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서명만 돼 있고 날인이 되지 않은 유언장은 부모의 사망 후 자녀 간 상속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후에 남겨진 자녀들의 우애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유언장 작성 시 효력 발휘 조건을 제대로 숙지해야 한다. 수 년 전의 일이다. 어느 자산가 A씨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부친의 죽음에 경황이 없었던 형제들은 장례를 치르고 나서야 부친이 남긴 재산에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부친은 생전에 유언을 작성했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형제들 사이에는 우애가 있어야 하고 본인이 미리 유언장을 작성해 나름대로 공평하게 나누어 놓았으니 서로 상속재산을 가지고 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상속인들은 드디어 10여 장에 걸쳐 꼼꼼하게 작성된 부친의 유언장을 찾았다. 그러나 부친은 친필로 작성한 후 서명은 했으나 날인을 하지 않았다. 날인이 되지 않은 유언장을 놓고 형제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부분이 적은 상속인들이 특히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듯 친필로 쓴 유언장, 그러나 서명만 돼 있고 날인이 되지 않은 유언장의 효력에 관해 당시에는 학설상 유효, 무효 견해가 엇갈렸으며 판례도 없었다. 필자는 친필로 쓴 유언장이니 날인이 없다고 해도 유효하다는 당시 유력한 학설을 토대로 이 유언은 유효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상속인들 역시 가장 많은 상속재산을 받게 된 상속인이 상당 부분을 양보하고 다른 상속인들은 법률상 상속분보다는 적지만 유언장에 기재된 것보다는 많이 받는 선에서 합의가 됐다. 형제들은 A씨 사망 이후 지금도 서로 우애 좋게 잘 지내고 있다.
두 번째 사례를 보자. 80대 여성인 B씨는 사망하기 전 3남 중 둘째 아들에게 더 많은 재산을 남긴다는 내용으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을 했다. 일부러 날인, 주소, 날짜 등 법적으로 유언 성립 요건 가운데 일부를 누락시킨 채 유언을 남겼다. 둘째 아들은 자신에게 더 많은 재산이 오도록 하기 위해 모친으로 하여금 그러한 내용으로 유언장을 작성하도록 강요했고, 둘째 아들에게 얹혀서 살고 있던 B씨는 그러한 유언장 작성에 반대하기 어려웠다.
이에 B씨는 둘째가 원하는 대로 유언장을 작성했으나 일부러 일부 법률 요건을 누락한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상속인들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면서 자신의 사망 후 상속인들 사이에서 합의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소송으로 해결하도록 해 법정 상속분에 따라 배분이 되도록 한 것이다.
앞의 사례들처럼 유언을 둘러싼 분쟁 또는 잠재적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유언은 ‘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말’을 뜻한다. 이 때문에 유언은 사망을 눈앞에 두고 작성해야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법률적 의미의 유언은 자기 사후의 재산 또는 신분에 관한 법률관계를 명확하게 정해두기 위해 생전에 행하는 상대방 없는 단독 행위다.
‘내가 죽은 후에 남향에 묻어 달라’는 인간적 의미의 유언은 법률상 유언과 차이가 있다.
자필증서에 날인 등 구체적 명시 없는 유언은 무효
민법에서는 자필증서, 공정증서, 구수증서, 비밀증서, 녹음 등 5가지 방법에 의한 유언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이 주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유언의 사회 일반적인 의미와 법률적인 의미의 차이로 인해 일반인들이 유산에 관한 유언을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손들 가운데 일부에게만 더 많은 재산을 상속시킨다는 것을 미리 밝히기 어려워서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거나 작성하고도 이를 숨기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공증인 앞에서 확인 등을 거쳐 유효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공정증서의 방식에 의한 유언보다는 자필증서나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이 많은 것으로 이해된다. 언제든지 완성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자필로 작성해 날인만 하면 되는 상태로 보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가 날인, 주소, 날짜 등의 요건 가운데 하나를 누락한 상태에서 사망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첫 번째 사례 이후 대법원은 “민법이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민법에서 정하는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아무리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는 취지로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 따라서 판례에 의하면 날인이 돼 있지 않거나 날짜 등이 제대로 기재되지 않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무효다.
이렇게 유언을 기피하거나 유언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아니한 데에는 그 명칭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미에서는 유언을 ‘wills’ 라고 해, 돌아가시는 분의 재산에 대한 ‘의도’를 중요시 여기는 반면, 우리는 재산보다는 죽음과의 연결이 더 강해 보이는 ‘유언(遺言)’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표현에 의해 유언은 재산에 관한 의도가 표현된 것이라기보다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의미가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상속을 미리 생각할 만큼 여유가 없다거나 언제 사망할지 모르므로 그때까지 일부의 재산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미리 상속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유언’이라는 법률 용어는 예컨대 재산상속선언·약속·확약 혹은 유산분할선언, 유산선언 등으로, 유언을 하는 법률행위는 유산행위라든가 재산상속지정 등으로 일반인들에게 이해가 쉽고 심리적 거부감도 줄이는 용어로 수정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유언을 통해 자손들에게 상속할 재산을 미리 나누고 상속인들 사이의 분쟁 또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전에 자손들이 우애가 좋다고 해 부모의 사망 이후에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유언으로 그러한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재산에 관한 유언의 법률적 효력은 사망 시에 발생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사망 직전까지 기다려 유언을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신이 맑을 때 미리미리 준비해 자손들 사이에서 재산을 둘러싼 분쟁이 없도록 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최병선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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