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쿠바는 지난 12월 53년 만에 외교 관계를 다시 맺기로 선언하고, 올 상반기 중 국교를 정상화할 예정이다. 미국·쿠바의 국교 정상화 배경과 그 파장을 짚어봤다. 아울러 한국도 중남미 교두보로 쿠바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GLOBAL MONITOR] 미국·쿠바의 국교 정상화 파장과 한국의 선택
쿠바의 가장 유명한 수출 상품은 시가(cigar)다. 쿠바산 시가는 전 세계적으로 최상품이라는 평가를 들어왔다. 쿠바산 시가를 좋아했던 각국 지도자들을 보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쿠바와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금수조치까지 내린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도 포함된다. 케네디 전 미 대통령은 1962년 2월 6일 쿠바와의 교역 중단을 발표하기 몇 시간 전에 비서에게 은밀히 쿠바산 시가를 구입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쿠바산 시가 1200개를 확보했다는 비서의 보고를 듣고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에 서명했다. 이후 쿠바산 시가는 다른 국가들을 통해 미국으로 몰래 반입되는 대표적인 밀수품이 됐다. 쿠바산 시가가 이르면 올해 안에 미국에 정식으로 수출된다. 매년 4억 달러어치가 수출되는 시가는 쿠바의 외화벌이 효자 상품이다. 미국과 쿠바는 지난해 12월 53년 만에 외교 관계를 다시 맺기로 선언했고, 올 상반기 중 협상을 통해 국교를 정상화할 예정이다. 양국은 수개월 내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대사관을 다시 개설하기로 했다. 미국은 이와 함께 금수조치를 비롯해 쿠바에 대한 봉쇄 조치를 대폭 완화할 계획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7일 특별 성명을 통해 “미국은 쿠바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역사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면서 외교 관계 정상화를 밝혔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또 “쿠바에 대한 봉쇄 정책은 실패했다”며 “이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쿠바는 1961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카스트로 일가와 공산당이 통치하고 있다”면서 “어떤 나라를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을 어렵게 얻었다”고 강조했다. 미국 언론들은 그의 결정이 1979년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의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 1995년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베트남과의 국교 정상화’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평가했다.


미국, 중남미 공략 교두보 마련
오바마 미 대통령이 역사적인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있다. 중남미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불려온 지역이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중남미 국가들에선 대부분 좌파 정권이 통치하고 있다. 현재 중남미 18개국 중 12개 국가(남미 10개국 중 8개 국가)에서 좌파 정권이 집권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이 점을 이용해 중남미에 적극 진출해왔다. 중국의 의도는 중남미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시장을 확보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해 미국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중남미의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줄 경우 자국의 안보에 대해 위협이 되는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쿠바는 중남미 좌파 국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미국의 전략은 쿠바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중남미에서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중남미 지역 언론들은 미국·쿠바 외교 정상화 결정이 앞으로 미국과 중남미 좌파 정권들 간의 관계 개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남미 국가들의 맹주 격인 브라질과의 관계가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도·감청 문제로 갈등이 증폭돼 왔으며, 이 때문에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2013년 10월로 예정됐던 미국 방문 계획을 전격 취소해버렸었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오는 4월 말 파나마에서 열리는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 참석할 경우, 미국과 중남미 관계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쿠바는 미국의 금수조치가 시작된 1962년 OAS 회원국 자격을 박탈당했다. 2009년 회원국 자격을 회복했지만 미국의 거부로 정상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해 왔다.

미국은 또 쿠바 인근 해저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석유와 천연가스를 개발하려는 속셈도 갖고 있다. 미국 에너지 기업들은 그동안 금수조치 때문에 쿠바에 대한 투자를 전혀 하지 못했다. 쿠바를 비롯해 자메이카, 바하마, 아루바, 수리남, 가이아나 등 카리브 해의 섬나라들은 최근 들어 심해 유전과 천연가스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에너지 기업들은 카리브 해의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에 적극 투자할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가 해제되지 않는다면 투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쿠바 공산주의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미국으로선 쿠바의 개혁파와 협력해 쿠바가 공산주의 체제를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최선의 방책으로 보고 있다. 쿠바는 북한, 중국, 베트남 등과 함께 전 세계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다. 미국은 쿠바가 정치·경제 개혁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면 ‘제2의 미얀마’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얀마는 수십 년간 군부독재 체제를 고수해 오다 2011년 테인 세인 대통령 집권 이후 과감한 민주화와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쿠바, 경제난 극복 꾀해
쿠바 정부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상당한 이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카스트로 의장이 미국과 악수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국제 유가 폭락으로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해 있다. 베네수엘라는 국가 재정의 95%를 원유 수출로 충당하고 있는데, 최근 유가가 급락하자 경제는 크게 위축되고 물가는 치솟고 재정적자가 커지는 등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까지 내몰려 있다. 베네수엘라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 시절부터 쿠바와 동맹 관계를 맺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베네수엘라는 그동안 쿠바에 하루 평균 10만 배럴의 원유를 지원해 왔다. 쿠바 전체 소비량 중 3분의 2에 해당한다. 한 해 32억 달러(3조5000억 원)어치 정도의 원유가 무상으로 쿠바에 공급돼 왔다. 이는 쿠바가 냉전 시절 구소련으로부터 받은 원조 규모를 능가하는 규모다. 쿠바는 1991년 구소련의 원조가 중단된 뒤 끔찍한 경제난을 겪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봉쇄 정책이 계속 유지되는 한 카스트로 쿠바 의장이 야심차게 추진해 온 개혁 정책이 성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경제 개혁을 적극 추진해 왔지만 53년간 이어진 미국의 봉쇄 조치에 골병이 든 쿠바 경제를 되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쿠바를 저성장의 늪에서 꺼내줄 결정적 카드가 될 전망이다. 미국의 교역 봉쇄 해제로 각국의 자본 유입과 여행 규제 완화에 따른 관광객 증가로 내수에 온기가 돌 것으로 예상된다.
[GLOBAL MONITOR] 미국·쿠바의 국교 정상화 파장과 한국의 선택
양국 금융거래가 정상화돼 쿠바에 대한 미국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면 쿠바 경제에 숨통이 트일 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투자도 크게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쿠바 여행 제한이 점차 풀리면 현재 연간 30만 명인 쿠바계 미국인들의 모국 방문이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여행 허가가 간소화되면 연간 50만 명이던 미국인의 여행객 숫자도 크게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개리 후프바우어 선임 연구원은 양국 국교가 정상화되면 연간 교역 규모가 2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국, 쿠바 통해 중남미 진출해야
쿠바는 야구 등 우수한 스포츠 선수들을 미국에 수출할 수도 있다. 쿠바는 아마추어 야구 최강국이다. 쿠바의 야구 선수들이 그동안 미국의 프로 야구인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면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해야 했다. 국제대회에 참가한 뒤 팀을 이탈, 제3국으로 망명해 미국으로 들어가는가 하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보트를 타고 직접 쿠바를 탈출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해 왔다. 쿠바 정부는 앞으로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선수들을 수출해 상당한 자금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양국이 외교 관계를 정상화할 경우 쿠바에서 보트를 타고 미국으로 탈출하는 난민들도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미국 플로리다 주 등에는 80여만 명의 쿠바계 이민자들이 거주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쿠바 혁명 이후 탈출한 난민들이다.

미국 기업들은 앞 다투어 쿠바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주요 항공사들과 관광업계는 쿠바에 지사를 개설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자동차업계와 건설·농업· 정보통신 분야도 국교 정상화로 상당한 이익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등 유럽 각국 기업들도 쿠바에 대한 투자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쿠바에서 기반을 닦아온 중국 기업들은 미국 기업들과의 경쟁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쿠바에서 지리(吉利)자동차 1만여 대를 판매했다.

우리나라도 쿠바와의 수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 세계 주요국 중 지금까지 쿠바와 공식 수교를 맺지 않은 나라는 미국과 한국, 이스라엘뿐이다. 쿠바는 1949년 7월 우리나라를 정식 승인하고 한국전쟁 때도 우리나라를 지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쿠바 혁명 이후 쿠바가 북한과 수교를 하면서 우리나라와 멀어졌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1986년 직접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과 회동하기도 했다. 공식 외교 관계가 단절된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와 쿠바는 경제·문화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꾸준히 계속해 왔다. 우리나라는 현재 중국과 베트남에 이어 아시아 국가들 중 교역 규모로 세 번째다. 2005년에는 수도 아바나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무역관이 들어서기도 했다. 쿠바를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도 연간 5000여 명이나 된다. 쿠바에는 최근 들어 한류 바람도 강하게 불고 있다. 우리나라가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다시 맺으면 중남미 진출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쿠바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