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글로벌 금융계를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바로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개시 소식이다. 그동안 ‘돈 풀기’를 주저했던 유럽이 실제 실행에 나서겠다고 발표하자 각국 증시는 환호했다. 특히 유럽 주식들을 담고 있는 유럽 펀드의 상승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오랜 침묵을 깰 조짐이다.
[FUND ISSUE] 양적완화 나서는 유럽, 기지개 켜는 유럽 펀드
ECB가 뒤늦게 양적완화에 나선 이유는 디플레이션 때문이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논리다. 돈을 푸는 방식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채 매입을 통해서다. 3월부터 매달 600억 유로 규모의 국채를 사들이기로 했다. 내년 9월까지 총 1조1400억 유로(약 1435조 원)를 매입한다. ‘슈퍼마리오’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물가상승률 2% 달성이란 중기 목표에 따라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힌 점에 비춰볼 때, 내년 9월 이후에도 국채 매입을 멈추지 않을 수 있다. 양적완화 규모가 지금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유럽 경제는 그동안 침체를 거듭해왔다.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은 작년 3분기 0.2%(전분기 대비)까지 낮아졌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실업률은 두 자릿수로 치솟았다. 그런 가운데 작년 12월 유로존 물가는 전달과 비교해 0.2% 하락했다. 글로벌 증시는 예상대로 일제히 반등했다. 시장에 돈이 풀리면 지수를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에서다. 반대로 유로화 가치는 급락했다. 2003년 이후 최저치다. 유로와 달러의 교환 비율이 결국 1대1이 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ECB의 양적완화 효과가 당초 기대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무 건전성을 유지해야 하는 유럽 내 은행권이 대출 확대에 미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영국 경제 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때 은행에 의존하는 비중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며 “ECB가 채권을 많이 사들여도 은행들이 대출을 늘리지 않으면 유동성 공급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유로존 안에서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독일이 양적완화 정책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 점도 걸림돌이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중앙은행(분데스방크) 총재는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은 다른 정책과 달리 위험한 수단”이라며 재정 위기를 겪는 나라들이 경제 개혁과 같은 선제적 조치를 통해 문제를 풀 것을 촉구했다.


유럽 펀드 연초 6%대 수익률
국내 투자자들이 많이 가입한 유럽 펀드 수익률도 상승세다. 펀드 평가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5개 유럽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평균 6.49%다. 2월 2일 공모형 펀드 기준이다. ‘모디노믹스’로 기세를 올리고 있는 인도 펀드(10.48%)에 이어 지역별 펀드 중에선 둘째로 높은 수치다. 유럽 펀드의 설정액은 총 6907억 원 규모다.

같은 기간 아시아태평양 지역 펀드의 수익률이 2.69%, 한국 주식형 펀드 수익률이 2.49%, 일본 펀드 수익률이 1.05%로 뒤를 이었다. 북미 펀드, 러시아 펀드, 중국 본토 펀드, 브라질 펀드 등은 줄줄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김일혁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ECB가 유동성을 확대한다고 발표하면서 침체됐던 시장 분위기가 반전됐다”며 “유로존 내 기업들의 이익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유로화가 약세를 띠면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유럽 수출기업들의 편입 비중을 높일 만하다”고 말했다.

개별 펀드 중에서 지난 1년 수익률이 가장 좋은 펀드는 ‘슈로더유로A’다. 1년 수익률이 17.67%에 달했다. 슈로더자산운용의 경우 본사가 영국에 있어 유럽 펀드 운용에 강점이 있다. 이 펀드 설정액은 약 2322억 원으로 국내 유럽 펀드 중에서 최대다. 2007년 초 출시됐다.‘하나UBS유럽포커스’는 2013년 11월 설정된 지 1년 남짓 지났지만 1년간의 성과가 16.70%로 좋은 편이다. 이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도 8.11%로 최상위권이다. ‘KB스타유로인덱스’, ‘도이치독일’, ‘미래에셋유럽블루칩인덱스1’, ‘JP모간유럽대표(H)’, ‘피델리티유럽’ 등의 펀드 수익률도 1년간 10% 넘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펀드는 연초에만 5~6%가량 올랐다.

갑자기 수익률이 상승한 탓에 유럽 펀드 가입자들은 오히려 환매에 나서고 있다. ‘펀드를 갈아탈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다. 연초 이후 유럽 펀드에서 빠져나간 돈만 200억여 원에 달했다. 반면 다른 선진국 펀드인 북미 펀드(300억 원), 일본 펀드(400억 원)에는 자금이 몰렸다.
[FUND ISSUE] 양적완화 나서는 유럽, 기지개 켜는 유럽 펀드
유로 펀드에 투자하라
유럽 펀드도 다 같은 펀드가 아니다. 투자 종목이나 스타일이 제각각이어서다. 유럽 펀드는 크게 3종류로 구분된다. 독일·프랑스 등 유로존 국가에 주로 투자하는 유로 펀드, 영국·스위스 등 비(非)유로존 국가의 주식을 포함하는 범유럽 펀드, 터키·러시아 등 신흥 유럽 펀드로 구분된다. 이 중 유로존 국가 위주인 유로 펀드가 유망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양적완화의 수혜를 가장 많이 볼 수 있어서다. 경기가 반등할 때도 이들 지역 기업들이 선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수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양적완화 효과와 에너지 가격 약세, 러시아 신용등급 하향 조정 등을 감안할 때 유로 펀드 위주로 투자하는 게 적절하다”고 소개했다. 다만 서유럽 종목 중심의 유로 펀드라 해도 유럽 증시가 10년래 최고치에 와 있기 때문에 향후 주가 상승 폭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동유럽 국가 주식이 포함된 신흥 유럽 펀드의 경우 양적완화에 따른 수혜를 별로 보지 못하고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워낙 높아서다. 국내에서 설정된 신흥 유럽 펀드는 총 11개로 2249억 원 규모다. 신흥 유럽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1.73%로 부진하다.

유럽 펀드 투자자들은 유로화 약세가 예상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환헤지를 하는 게 유리하다. 기존 유럽 펀드 가입자들이 추가로 환헤지를 하기는 어렵지만 새 펀드 투자자들은 선택할 수 있다. 유럽 펀드의 이름 끝에 ‘(H)’ 표시가 돼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문 연구원은 “유럽의 양적완화가 종료될 때까지 유로화가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쉽게 생각해 환노출형을 고르면 자칫 환차손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영 펀드온라인코리아 투자교육팀장은 “유럽 펀드들이 대부분 단기 급등했지만 그리스 등 일부 국가의 경제 체질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므로 단기적인 시장 재료보다 장기 흐름을 감안해야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유럽을 포함해 각 지역에 분산투자를 하는 포트폴리오를 짜는 게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조재길 한국경제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