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혁 신세계그룹 CSR사무국 상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 신세계의 문화 공헌은 그간 그렇게 이뤄져왔다. 예술의 전당 출신으로 수많은 히트 클래식 프로그램들을 기획한 정동혁 신세계그룹 CSR사무국 상무는 그간 축적된 노하우에 ‘적극 알려 더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많은 이들의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NOBLESSE OBLIGE] “문화예술을 통한 삶의 질 향상, 그게 우리의 미션”
기업에서 하는 사회공헌 성격의 무료 공연이라고 절대 무시할 수 없다. 클래식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아는 정상급 연주자들(피아니스트 김대진·손열음·박종훈·김정원, 첼리스트 양성원·송영훈,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경선 등)의 이름을 보는 순간, 이미 그런 생각은 할 수도 없을 테지만. 신세계그룹이 작년 3월부터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열고 있는 ‘마티네 콘서트’는 이미 많은 기업들이 해오고 있는 메세나 활동의 정점이자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 신세계백화점 6개점(본점, 인천점, 경기점, 센텀시티점, 충청점, 의정부점) 문화홀에서 문화 소외계층과 저녁 관람이 쉽지 않은 주부 등에게 무료 관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신세계가 연간 쏟아 붓는 비용만 10억 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이 그 밑바탕이 됐지만, 기획을 하고 명연주자들을 마티네 콘서트 무대 위에 올리기까지의 실질적 액션은 정동혁 신세계그룹 CSR사무국 상무가 있어 가능했다.


클래식 문외한이 만들어낸 클래식 히트작들
2013년 12월, 정 상무는 신세계그룹에 합류했다. 예술의 전당 출신인 그가 문화계에서 기업으로 적을 옮긴 건 획기적이고도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더불어, 앞으로 신세계가 하게 될 다양한 문화 공헌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일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 상무가 예술의 전당에서 보여준 ‘결과물’들은 굉장했다. 첫 직장이 예술의 전당 클래식 음악 기획자였고, 그렇게 21년간 그는 수많은 클래식 히트 프로그램들을 기획했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많이들 하고 있는 ‘11시 콘서트’와 손범수·진양혜 부부의 진행으로도 유명한 ‘토크 콘서트’, 신세계와 함께하는 ‘토요 콘서트’, ‘청소년 음악회’ 등이 그의 대표작. 국내 클래식 공연의 역사를 새로이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대표작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정 상무가 클래식에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학 시절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고 싶어 방송국 예능 PD에 지원했는데 공채시험에 떨어졌죠. 그러던 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예술의 전당 채용공고가 떴더라고요. 하는 일이 공연 기획이라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업무냐고 물었더니 클래식 음악을 기획하는 ‘PD 같은’ 거래요. 그래서 지원했어요.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잘 모르던 분야인 클래식 음악을 기획하려니 낮은 자세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예술가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가까워질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예술가들을 위한 기획자가 돼야겠다. 이들을 진작시키는 것도 내 몫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게 예술의 전당의 미션이기도 했고, 유명하지 않은 예술가들도 잘 되게 만들어보자는 개인적인 꿈이 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클래식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알려주면 삶의 질이 향상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생겨났죠.”

예술가도 관람객도 모두 ‘윈윈(win-win)’하는 그야말로 상생의 방향성이었다. 당시 스타급 연주자가 아니면 제대로 출연료를 받고 무대에 오를 수 없었지만, 정 상무가 기획한 다양한 무대가 열리면서 스타 연주자부터 덜 유명한 연주자들까지 공연에만 집중하는 퀄리티 높은 무대를 선보일 수 있었다. 자연히 공연의 팬 층은 두터워졌고, 스타급 연주자들도 새로 양성됐다.

“그간의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뿌듯합니다. 그렇게 공연이 잘되다 보니 승진도 빨라서, 이른 나이에 음악당 총괄책임자가 됐지요. 당시 제 꿈이 ‘내가 있는 곳의 장(長)’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걸 이루고 나니 다른 걸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후에도 예술사업을 총괄하는 본부장까지 3년을 더했어요. 그런데 고민이 되는 겁니다. 정년까지는 15년 이상이 남았는데, 이대로 같은 일을 할 것인가, 변화를 택할 것인가 말이죠. 공기업에 오래 있었으니 민간 부문에서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신세계에서 합류를 제의했죠. 청춘을 바친 곳을 명예롭게 떠나게 되니 정말 행복했어요. 정년을 앞두고 스스로 축복받으며 떠난 건 제가 처음이었으니까요.”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에서 비교적 쉽게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정용진 부회장의 존재감이 컸다. 정 부회장의 문화적 관심과 소양은 익히 알려진 바이고, 예술의 전당 이사를 지내며 꾸준히 공연 후원 등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오랜 시간 지켜봐온 정 부회장의 인품이라면 기업에 가서도 믿고 일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 예술의 전당에서 해왔던 일들, 추구했던 가치가 기업이라는 환경에서 어쩌면 또 다른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2014년 신세계 마티네 콘서트 첫 연주자로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손열음.작년 신세계 희망장난감도서관 29호 익산점 개관식에 참석한 정동혁 상무. 1967년생인 정 상무는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경희대 연극영화학 석사 과정을 밟았으며, 예술의 전당 예술사업 본부장, 성신여대 객원교수, 서울사이버대 부총장 등을 거쳐 현재 신세계그룹 전략실 CSR사무국 상무보로 재직 중이다.
2014년 신세계 마티네 콘서트 첫 연주자로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손열음.작년 신세계 희망장난감도서관 29호 익산점 개관식에 참석한 정동혁 상무. 1967년생인 정 상무는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경희대 연극영화학 석사 과정을 밟았으며, 예술의 전당 예술사업 본부장, 성신여대 객원교수, 서울사이버대 부총장 등을 거쳐 현재 신세계그룹 전략실 CSR사무국 상무보로 재직 중이다.
신세계가 새로 개척하는 영역들이 바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맥락에 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던 것. 일단, 이를 위해서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정 상무는 그동안 신세계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해오고 있던 많은 일을 알리는 쪽으로 집중했다. 구체적인 실행 방법으로 정 상무는 공기업에서의 경험치를 살려 정부와 파트너로 연계하는 방식을 택했고, 그 시작이 마티네 콘서트였다.


공기업 21년 경험 살려 ‘상생’의 문화 공헌
“신세계에 합류한 후 정부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문화융성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해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문화를 접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했는데, 민간 부문이 잘 따라오지 않았던 거죠. 보통 기업에서는 협찬 방식으로 진행을 하는데 저희는 다른 방식으로 하겠다고 했어요.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융성위원회와 신세계가 양해각서(MOU)를 맺고, 신세계가 하고 있는 문화 활동들을 활용해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하는 식이었죠. 그렇게 전국 6개 신세계백화점 지점에서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동시에 무료 음악회가 열리는 마티네 콘서트가 시작됐어요.”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간 백화점 문화홀에서 볼 수 없던 젊고 실력 있는 예술가들의 무대를 볼 수 있으니, 매 공연 때마다 관객들이 몰려드는 건 당연지사.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열린 마티네 콘서트는 개런티 비용만으로 1년에 10억 원 이상이 들어가지만, 단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그 진정성을 높이 평가받기에 충분했다.

정용진 부회장의 주도하에 지난 2007년 시작된 신세계이마트 희망장난감도서관 사업도 정 상무가 투입되면서 여성가족부와 조인, 공동육아나눔터 사업과 희망장난감도서관 사업이 힘을 합쳐 시너지를 내고 있다. 지난 1월 말 경북 안동시 안동구시장 내에 30호점을 오픈한 희망장난감도서관은 7세 이하 아동에게 장난감을 빌려주고, 학부모들에게는 육아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복합 놀이 공간.

“현재 전통시장에도 희망장난감도서관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일종의 동반 성장이죠. 기존에 있던 공간에 인테리어와 장난감 등을 제공해주고 매년 장난감 교체는 물론 운영비까지 주고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지역의 이마트 직원들이 가서 청소와 장난감 소독을 해주는 등 꾸준히 연계하고 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1곳 오픈하는 데도 많은 동력이 필요해요. 더구나 그동안에는 들어오는 제의만 기다렸다면, 지금은 우리가 먼저 필요해 보이는 곳에 노크를 하고 있거든요. 이처럼 신세계의 사회 공헌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왔는데,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에요. 4년 넘게 하고 있는 예술의 전당 토요 콘서트 후원 덕분에 티켓 가격이 절반 이하로 낮아져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었던 것도, 예술의 전당 무료 야외 공연장 설립으로 문화 공헌의 새로운 장을 만든 것도 티를 내지 않아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바로 그 ‘지속 가능성’이 신세계 사회 공헌의 포인트다. 그런 면에선 정 상무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곳이 기업”이라고 한 얘기가 정답인 셈이다. 한계를 짓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지원하고, 그를 통해 성장을 이뤄내 더 많은 일들을 하게 되는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것. 지속 가능성의 또 다른 기반은 매칭그랜트(기업에서 임직원이 내는 기부금만큼 기업에서도 후원금을 내는 제도)를 통해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정성을 모았다는 점이다. 구좌당 2000원인 ‘신세계 희망 배달기금’을 사원에서부터 최고경영자(CEO)인 정용진 부회장까지 각자 원하는 구좌만큼 참여해 수많은 사회 공헌의 토대가 마련되는데, 그 누적액은 300억 원에 달한다.

‘마티네 콘서트 2015’를 비롯해 앞으로도 신세계 문화 공헌에 있어 정 상무의 활약은 계속될 예정이다.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 스쿨’이 그룹 CSR 사무국의 방향성이라면, 정 상무의 개인적 바람은 역시나 ‘문화적’ 테두리 안에 있다.

“어려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사회 공헌이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공부보다 중요한 게 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에게 음악을 시키는 집이라면 소위 돈 좀 있는 집이라고 생각들 하잖아요. 그나마 직장인들은 피아노 학원이라도 보내 음악적 감성을 키우는데 소외계층들에겐 언감생심이죠. 그들에게 1년 정도 음악을 배울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어요. 그걸 통해 제2의 손열음이 나올 수도 있고, 지속적 후원으로 그 친구가 다시 마티네 콘서트에 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 신세계에서 하게 될 것입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