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재시 카난 SC은행 자산관리본부 전무

금융 환경의 변화에 따라 투자나 자산관리의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변치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투자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금융의 진심. 라재시 카난(Rajesh Kannan)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자산관리본부 전무는 한국인조차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한국 음식에 담긴 정성을 자산관리의 기본으로 제시했다.
[MARKET LEADER] “김장김치처럼 정성 가득 담긴 글로벌 자산관리 펼칠 겁니다”
라재시 카난(45) SC은행 자산관리본부 전무를 만나기 전 미리 떠올려본 이미지는 공학도 출신의 날카로운 자산관리 전문가였는데 이 예상은 정확히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한국 생활만 햇수로 6년째.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 클래스에 참가해 콧등에 고춧가루를 묻혀가며 김장김치를 담그고, 어느 식당의 비빔밥에 식자재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들어갔는지를 기자보다도 더 잘 알아맞히는 용한 재주를 지녔다. 식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지, 전남 담양에서 카메라에 담았다는 ‘메타세콰이아 길’을 주저 없이 인생 최고의 사진 작품이라고 자랑하는 그의 모습에서 처음 만난 사람 간에 느낄 수 있는 낯선 경계심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김장김치를 자산관리에 비유하며 식자재 선정(투자 상품), 김치 담그기(투자 전략 프로세스), 사람의 정성(고객 전담 지원) 등을 풀어내는 분석력과 통찰력은 영락없는 정보기술(IT) 공학도다.

카난 전무는 인도 뭄바이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인도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과 경영전략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거쳤다. 특히 대학원에서는 우수 장학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SC은행에 입행한 뒤 지난 18년간 인도, 싱가포르, 한국 등 여러 시장에서 마케팅, 상품 전략 및 개발, 영업점 관리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2014년 4월부터는 SC은행 한국 및 동북아 지역 자산관리사업부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한국의 경제 상황을 ‘코너를 도는 자동차’에 비유했다. 그동안 압축 성장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의 투자 전략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글로벌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SC은행이 올해 투자 테마로 선정한 것도 역시 ‘W.I.D.E.N’, 한국어로는 ‘투자의 시야를 넓혀라’다. 망망대해 투자의 바다에서 투자 상품의 옥석을 고르는 일은 카난 전무와 같은 자산관리 전문가의 몫이다.

그는 고객들의 자산관리와 투자 전략에 있어 특유의 김장김치론을 자신 있게 제시한다. 모름지기 정성이 빠질 수 없는 김장김치와 같이 자산관리도 고객들을 위해 정성껏 투자 상품을 고르고 꼼꼼하게 고객 지원을 펼쳐야 한다는 것. 그러고 보면 그의 명함에 새겨져 있는 ‘재물을 주위에 베푼다’는 의미의 라재시(羅財施)라는 이름은 그의 약속을 담은 고객에 대한 징표였는지도 모르겠다.


한국과 동북아 지역의 자산관리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데 올해 전략 방향은 어떻게 잡았나요.
“한국이 지난 20~30년 동안 압축 고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자동차가 어느 순간에는 코너를 돌아야 하는 것처럼 최근의 저성장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금리 상황은 상당 기간 유지되리라 보고 있고, 글로벌 차원의 변동성도 예상됩니다. 따라서 자산관리 담당자로서 고객들이 저금리 시장 상황을 잘 견뎌내고 변동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릴 겁니다.”


한국 경제가 코너를 도는 상황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자산관리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었나요.
“매년 SC은행은 한국을 포함해서 글로벌 전망에 대해 진단해 투자 테마를 선정하고 있는데요, 올해 저희가 선정한 테마는 영어로는 ‘W.I.D.E.N’이고 한국어로는 ‘투자의 시야를 넓혀라’입니다. 이를 통해 고객들이 좀 더 넓은 투자의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는데 환경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고객들의 성공적인 투자 기회는 유효합니다. 고객들에게 분산투자를 권유하는데 고객들 스스로가 이런 아이디어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조금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고객들이 정기적으로 인컴(income, 수익이나 이자)이 창출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인컴 테마도 고객들에게 추천해 드리고 있습니다.”


코너를 돌게 되면 오히려 시야를 좁혀야 되는 게 아닌가요.
“코너를 돌 때는 투자 전략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변화를 통해 다음에 좀 더 속도를 내서 전진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코너라고 생각할 수 있고 잠시 쉬었다 가는 단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 레이싱을 할 때 보면 잠시 쉬며 타이어를 교체하고 연료도 주입하잖아요. 그런 단계라고 보면 됩니다.”


자산관리를 김장김치에 많이 비유하던데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제가 한국에 온 지 벌써 4년이 다 됐는데 한번은 요리 클래스에 참석해서 김장을 시도해본 적어 있어요. 저한테 요리를 가르쳐주신 분이 손자, 손녀가 있는 할머니였는데 다른 분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서 만들어도 그분의 김치가 가장 맛있더라고요. 이 과정을 잘 살펴보니 3가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첫째는 상품으로 좋은 식재료를 써야 되고, 둘째는 만드는 과정으로 배추를 씻고 절이고 일일이 속을 채우는 과정에서 편법을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이죠. 마지막으로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쌓고 동시에 헌신적으로 가족을 위한 사랑을 담아 담그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우리가 하는 일에 접목해 비유하자면 SC은행은 업계 최고의 상품을 다양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저희가 계열사 금융기관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이라고 볼 수 있죠. 둘째는 프로세스인데요. 이렇게 선정된 상품과 투자 전략을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훌륭한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을 갖춘 사람입니다. SC은행은 고객 자산을 관리하는 전담 매니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격을 갖춘 팀이 전담 매니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신뢰받는 조언자로서 트러스티드 어드바이저(Trusted Adviser)는 저희 조직에 있어 가훈이나 가치와 같은 겁니다.

이 프로세스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사고방식과 똑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압구정지점을 가든 도곡지점이나 명동지점을 가든 거기서 근무하는 전담 매니저나 자산관리 팀이 똑같은 수준의 능력, 똑같은 투자 전략과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타 금융사와 차별화된 자산관리 노하우를 설명한다면요.
“SC은행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시장 전망이나 투자 전략에 대해 전 세계 애널리스트와 리서처들이 작업한 결과물이 싱가포르 본점에서 취합된 이후 단일화 돼 고객들에게 뷰로 제공됩니다. 상품이나 솔루션, 제휴사를 선택할 때 굉장히 투명하고 객관적인 프로세스를 활용한다는 점도 강점입니다.

예를 들면 싱가포르의 멤버들과 한 달에 한 번씩 화상회의를 하는데 그 안에서 치열하게 토론을 하고 합의된 결론을 내서 결국 방을 나선 이후에는 동일한 투자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 부분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합니다. 또 계열 자산운용사를 보유하다 보면 투자에 있어 편향되기 쉬운데 계열사가 없다는 점은 오히려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에 대한 부분인데 현재 1억 원에서 수십억 원을 보유한 자산가들을 각 은행들이 VIP라고 부르는데 실제 특별한 혜택은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SC은행은 고객만을 전담하는 전담 매니저가 있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전문가 팀을 갖추고 있습니다. 작년 350여 번의 웰스케어를 주최했고 그 자리에 1만 명 가까운 고객이 참석했습니다. 인터내셔널 웰스포럼이라는 행사도 개최했는데 이를 통해 저희 제휴사와 싱가포르에 있는 SC은행의 전문가들이 한국의 고객들에게 시장 전망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MARKET LEADER] “김장김치처럼 정성 가득 담긴 글로벌 자산관리 펼칠 겁니다”
김장김치 외에 한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음식이 있나요.
“비빔밥입니다. 처음에는 비빔밥으로 비유를 많이 했는데 김장으로 정착하게 된 겁니다(웃음). 왜냐하면 비빔밥이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는 음식이지만 사실 그 과정을 알고 보면 하나하나 재료를 다 손질해서 준비해야 하는 음식이에요. 한국에 있으면서 워낙 여러 군데서 비빔밥을 먹다 보니까 이 식당은 비빔밥이 좋다 저긴 안 좋다 이 정도까지 기자님에게 이야기 드릴 수 있을 정도죠. 일단 채소 손질부터 차이를 만들고요. 특히 밥의 질이 굉장히 중요한데 어떤 쌀로 어떻게 밥을 지었느냐가 큰 차이를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양념으로 들어가는 고추장도 똑같이 중요한 재료고요. 마지막으로 굉장히 중요한 건데 어떻게 디스플레이 하느냐도 중요합니다. 50%는 입으로도 먹지만 50%는 눈으로도 먹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것이 눈에 띄는데 IT 공학도에서 금융인으로 변신한 계기가 있나요.
“솔직히 말하면 공학도로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죠.(웃음) 제가 대학에서 공학으로 전공을 마치고 나니까 선택의 기회가 생겼는데 미국으로 가서 석사 과정을 밟느냐 아니면 IT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느냐의 선택이었습니다. 공학 쪽에서 굉장히 성공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니 IT 회사를 창업하든지 인공지능이나 신경과학과 같은 수준 높은 분야에서 전문가가 돼야 했던 겁니다. 둘 다 저의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커리어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님은 소비재 회사에서 일평생을 바치셨는데 아버님 회사는 전 세계 마케팅 분야에서는 최고의 회사라고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러한 배경 덕분에 MBA를 선택하게 됐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은행에서 일하게 된 겁니다. 그 당시 스탠다드차타드가 소매금융을 막 시작할 때였는데 그 부분이 흥미로워 이 은행을 선택했습니다.”


취미로 인도식 드럼 연주를 한다고 하는데 일종의 향수 달래기로 봐야 하나요.
“12년 동안 드럼을 쳤기 때문에 전문가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창의적인 에너지가 있다면 드럼을 통해 분출하는 것 같아요. 아내나 아버님 같은 경우는 자주 드럼을 치면서 즐기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시간이 없어서 많이 못 치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 전통 악기도 드럼과 비슷한 게 있어 시도를 해봤거든요. 서초동에 국립국악원이 있어서 가을에 방문해 그때 사물놀이 수업도 들어봤고요. 그런데 강사가 스위스에서 오신 여자 분이시더라고요. 스위스 여자 분이 몇 년 동안 한국에 계시면서 굉장히 헌신적으로 집중해서 한국 전통 악기와 북을 가르치는데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추천할 곳은 없나요.
“이미 아실 수도 있지만 2, 3곳이 생각납니다. 지난가을에 가족들과 함께 내장산과 지리산을 갔었죠. 그때 친구들과 다 같이 버스를 대절해서 22명 정도 갔는데 마법처럼 좋았습니다. 담양의 메타세콰이아 길이 있는 거 아시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광이었습니다. 제가 사진을 즐겨 찍어 페이스북에 사진도 올렸는데 제 인생 최고의 사진인 것 같습니다. 그 길이 원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인데 사진을 찍는 몇 초 동안 잠시 사람들이 빠졌고 그 순간을 포착해 찍었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는 상징이 아닌가 싶어요.”


요리과학에도 관심이 높다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일단 음식에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스페인의 엘 불리(El Bulli)라는 유명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페런 아드리아라는 사람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이 식당이 1년에 3~6개월만 문을 연다는 겁니다. 나머지 문을 닫는 6개월은 셰프와 견습생들이 문을 여는 6개월 동안 어떤 요리를 선보일지 연구한다는 거예요. 그런 헌신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귀감이었습니다. 요리과학은 요리를 예술의 경지까지 올린 것을 견주어 말하는 겁니다. 요리를 할 때 일상적으로 준비하는 것도 있지만 굉장히 창의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도 있거든요. 또 나라, 지역, 문화마다 요리 재료나 맛, 스타일에 굉장히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 차이점을 보면서 그 나라 그 지역 사람이라든가 사고방식, 사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MARKET LEADER] “김장김치처럼 정성 가득 담긴 글로벌 자산관리 펼칠 겁니다”
직접 요리하는 것도 즐기는 편인가요.
“항상 하려고 노력하고 몇 개 요리는 하기도 합니다. 타이그린커리라는 카레 종류를 만들기도 하고, ‘시나몬 뿌린 프렌치토스트’나 ‘애플 시나몬 오트밀’처럼 떠먹는 것도 만듭니다. 집에서 가족끼리 먹을 때는 주로 인도 음식을 먹는 편이고요.”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SC은행의 모습을 조금 더 확장해서 시장에서 더 많은 분들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비즈니스적인 목표를 추가하자면 고객들에게 더 많은 상품을 소개하는 건데 이를 위해 SC은행은 시스템적인 부분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2가지 정도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올해 자산관리 투자 상품이 태블릿 PC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걸 모빌리티 플랫폼(mobility platform)이라고 부릅니다. 또 한국 투자자들이 글로벌 채권과 주식에도 투자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