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은행 한국씨티은행과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선진 금융의 전수를 내걸며 국내에 상륙했지만 최근까지 영업 기반 축소 등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이나 새 최고경영자(CEO) 교체 이후 실적 부진에 대한 본격적인 반전이 절실하다는 점이 그렇다. 두 은행의 승부는 이제부터다.
[ISSUE & FOCUS] 외국계 라이벌 SC vs 씨티 “밀릴 수 없다”…생존 경쟁 후끈
웃어도 웃는 게 아닌 은행들이 있다. 지난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급기야 조직의 CEO까지 교체한 후 올해 본격적으로 그 진면목을 보여줘야 하는 씨티은행과 SC은행이 바로 그곳이다.

씨티은행은 지난해 10월 27일 14년 만에 하영구 전 은행장의 후임으로 박진회(58) 은행장을 선택했고, SC은행은 지난해 12월 23일 주주총회를 열어 박종복(60) 은행장을 선임했다. 박종복 은행장은 SC그룹이 2005년 제일은행을 인수한 이후 처음으로 선임한 한국인 행장으로 SC그룹 이전 뉴브릿지캐피탈까지 포함하면 2000년 이후 처음이다.

박진회 행장이 샤프면서도 유머러스한 미국인 스타일에 가깝다면 박종복 행장은 전통과 원칙을 중시하는 영국의 젠틀맨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조직의 2인자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해 온 박진회 행장은 가끔 직원들에게 던지는 농담에서도 군더더기를 찾기 힘든 날카로운 면이 있는 반면, 박종복 행장은 오랫동안 옛 제일은행에서부터 은행 직원들과 어려움을 함께 겪었던 탓인지 친화력이 남다르다는 평가다.


몸집 줄어든 SC·씨티, 신용등급 하락
최근 극심한 실적 하락세를 겪고 있는 두 은행은 새 CEO 취임 전인 지난해에 대대적인 몸집 줄이기를 진행했다. 씨티은행의 경우 지난 2012년 218개였던 점포를 2014년 9월 말 기준 134개로 무려 38%(84개)를 줄였으며, SC은행도 같은 기간 338개에서 296개로 12%(42개)의 점포를 줄이는 강행군을 했다.

영업점 통폐합은 인력 축소로 이어졌으며, 씨티은행이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4229명에서 3587명으로 15.2%(642명)를, SC은행이 같은 기간 5605명에서 5146명으로 8.2%(459명)의 인력 조정을 마쳤다. 결국 두 은행장이 입성하기 전에 상당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었고, 이제는 실적 개선으로 그 효과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남게 된 것이다.

피나는 구조조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외 영업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은 데다가 이제는 지방은행의 추격까지 받고 있는 신세다. 실제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지방은행의 시장점유율은 7.9%로 올라선 반면 씨티은행과 SC은행의 점유율은 5.9% 선에 간신히 턱걸이를 한 상태다.
[ISSUE & FOCUS] 외국계 라이벌 SC vs 씨티 “밀릴 수 없다”…생존 경쟁 후끈
지난해 말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례적으로 두 은행의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AAA/안정적’에서 ‘AAA/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등급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6개월에서 2년 내에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두 은행의 영업 기반 축소에 따른 시장 지위 악화와 수익성 및 이익 창출력 저하 추세 등을 우려했다. 씨티와 SC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자본비율 등 높은 수준의 자본 적정성을 유지하고 있는 부분도 자기자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실적 하락세가 주춤해졌다는 거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두 은행의 3분기 실적을 보면 씨티은행과 SC은행은 각각 1058억 원, 176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전분기 씨티은행이 749억 원의 순손실을, SC은행이 61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고무적이다.


구원에 나선 ‘두 朴’…경영쇄신 이룰까
13년 6개월 동안 씨티은행의 간판이었던 하영구 전 행장의 뒤를 이어 구원투수로 나온 박진회 행장은 하 전 행장과의 차별화가 과제다.

박 행장은 1957년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했으며,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이수하고 런던 정경대(LSE)에서 경제학 석사를 취득한 해외파다. 1984년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입행했으며, 경영 지원과 자금 운용, 기업금융 등을 맡으며 씨티은행 조직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평가다.

박진회 행장은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중구 소공로 소재 더플라자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사업의 3대 축을 ‘기업금융, 웰스매니지먼트(WM), 카드’라고 밝혔다. 그는 자금 운용과 기업금융의 전문가답게 기업금융의 타깃으로 국내 글로벌 기업(EMC)을 지목하고 구조화 상품 및 펌뱅킹(firm banking), 해외송금 솔루션 등에서 국내 금융사와 차별화를 이루겠다고 귀띔했다.

시장에서 강점을 보여 왔던 WM과 카드는 시장 지배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고, 점포 축소와 인력 조정으로 영업력이 위축된 리테일(소매)영업은 디지털뱅킹을 통해 상쇄시켜 나간다는 계획을 전했다.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경영 동지였던 하영구 전 행장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박 행장의 태생적인 한계다. 결국 ‘작고 단단한 은행을 만들겠다’는 그의 ‘스몰 뱅크(Small Bank)’ 전략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하영구 뛰어넘기’가 전제가 돼야 할 것이라는 게 은행권의 관측이다.

하 전 행장의 경우 13년 6개월간 씨티은행을 이끌어 왔지만 외형 성장에 결정적으로 실패하며 시장점유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후퇴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었다.

취임 6개월여 만에 조기 교체된 아제이 칸왈 행장(동북아시아 지역 총괄)의 구원을 맡은 박종복 행장은 소매금융 전문가인 자신을 넘어서야 한다. 과도하게 가계대출 위주로 구성돼 있는 영업 형태에 대한 전면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박 행장은 1955년생으로 청주고와 경희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1979년 제일은행 시절부터 35년간 은행 현장을 지켰다. 가계대출 위주로 된 영업 행태를 바꿔 리테일, 커머셜, 기업금융이 균형 있게 배분되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 2013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봤을 때 SC은행의 전체 대출 가운데 가계대출 비중이 70%에 이를 정도로 그 편중이 심하다.

또 동북아시아 금융 거점 역할을 맡고 있는 한국SC은행의 글로벌 위상도 제고할 필요가 있다. SC그룹이 한국에 진출한 다음 해인 2006년 22.7%를 차지했던 SC은행의 그룹 내 자산 비중은 지난해에 8.2%까지 쪼그라들었으며, 이 같은 달라진 위상 탓인지 끊임없이 한국 시장에서 SC그룹의 철수설이 나도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박종복 행장은 1월 8일 취임식에서 “우리가 다른 은행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가계대출을 줄이고 중소기업금융의 확대를 위해서는 결국 글로벌 네트워크의 강점을 제대로 살려야 한다는 주문이다.

씨티와 SC은행은 올 한 해 여러 분야에서 비교 대상으로 거론될 공산이 크다. 지난해에 아찔한 실적 하락을 경험하며 비슷한 시기에 행장 교체로 분위기를 쇄신한 두 은행이 올해 결국 보여줘야 할 것은 시장에서의 확실한 존재감밖에 없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