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던 토박이라도 은퇴 이후에는 지방행을 한번쯤 고민한다. 굳이 귀농이나 귀촌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소도시에 내려가 산다면 생활비 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연한 환상만을 가지고 살아온 터전을 등질 수는 없을 터. 은퇴 후 서울에서 살 경우와 지방에서 살 경우의 실익을 잘 따져봐야 한다.
[LIFESTYLE DESIGN] 은퇴 후 서울에서 살기 vs 지방에서 살기
김 모 씨는 은퇴 후 서울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지방 소도시에 내려가 살기로 했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첫째 딸의 결혼에 이어 연년생인 둘째 딸까지 얼마 전 결혼을 선언했다. 거기다 지금은 군대에 가 있는 막내아들이 곧 제대하면, 대학 졸업까지 앞으로 2번이나 더 내야 할 등록금도 남아 있다. 하지만 서울의 기형적 집값을 깔고 앉아 가지고 있는 저축액만으로 딸의 결혼 자금과 아들의 대학등록금까지 해결하기는 여의치 않았다. 앞으로 받게 될 연금액도 김 씨 부부가 노후에 불편함 없이 생활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부부 두 사람 중 하나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한다면 무리 없이 수술을 받을 정도의 여유 자금은 통장에 있어야 마음이 놓일 듯했다.

은퇴 계획을 세우면서 김 씨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살면 생활비가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은퇴 후 생활비를 은퇴 이전의 70% 정도로 잡으면 적당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서울과 지방의 생활비 차이는 어느 정도인지 도통 감을 잡기가 힘들다.


월평균 지출, 서울 269만 원 vs 비수도권 209만 원
2013년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건강한 60대 부부 가구 기준으로 서울 및 수도권 거주자의 경우 월평균 269만 원, 비수도권 거주자들은 약 209만 원의 생활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는 자가에 거주하고 있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분석이며, 관리비나 공과금 이외에 주거에 들어가는 비용이 없다고 가정한 것이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비수도권에 사는 사람들보다 1.3배 많은 평균 60만 원 정도를 더 지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지출액에 불과하다. 지출이 많았던 사람이 은퇴를 했다고 해서 혹은 지방으로 거주지를 옮겼다고 해서 갑자기 생활비를 줄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퇴 전 지출의 약 53~65% 수준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항목에서 생활비의 차이가 날까.
[LIFESTYLE DESIGN] 은퇴 후 서울에서 살기 vs 지방에서 살기
필수 생활비(식료품비, 주거광열비, 교통통신비, 의료비) 지출은 수도권이 131만 원, 지방이 115만 원으로 약 16만 원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총지출에서 필수 생활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수도권의 경우 약 49%, 비수도권은 55%로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기타 생활비는 수도권 거주 시 평균 137만 원, 비수도권 거주 시 93만 원으로 약 44만 원의 차이를 보였다. 서울 및 수도권의 경우 문화시설이 집중돼 있어 여가 체험의 기회가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또 지방에 거주할 때보다 가족, 친구 및 지인들과의 교류 기회가 상대적으로 잦아 여가 문화비용, 경조비 등의 지출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씨 부부는 지방에서의 은퇴 생활에 그런 대로 만족스러워했다. 서울의 복잡함, 탁한 공기와 심한 교통체증에서 벗어나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주변에 넓은 녹지와 공원이 있어서 산책이나 운동을 하기에도 좋았다. 서울보다 이웃 주민들 간의 정이 많고 서로 간의 관계가 돈독한 것도 큰 장점. 하지만 서울에 비해 문화 시설이나 의료 시설 등의 인프라가 적다는 점이 아쉬울 때가 많았다. 특히, 결혼이나 장례식 등은 거의 서울에서 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올라가야 하는 것이 다소 신경 쓰이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지난 연말, 김 씨는 처리해야 할 신상 문제도 있고,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송년회에도 참석할 겸 고속철도(KTX)를 타고 서울에 올라갔다. 일 처리를 끝내고 송년회 장소까지 이동하는데, 연말인 데다 퇴근시간이라 교통체증이 심해 약속 시간보다 한참을 늦었다. 소도시에서는 어지간해선 차가 막혀 약속에 늦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말이다.

송년회 장소에 도착해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다. 특히, 학창 시절 단짝이었던 친구가 오랜만에 모습을 보여 한참 동안 밀린 수다를 떨었다. 친구는 은퇴 후 서울에서 가까운 신도시에 사는 아들 집 근처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맞벌이를 하는 아들 부부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아, 아들 내외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손주들을 돌봐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필요할 때마다’ 봐주기로 한 것이 어느덧 ‘일상’이 됐다며 처음에는 불평을 늘어놓는 듯했다. 하지만 친구의 표정으로 봐서는 지금 생활이 그다지 불만스러운 것 같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지방으로 내려간 후 김 씨는 가족이나 친지를 만나는 일이 연중행사가 됐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조금 귀찮기는 해도 손주들과 자녀 가까이에서 지내는 친구가 내심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에 살든 장단점은 있기 마련 아닌가. 남은 인생이 20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모르지만 김 씨는 자신의 선택이 은퇴 후 경제적 상황과 여러 주변 환경을 고려해 내린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믿기로 했다.


나이가 들수록 생활비는 늘어날까, 줄어들까?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전체적인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의료비를 제외한 타 항목의 지출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70대 부부 가구는 60대 부부 가구에 비해 총 지출액이 약 32% 더 적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은퇴를 맞이한 신세대 시니어들은 건강 상태가 좋고 경제적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이전 세대보다 높은 문화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여가와 문화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기존 세대보다 소비 수준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질병이 생길 확률이 더 커지며, 의료비로 얼마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노후 생활비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LIFESTYLE DESIGN] 은퇴 후 서울에서 살기 vs 지방에서 살기
기획 이윤경 기자 | 글 윤원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