 전진 배치돼 있습니다. 직원들이 자기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분위기가 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나아가 센터의 경쟁력을 높인다고 생각합니다.”


브이 프리빌리지 강남센터는 사모펀드 발행량이 한국투자증권의 전국 지점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압니다. 작년에는 300억 원 이상이 판매되며 화제를 모았지요.
“고객의 니즈가 있을 때마다 본사 상품개발본부와 논의해 빠르게 상품을 출시했습니다. 공격투자형 고객들에게 자산배분형 펀드와 가치투자 펀드를 많이 판매했어요. 과거 전례를 살펴보면 운용 기간이 3년 이상인 사모펀드의 수익률은 연평균 15%를 웃돌았습니다. 공모와 달리 사모펀드는 고객 맞춤인 만큼 시장이 아니다 싶으면 ‘스톱’하고 괜찮으면 ‘고’하는 식으로 탄력적 운용이 가능하죠. 그만큼 시장을 빨리 캐치해 움직이는 게 중요합니다. 말씀드렸듯이 저희 직원들은 부단한 스터디를 통해 철저한 지식과 감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1대1 상담을 원칙으로 하되,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 팀이 돼 고객 상담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센터장님께서 그동안 쌓아온 다양한 경험들도 PB 업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분명 운이 좋았던 측면이 있습니다. 상품 개발과 운용, 리테일 영업, PB 영업을 다 해보았으니 그 ‘감’이 분명 제 머리와 몸에 기록돼 있을 겁니다. 고객이 투자 고민을 할 때 이런 상품으로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겠다는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됩니다. 시장의 변화나 테마에 좀 더 민감하고,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은 많은 경험치들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내 스스로 믿음이 있어야 고객에게 진심으로 좋은 상품을 권할 수 있는데, 잘 안 움직이는 고객들에게도 다양한 근거를 제시해가며 시장 상황을 설명하고 그 전망이 실제로 맞아 들어가면 나중에는 ‘윤 센터장의 말이 맞았습니다’라고 인정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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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에 의해 성공한 투자 사례를 말씀해주신다면요.
“작년 코스피 시장이 박스권이었지만, 괜찮은 상품도 꽤 있었습니다. 특히 공모주 하이일드펀드가 히트를 쳤지요. 펀드의 30%를 비우량 채권인 하이일드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입니다. 나라에서 하이일드 30%를 담아주는 조건으로 공모주 10%를 우선 배정해주겠다는 거죠. 작년에 제일모직, 삼성SDS 등 공모주가 대박 나면서 이 상품의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공모주에 줄서는 상황에서 10% 우선 배정이면 적지 않죠. 나머지 30% 정도는 안전한 국공채에 담아 보완을 합니다. 정기예금 금리 2% 시대에 금융상품에 투자해 5% 이상만 나도 고객들은 ‘고맙다’고 하시는데, 이 상품은 평균 15% 수익이 났어요. ‘은행보다 리스크는 있지만 감수하겠다’며 ‘나머지는 여러분들 실력으로 커버해 달라’ 이렇게 믿어준 분들에게 높은 수익을 안길 수 있었습니다. 리스크 리턴을 감당하는 수준이 사람의 성향마다 달라요. 물론 중위험·중수익 고객이 가장 많지만, 공격적인 상품을 잘 골라서 위험이 거의 없게끔 담당 PB와 잘 상담해 배팅하겠다고 하시는 고객들도 적지 않습니다. 조기상환형 스텝다운 구조 주가연계증권(ELS)도 고객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6개월 이내 지수가 20% 빠지지 않으면 일정 이율을 주겠다고 한 상품입니다. 평균 수익률이 5~6% 정도였는데, 저희 고객들은 웬만하면 다 달성했습니다.”


고객들 중엔 전문적인 소양을 갖춘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저희 지점 고객들의 연령대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비교적 젊은 편입니다. 코스닥 상장사의 오너나 벤처사업가, 대기업 임원 등이 많고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도 비중이 적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배울 때도 많이 있습니다. 벤처 쪽에 종사하는 고객이 ‘이 회사가 곧 상장할 것 같은데 기업 가치가 얼마나 있을지 연구해 달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외로 괜찮은 기업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저희가 ‘열공’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랩어카운트와 CMA 등 한국투자증권의 효자 상품들을 개발하셨지요. 재밌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신다면.
“랩어카운트, 펀드, CMA 등의 개발을 주관했어요. 회사가 랩어카운트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2004년에 고객자산운용부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랩어카운트의 수익률이 너무 부진해 고객 항의가 빗발치던 시기였고, 내부에서도 반응이 차가웠지요. 그때 3년 이상으로 보면 국내 경제가 상승 추세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 이 기간 동안 한국 대표 기업을 모아서 투자하면 20% 이상의 고성장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전략으로 ‘알짜 주식 모으기’라는 적립식 랩 상품을 선보였습니다. 그 전략이 먹히면서 출시 후 800억 원을 모으는 데 성공을 거뒀죠. 그 이후 부자아빠ETF+알짜 주식 모으기 해외 펀드에 투자하는 랩 상품 등 한국투자증권에 효자 역할을 한 상품들이 히트를 쳤죠. 당시 낮에는 운용하고 밤에는 상품을 개발하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이름을 잘 지어서 대박을 터트린 경우도 많습니다. CMA 개발 시절 광고 문구를 ‘하루만 맡겨도 최고의 금리를 드립니다’로 짓자고 제안한 것이 채택됐는데 출시 한 달 만에 1조 원이 들어왔습니다. 러시아, 브라질에 투자하는 상품의 이름을 나라의 앞 글자를 따 ‘러브펀드’라고 지어 눈길을 끌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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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나 지금이나 ‘열공’하시는 스타일이시군요. 원래 학구파신가요.
“솔직히 말하면 전 친구 따라 강남 왔습니다. (웃음) 같이 경제학과를 졸업한 친구가 증권사에 먼저 취업한 것을 보고 얼떨결에 한국투자신탁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증권맨이 되다 보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지요. 열정과 신뢰, 영업 우선을 목표로 두고 본사에서 일할 땐 영업점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영업점에서 일하면서는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방식으로 매사에 임해왔습니다. 계속 새로운 일을 하느라 노력도 더 많이 해야 했지만, 그만큼 남는 것 같습니다. 내년에 만 55세가 됩니다. 언젠가 증권업계를 떠나도 제가 만든 상품은 남는 것이니 엄청난 보람이 아닐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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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촬영 협조 로리스 더 프라임 립(02-590-2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