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라운드로 접어든 통합 논의의 과제는 무엇일까. 2014년 7월 3일 중국과 인도의 해외 법인을 둘러보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막 귀국한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서울 용산구의 한 식당에 들어섰다. 당일 기자들은 갑작스럽게 잡힌 간담회에 어리둥절한 상태였으며, 식당 밖에서는 불안을 감지한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모여 피켓 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 논의를 시작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 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폭탄 급이었다. 2012년 2월 17일 하나금융그룹 경영진과 외환은행 노조가 합의를 통해 5년간 외환은행의 독립 경영을 보장하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이후 하나·외환은행 등 그룹 전체 임원 135명의 조기 통합 결의, 양행의 이사회 동의까지 걸린 시간은 채 2주도 안 걸렸으며, 한 달여 지났을 때는 외환과 하나은행장이 합병 공동 선언을 하는 등 속도감을 냈다.
하지만 7개월여가 지났음에도 조기 통합 논의는 일보의 진척도 보이지 못했고 급기야 2월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오는 6월 30일까지 일체의 조기 통합 관련 절차를 진행하지 말라는 가처분명령을 받기에 이르렀다.
약속 상기시켜준 법원의 결정
금융권에서는 외환은행 노조가 법원에 제기한 통합 중지 가처분신청에 별다른 반전을 기대하지 않았다. 하나금융그룹의 한 관계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태평양에 법리 검토를 한 결과 90% 이상 승소 가능성이 있다는 자문을 받았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결국 불가능으로 보였던 10%가 이변을 이끈 셈이다.
이번 서울중앙지법의 결정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3년 전 기자회견까지 열어 진행한 노사정의 약속을 끄집어냈다는 점이 우선 그렇다.
서울중앙지법은 결정문에서 “(2·17 합의서는)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조가 서로 장기간 대립해오다가 금융위원회의 중재 아래 오랜 시간 논의와 절충을 거쳐 신중하게 작성된 것으로 하나금융, 외환은행 노조, 당시 금융위원장이 합의서를 체결한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에게 이를 공표하며 합의 내용에 대한 진정성을 표현하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재판부는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실적이 현저히 악화되는 등 합의서를 체결할 당시의 사정이 변경됐다는 주장에 대해 “합의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도 아니고 국내 은행의 수익성이 2013년 대비 개선되는 추세를 보이는 등 당장 합병하지 않으면 외환은행의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도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사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사는 작년 조기 통합 논의를 시작하며 서로에게 신뢰다운 신뢰를 보여주지 못했다. 실제 외환은행 노사는 작년 조합원총회 참석과 관련된 직원 징계 건으로 앙금이 쌓였으며, 10월 들어 진행된 노사 양측의 조기 통합과 관련된 상반된 설문조사 결과는 갈등의 촉진제가 되기도 했다.
작년 12월 23일 외환은행 노사는 대화기구 발족에 구두 합의가 이뤄졌지만 올 들어 1월 14일부터 진행된 대화기구 본 협상은 공전을 거듭했다. 이에 하나금융은 금융위에 통합인가 신청을 내고 외환은행 노조는 이에 맞서 노조위원장 삭발 농성을 시작하는 등 양측은 좀처럼 대화의 매듭을 풀어나가지 못했다. 신뢰가 생명인 금융사 간에 오히려 불신의 벽만 높이게 된 것이다. 양측의 신뢰 회복은 향후 진행하게 될 통합 논의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절대 과제다.
하나금융의 위로부터의 통합 시도도 수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보여준 통합 주체는 직원들이라기보다는 경영진이었다. 지난 2003년 조흥은행을 통합한 신한은행의 사례는 아래로부터의 통합이 왜 필요한지 잘 보여준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업무가 끝나고 나면 인근 조흥은행 지점과 술 약속을 잡기에 바빴어요. 신한은행과 조흥은행 지점 직원 간 회식에서는 파격적이게도 법인카드의 한도 제한이 없었죠. 이 회식비는 통합추진본부 전결로 처리돼 별도로 관리했거든요.”
물론 하나금융의 소통 행보가 전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외환 직원들이 참여한 1박 2일 비전 캠프가 있었고, 김 회장이 직접 나서 하나·외환 직원들과 서울 인근을 산책하는 등 상당한 노력도 기울였다. 하지만 사실상 양행 하부 직원들 간 자발적인 모습이기보다는 위에서 만든 이벤트에 더 가까웠다.
하나금융 생존 법칙은 시너지 찾기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 근거로 제기된 것은 양행의 성장 정체성이었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돌파구가 필요하다.
하나금융그룹이 2월 6일 발표한 2014년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0.4% 증가한 9377억 원이었다. 이 중 하나은행이 전년 대비 21.2% 증가한 8561억 원을 기록한 가운데 외환은행은 은행권에서 유일하게 전년 대비 순이익이 17.8% 감소하며 3651억 원의 실적을 나타냈다.
이 같은 하나금융그룹의 실적은 경쟁사들과 대조를 이룬다. 우선 신한금융그룹이 2조811억 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금융권에서 유일하게 2조 원 순익 클럽에 가입한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작년 내우외환으로 흔들렸던 KB금융그룹이 전년 대비 10.2% 증가한 1조4007억 원, NH농협금융지주가 농협중앙회에 내는 명칭 사용료 3315억 원을 제외하고도 전년 대비 162.3% 증가한 7685억 원, 은행 체제로 바뀐 우리은행이 전년도 지주사 체제에서 5377억 원의 적자를 냈던 것에서 벗어나 1조2140억 원의 순이익을 내며 시장을 놀라게 했다.
타 금융사들이 이처럼 바닥을 치고 실적 개선을 이루는 상황에서 정체 수준의 하나금융그룹 순이익은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보인다.
일부에서는 하나금융그룹 경영진의 과오를 탓한다. 외환은행의 경우 2005년 1조9290억 원의 순이익을 내며 하나은행(9070억 원)의 2배가 넘는 실적을 보였고 하나금융에 인수되기 직전인 2011년에도 외환은행(1조6220억 원)은 하나은행(1조2060억 원)보다 호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하나금융에 인수된 후 2012년 6671억 원(하나 6562억 원), 2013년 4443억 원(하나 7062억 원)으로 급전직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두고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금융의 경영 능력을 문제 삼고 있으며, 김 회장은 론스타 시절에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누구의 탓을 논하기 전에 생존의 해법을 찾아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합 시너지의 효과부터 냉철하게 판단해봐야 한다. 양행의 통합 시 정보기술(IT) 투자비용과 신용카드 비용이 절감되고 외화 부문 통합 시너지가 발생하며 3121억 원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향후 IT 통합을 위해 소모될 막대한 비용, 기업이미지(CI)와 브랜드 변경 비용, 합병 위로금 등을 고려했을 때 결코 낙관하기 힘들다.
더구나 양행의 통합은 외환전문은행으로서 외환은행의 강점을 상쇄시킬 수 있고, 과도하게 소매금융에 치중되며 향후 가계부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통합 지연에 책임을 지고 이우공 하나금융그룹 부사장 등 임원 3명이 물러나고 그동안 은행장 대행 체제로 운영했던 하나은행에 김병호 행장이 선임되며 통합 추진 2라운드가 돌입됐다. 이제 당초 통합 합의 시점도 불과 2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생존을 위한 최종 선택이 위태롭게 활시위에 걸려 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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