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모델계의 차승원’이란 꼬리표는 과장이 아니었다. 피트 되는 청바지가 어울리는 긴 다리의 우월한 비율, 군살 하나 없는 호리호리한 체형은 딱 봐도 ‘연예인 필’이 흘렀다고나 할까. 요즘 패션 피플 사이에서 유행하는 중절모를 쓰고 나타난 곽용근 씨는 자양강장제, 유명 통신사 브랜드, 가전제품 등 TV CF로 일약 실버 모델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경력 12년 차 중고 신인 곽 씨의 인생 2막 이야기는 톱스타의 뒷이야기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SECOND ACT] 곽용근 실버 모델 “평생 엔지니어였던 내가 광고판 주름잡기까지”
인터뷰에 앞서 취재원에게 호의적인 인사말을 건네는 것이 기자에겐 직업적인 ‘작업용 멘트’라 할 수 있겠으나 이번만은 달랐다. 약속 장소로 성큼성큼 들어오는 곽용근(77) 씨의 아우라는 단연코 70대가 아닌 런웨이를 사뿐히 워킹하는 20대 모델을 연상케 했다. 비주얼과는 달리 프림과 설탕이 들어간 ‘다방 커피’를 주문한 그에게 “실제 연세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고 말을 건넸다. “에이~, 젊은 사람이 나한테 젊어 보인다고 하면 안 되지요. 멋지다고 해줘야지”하며 유머러스한 말로 받아친다.

인터뷰가 있기 전날 기자에게 “내일 의상은 청바지를 입은 캐주얼 차림으로 하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낼 만큼 프로페셔널한 직업의식을 가진 곽 씨. 그를 대중에게 강렬한 ‘할아버지 모델’로 각인시킨 광고는 여럿이다. 손주들을 기다리다가도 막상 장난꾸러기 손주들이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망연자실해하는 할아버지로 등장한 광고. 용돈 봉투를 건네는 며느리에게 “놔둬라, 놔둬” 하면서 주머니를 여는 능청스러운 시아버지 역할 등 ‘감정이 묻어나는 연기’가 주였다. 몇 초만의 짧은 시간에 전달되는 복잡 미묘한 표정 연기와 감정 표현으로 시청자들은 ‘곽용근 할배’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도전이 바꾼 인생, 4배 이상 뛴 모델료
TV CF에서 빛을 발한 그의 진솔한 연기와 리얼한 표정,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제스처의 밑거름은 어디서 왔을까. 연기를 좀 하는 일반인, 혹은 유명 스타의 등용문인 길거리 캐스팅일까 짐작해보지만 그는 착실하게 모델 수업을 치르고 무명에서 이름을 날린 광고계 ‘시니어 스타’가 된 경우. 그가 연기 생활에 첫발을 내딛게 된 계기는 서초노인복지관의 ‘실버 모델 교육 프로그램’에 자석처럼 끌리면서부터다.

한 해에 9편의 광고를 찍을 만큼 승승장구했고, 가수 이효리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으며, 모 화장품 브랜드 광고는 중국, 대만, 홍콩 등에서 사용된 덕분에 여배우 탕웨이를 만나기도 했다. 그 사이 몸값이 올라 모델료는 데뷔 때보다 4배 이상 오르고 ‘나의 인생’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서달라는 곳도 많다. 본디 내성적이고 정적인 성격이라면서 한평생 엔지니어로 살다가 생각지도 못한 ‘연예계’에 발을 들일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 곽 씨에게 어떤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다.
[SECOND ACT] 곽용근 실버 모델 “평생 엔지니어였던 내가 광고판 주름잡기까지”
패션(빨간 카디건에 청바지를 입고 왔다)은 늘 직접 코디네이션 하나요.
“그럼요. 제가 직접 다 합니다. 원래 청바지에는 하얀 셔츠를 입어야 잘 어울리는데 오늘은 빨간 카디건을 한번 입어봤어요. 제 친구들은 이렇게 입고 다닌다고 주책바가지라고 하는데 이것도 어울리는 사람이나 입을 수 있어요.(웃음)”


대학 졸업 후 은퇴 전까지 한 우물만 파셨지요.
“우리 세대가 거의 다 그렇습니다. 제가 한양대 화학공학과 60학번이에요. 그때 당시에는 공대도 서울대, 한양대, 인하대 딱 3곳만 있던 시절이었어요. 졸업하고 기술자 아니면 선생님이 돼야 밥 벌어 먹고 살던 시절이라서 저도 경쟁해서 한일시멘트에 처음 입사를 했지. 요즘 취업난이라고 하는데 그때도 82대1로 치열하게 들어갔어요. 그러다가 현대시멘트에서 생산부장을 하고 현대종합금속 공장장, 광덕기계공업 부사장을 지냈지요. 대기업에서 밤낮없이 일하고 나와서 후에 철강 대리점 사업을 시작했어요. 강남에 30억 원짜리 빌딩을 살 만큼 큰돈을 벌었던 때도 있었지만 인생이 참 신기하죠. 외환위기 때 그야말로 쫄딱 망했어요. 부도가 나서 전 재산을 잃었고 고향에 내려가서 4년을 지냈는데, 그때가 힘든 때였죠. 마누라랑 사이도 안 좋아지고 삶의 낙도 없으니 등산으로 소일하고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때 했었지요.”


지금은 유명 TV 광고 모델이 되셨는데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향에서 4년 지낸 뒤 다시 서울로 올라왔는데 동네에 있는 서초노인복지관을 찾았어요. 그전까지는 제가 직급이 윗사람이다 보니 아랫사람에게 컴퓨터 작업을 시켰는데 무슨 일이라도 시작하려면 컴퓨터부터 배워야겠더라고요. ‘컴맹부터 탈출하자’라는 마음으로 찾아갔다가 ‘실버 모델 교육 프로그램’ 안내문이 게시판에 떡하니 붙어 있기에 호기심이 일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했어요. 강사가 날 보자마자 ‘모델 하기 딱 좋은 체격 조건’이라고 치켜세우더라고요.”
[SECOND ACT] 곽용근 실버 모델 “평생 엔지니어였던 내가 광고판 주름잡기까지”
본격적인 모델 수업을 시작하셨군요.
“그렇죠. 전문 강사의 코치를 받고 걸음걸이, 발성, 표정 연기 하나하나 배웠지요. 제 성격이 뭐 하나를 시작하면 확실하게 될 때까지 하는 성미입니다. 뭐든 최선을 다하다 보니 모델 교육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제 끼를 찾은 거지요. 그전에는 관심도 흥미도 없었는데 신기한 일이죠.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한 건 한국전쟁 나기 직전에 초등학교 5학년 학예회 때가 마지막이었다니까요. 그런 제가 모델이 되니 스스로도 ‘인생이란 참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 해도 본격적인 광고 모델로 발탁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당시 TV 방송국에서 노인들 인터뷰를 촬영하기 위해 노인복지관에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제가 카메라 앞에서 떨지도 않고 말을 잘 한단 말이에요. 제가 유머가 좀 있고요. 그러다 보니 작가들 사이에서도 ‘그 곽용근 할아버지가 잘한다더라’ 하면서 소문이 난 모양이에요. 그러다 MBC에서 제작한 4부작 ‘아름다운 가위손’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어요. 외환위기 당시 실직 해고된 이들의 자립 생활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였는데 애완미용 자격증을 따는 과정을 그린 프로그램에 나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광고로 이어지게 됐지요.”


갑작스런 ‘화려한 외출’처럼 보이는데 가족들 반응은 어떠셨나요.
“노인복지관에 모델 수업 받으러 다니는 건 마누라에게는 일급비밀이었죠. 그래서 컴퓨터 배우러 간다고 거짓말을 했죠. 그러고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 아내랑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광고판에 내가 촬영한 ‘다음 로드뷰’ 광고가 뜨니까 ‘아니, 저거 당신 아니에요?’라고 묻기에 아니라고 얼버무리기도 했어요. 아내는 시집 간 딸 사돈어른들 보기에 부끄러웠던 모양이에요. 왜 우리 때만 해도 연예인은 대접도 못 받고 천대 받는 직업이었잖아요. 그런 시선이 걱정됐던 거죠. 지금은 저랑 같이 방송 타면 자기 출연료를 달라고 하던데요? (웃음)”


가장 많이 얼굴을 알리게 된 광고가 자양강장제 박카스, SK 브로드밴드 통신사 광고입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촬영했지요. 제가 얼굴을 알렸다기보다는 광고 내용이 요즘 흐름과 맞았다고 해야 할까요. 그 덕도 많이 보았어요. 출연한 광고 대부분이 가족 단위로 촬영하는 광고여서 아이들, 개까지 나오니 촬영 시간이 오래 걸린 편이에요. 그 광고들 덕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 오는 사람이 적지 않지요.”


특히 통신사 브랜드 광고에서는 매몰차게 떠나는 손주 모습에 눈물 연기를 단 한번에 촬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연기는 인생의 희로애락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그 순간 가장 슬픈 생각을 떠올려야 하니 우리 어머니를 생각했지요. 제가 마지막 가시는 길을 못 지켜 드렸는데 그 생각도 나고 어렵게 사셨던 어머니를 떠올렸어요. 연기도 트레이닝이에요. 저는 세수할 때나 화장실에서 혼자 온갖 표정 연기를 다 합니다. 칫솔 들고 있다가 웃다가 화내다가 안면 근육을 움직여 표정을 다양하게 연습해요. 아! 요샌 변기 위에 앉아 변비로 고생하는 표정도 연습하고 있어요.”


연기를 위해서 각별히 노력하고 계신 나만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연극을 해야 연기가 는다고 해서 모델 수업 듣는 친구들과 함께 연극반 활동을 열심히 했지요. 서초구민회관에 무대도 올리고 인천에 위치한 양로원에 가서 연극도 하고 했어요. 한번은 가발 쓰고 ‘용순이’라는 이름으로 여장도 했다니까요. 내 이름이 용근이라 내가 용순이라 지었지요. 또 감독이 언제 무슨 주문을 할지 모르니 스포츠댄스도 열심히 배워놨어요. 춤추는 장면 찍는다고 하는데 엉거주춤 노인네 춤을 출 순 없잖아요. 마누라만 아주 질색하고 싫어하지요.”


촬영 현장에서 감독들이 아주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제 연기 철학은 딱 하납니다. 감독이 하라는 대로 무조건 복종! 촬영 시간의 1분 1초가 돈 아닙니까. 그 많은 사람이 그 순간을 위해 며칠간 세트를 짓고 스케줄을 조정해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연기자가 자꾸 엔지(NG)를 내면 되겠어요? 저는 최대한 집중해서 한번에 오케이(OK) 사인이 나도록 노력합니다. 오래 촬영한다고 좋은 작품 안 나와요. ‘뭐든 미친 듯이 해야 한다’가 제 신조입니다. 남이랑 똑같이 해봐야 2등, 3등 하니 미친 듯이 열정을 다해 할 수밖에 없어요. 이젠 감독 얼굴 표정만 딱 봐도 읽히죠. ‘촬영이 잘 돼 가는구나’ 할 정도로 눈칫밥도 생겼어요.”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운동은 늘 꾸준히 합니다. 건강이 담보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나이 들수록 전신운동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자전거도 타고 덤벨과 평행봉도 열심히 하고 스포츠댄스도 하지요. 수영도 제 또래에선 수준급이죠. YMCA에서 열린 60대 이상 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어요. 제 몸값이 얼마나 될까요? 그거 지키려면 건강관리 잘해야 합니다.”


지하철 꽃 배달 아르바이트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꽃 배달을 한다고 하면 다들 물어봐요. 모델 하는데 꽃 배달을 왜 하느냐고. 제가 의도한 겁니다. 첫째로 꽃을 가지고 가서 주면 누구라도 좋아합니다. 그 좋아하는 얼굴 보니 저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져요. 둘째는 꽃 받는 사람이 ‘광고에 나왔던 할아버지다’ 하며 반가워합니다. 저는 일하면서 제 얼굴을 알리는 홍보를 덩달아 할 수 있지요. 셋째는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꾸준히 걸을 수 있으니 걷기 운동이 됩니다. 건강에 보탬이 되는 거죠. 게다가 돈도 버니 그야말로 일석사조 아닙니까? 저에게 꽃 배달 아르바이트는 일종의 상징이죠. 저 자신을 좀 낮추고 사람들도 만나고 돈은 적게 벌어도 건강도 챙기고요. ‘저 같은 일흔 넘은 사람도 꽃 배달을 한다’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요.”


광고 모델료는 주로 어디에 쓰시는지요.
“손주들한테 쓰긴 해도 자식들한테는 절대 안 줍니다. 저는 자식들이 독립해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지 돈을 쥐어주는 건 반대입니다. 지금 벌고 있는 돈은 따로 다 모아두고 있는데 나중에 다 사회에 환원할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공을 사회로부터 얻었나요. 제가 노인복지회관에 가서 동기들이랑 함께 자원봉사도 많이 다녔지만 그런 활동을 토대로 지금 제가 모델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살면서 어려운 시절을 겪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 제 연기의 자산이 된 거예요. 제가 받은 만큼, 누린 만큼 다 사회에 돌려줄 생각입니다.”


앞으로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제가 욕심이 좀 많아요. 세상일이 맘대로 안 되지만 기회가 되면 이순신 역할을 한번 꼭 해보고 싶어요. 임꺽정 같은 역할도 좋겠어요. 아주 과감한 인물을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잘 해낼 자신이 있는데 말이죠!”
[SECOND ACT] 곽용근 실버 모델 “평생 엔지니어였던 내가 광고판 주름잡기까지”
기획 박진영 기자│글 이지혜 객원기자│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