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기자의 HIP & HOT
“다음 주엔 꼭 ‘데블스 도어’에 가봐야겠어. 요즘 방배동 아줌마들 사이에 ‘데블스 도어’가 아주 핫하거든. 점심때부터 줄을 쫙 서 있어서 번번이 못 들어갔다니까.”지난해 연말, 역시 ‘방배동 아줌마’인 지인의 한 마디에 마음이 ‘혹’했다. 생각할 것 없이 문을 두드렸다. 팩트가 아니라는 신세계푸드 측의 설명이 있건 말건, 오픈 전부터 ‘정용진 부회장의 야심작’이라고 알려지며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수제 맥줏집 ‘데블스 도어’는 배우 전지현도 1시간을 기다려 들어갔다느니, 정 부회장 역시 줄을 서야 한다느니 하는 ‘소문’들이 보태지며, 다소 불편한 위치(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별관 주차장과 가깝다)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발걸음들을 재촉했다. 아무리 맛 좋다고 소문난 곳도 줄 서는 건 딱 질색인지라 ‘그래봐야 펍(Pub)’이라고 애써 외면하려 했으나,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궁금증은 증폭되기만 했다.
그래서 나름 찾은 접점이 연말연시가 지난 평일 점심, 그것도 오픈 시간인 11시 30분에 맞춰 가는 것. 오픈 15분 전에 도착했음에도 비닐로 찬바람을 막아 놓은 대기실 안에는 대여섯 명의 여성 고객이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연말엔 점심에도 대기 행렬이 길었다더니 다소 ‘오픈발’은 빠진 모양이었다.
‘치명’까진 아니지만 매력적 악마와도 같은 치명적인 유혹이라는 의미를 담은 ‘데블스 도어’. 밤이면 그 파란 색감이 더 신비롭다는 낡은 문 앞에 서서 눈앞에 펼쳐질 광경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도로 쪽에서 바라본 어마어마한 규모의 빈티지한 건물에다 ‘브루어리(brewery·맥주 공장)’라고 써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되기는 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프런트를 지나 엄청난 층고의 뻥 뚫린 공간이 나타났다. 약 1216.53㎡의 넓은 공간이 그보다 더 넓게 느껴지는 건 왼쪽 벽으로 이어진 창문들과 햇살이 그대로 쏟아질 것만 같은 천창 때문이었다. 국내에선 보기 힘든 규모도 규모지만, 투명한 벽을 사이에 두고 설치된 독일 카스파리사의 대형 양조시설, 그 자체로 퍼포먼스 성격을 띠는 오픈 주방, 맥주 공장 콘셉트에 충실한 빈티지 가구들과 소품, ‘데블’의 모습을 한 디테일한 장식들까지 더해지니 분명 매력적이기는 했다. 공간에 비해 좌석 수는 고작 240여 개 미만으로 테이블 간격이 넓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어쨌거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상상하니 유럽의 어느 대형 펍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직 핵심 콘텐츠인 수제 맥주 맛도, 음식 맛도 보기 전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데블스 도어’를 찾는 첫 번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새로운 문화적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운이 좋으면 양조장에서 맥주를 관리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있고, 아직 준비 단계이긴 하나 양조시설 한쪽에 마련된 곳에서 직접 제조 체험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연예인들이나 얼굴이 알려진 이들이 선호한다는 2층 프라이빗 룸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한번에 만끽할 수 있는 1층 중앙의 스탠딩 테이블(물론 스툴의자에 앉을 수 있다)이 이곳 분위기를 제대로 경험하기엔 최적이었다. 12시가 넘어가고 본격적인 런치타임이 되면서 점점 사람 수가 많아졌다. 80% 이상이 여성 고객이었고, 가족 단위의 테이블도 더러 있었다. 연령층은 주로 30~40대가 많은 듯했으나, 유아를 동반한 젊은 부부도 있었다. 그러나 테이블 위에 놓이는 음식들은 대개 비슷했다. 피자와 버거, 그리고 간혹 치킨을 시키기도 했는데, 낮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브런치에 커피를 함께하듯 맥주를 함께 주문했다. 점심으로 음식과 술이 매칭된 광경이 처음엔 다소 낯설었지만 생각해보니 여긴 ‘게스트로 펍’을 표방하던 곳 아니었나.
기자도 대표 메뉴들과 ‘데블스 도어’에서 직접 제조하는 세 종류의 에일 맥주를 스타우트, 페일 에일, 인디아 페일 에일(IPA) 순으로 주문했다. 알코올 도수는 4~5도로 큰 차이가 없었지만, 쓴맛이 덜한 것부터 더한 순으로 맛보는 게 좋다는 관계자의 추천에 따른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 에일 맥주에 대한 기본 설명 들어간다. 맥주는 발효 방법에 따라 상면발효효모 방식과 하면발효효모 방식으로 나뉘는데 전자가 에일, 후자가 라거다. 과정이 다른 만큼 맛도 다르다. 에일은 향긋하면서도 과일 향과 맛이 진하고, 라거는 과일향이 없는 대신 빛깔이 투명하고 맛이 깔끔하다. 그동안 우리가 ‘시원하게’ 마신 맥주가 대부분 라거 계통이라고 보면 되는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에서 에일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2~3% 정도로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란다. 다시 돌아와, 낮 시간임을 고려해 와인 잔에 나오는 180㎖ 테이스팅 맥주로 시음을 해보았다. 가장 먼저 맛본 스타우트는 맛이 고소했고, 오렌지 빛이 도는 페일 에일은 향긋한 과일 맛이 났다. 그러나 마지막 IPA는 쓴맛이 강해 좀처럼 입에 잘 대지지가 않았다. 수제 맥주 특성상 그날그날 맥주 맛이 조금씩 다를 수 있음을 감안해도 독한 건 사실이었다. 데블스 도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종류가 페일 에일이라더니, 실제로 그날 다른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도 거의 페일 에일이었다. 이곳에서는 하루 준비량으로 총 25?의 에일 맥주를 준비한다는데, 지난 연말 손님이 몰리면서 페일 에일이 ‘품절’돼 일주일간 공급이 중단되는 일까지 있었을 정도다. 이날 맛본 맥주 중 개인적으로는 스타우트가 가장 괜찮았다. 기존에 강한 맛 때문에 흑맥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그 선입관을 깬 새로운 맛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음식과 수제 에일 맥주의 궁합
맥주 맛을 보는 사이 대표 음식인 일명 시금치 피자와 데블스 버거, 멕시칸 샐러드, 고구마 스틱 튀김 등이 나왔다. 점심엔 30여 가지의 메뉴가, 저녁에는 이보다 좀 더 많은 메뉴가 있다는데 손님들이 실제로 주문을 하는 건 다소 한정돼 보였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메뉴판이 좀 복잡하고 보기에 불편해서인지도 모른다. 기자 또한 열심히 들여다봤음에도 도대체 위에서 열거한 메뉴들 이외에 별로 찾지 못했으니까. 신세계푸드 R&D센터에서 직접 개발했다는 음식들은 모두 맛이 좋은 편이었다. “대단한 셰프들이 많다”는 관계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가격 대비 퀄리티는 만족스러웠다. 조금 짠맛이 강하기는 했지만 맥주와 ‘조화’를 이루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수긍이 가는 부분이었다. 관계자 말에 따르면 “‘오픈발’이 정확히 빠지는 3월 이후가 돼봐야 데블스 도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니 그때쯤이면 혹 기다리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데블스 도어는 평일 저녁 기본 30분~1시간, 주말 1~2시간의 웨이팅이 필수다. 기다리는 이들이 많아 예약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지만, 어찌 보면 그 ‘줄’ 자체가 누군가에겐 분명 더 가보고 싶은 이유가 되기도 할 게다. 어쨌거나 기자는 앞서도 말했지만 기다리는 거 질색이니, 다시 데블스 도어를 찾는 시간대도 점심이나 이른 저녁으로 대충 정해졌다. 그 말인즉 일단 재방문하고 싶은 의사가 생겼단 뜻. 다만, 조금은 시끌벅적하고 다양한 세대와 외국인들까지 더해 이색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는 저녁 타임은 또 어떻게 다른지 하는 채워지지 않은 호기심도 이유의 반 이상이다.
데블스 도어를 즐기는 몇 가지 방법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에 오픈해 평일에는 자정, 주말에는 새벽 1시까지 브레이크타임 없이 운영된다. 다만 평일 낮 3시부터 5시까지는 맥주와 사이드 메뉴만 주문 가능하다. 예약을 받지 않으므로 평일 저녁, 그리고 주말에는 웨이팅을 각오해야 한다.
맥주는… 수제 맥줏집에 갔으니 그 집 메인 맥주를 마시는 게 정답. 추천대로 스타우트-페일 에일-인디아 페일 에일 순으로 마셔도 좋고, 알코올 도수를 기준으로 낮은 것부터 마셔도 좋다. 180㎖ 테이스팅 잔이 3600원, 370㎖는 7500원, 470㎖는 9500원이다. 수제 맥주뿐만 아니라 엄선한 20여 가지 게스트 비어 또한 판매 중. 그중에는 크래프트 비어를 생산하면서 유통 판로가 없는 국내 소규모 회사들의 맥주도 포함돼 있다. 게스트 비어는 수제 맥주보다 비싼 편인데, 그중에는 4만 원짜리도 있다.
음식은… 다른 메뉴를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가장 많이 주문한다는 시금치 피자와 데블스 버거는 맛이 괜찮다. 감자튀김과 고구마튀김도 5000원씩인데 가격 대비 맛도 양도 만족스럽다. 사람들 사이에는 3000원짜리 팝콘도 인기란다. 메뉴는 보통 1만 원대 초반에서 2만 원대로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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