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겨냥한 라이프 스타일 상품 시장
골드싱글. 학력이나 경제력 등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도 혼자 사는 독신 남녀를 일컫는다.이들은 1인 가구 소비 시장에서 어엿한 큰손으로 통한다. 기업들은 이들의 소비 패턴을 관찰하고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골드싱글들이 주도하는 ‘솔로 이코노미’를 들여다봤다.
제약회사 임원으로 재직 중인 골드미스 황인주(42) 씨는 승마와 와인이 인생의 즐거움이다. 얼마 전 500만 원대 고급 와인 셀러를 구매한 뒤에는 지인들을 초대해 한 달에 한 번 와인파티를 연다. 지난 연말에는 한 해 동안 수고한 자신을 위한 선물로 200만 원대 호텔패키지를 구입해 휴식을 취했다. 외국계 기업 법무팀에서 일하는 싱글남 성민수(45) 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외모 가꾸기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아마추어 아이스하키선수인 성 씨는 주말마다 하키장에 나가 운동과 인맥 관리를 겸하고 주말엔 백화점 남성 편집숍에 쇼핑하러 간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2000만~3000만 원짜리 프티성형도 마다하지 않는다.
1인 가구가 빠르게 늘면서 이들의 소비문화인 이른바 ‘솔로 이코노미’가 주목받고 있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00년 15.5%에 그쳤던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2015년 25%를 넘어 2035년에는 34.3%로 2인 가구(34.0%)를 능가할 전망이다. 이들의 소비지출 규모 역시 현재 50조 원 규모에서 2030년 194조 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홀로 사는 30~50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로 대표되는 골드미스터와 골드미스는 ‘솔로 이코노미’를 이끄는 큰손이다. 이들은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현재의 풍요로운 삶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무엇보다 자신에게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특징이 있다. 기업들이 골드싱글의 소비패턴에 주목하고 그들의 니즈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지난해 ‘솔로 이코노미 성장과 금융산업’이라는 보고서에서 “유럽 및 미국의 경우 정부 정책 및 주택·식품 시장 등이 이미 1인 가구 증가에 맞춰 변화, 발전하는 중이며, 국내는 싱글 및 1인 가구를 새로운 소비주체로 인식하는 성장 단계에 와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골드미스 홀로 즐기는 럭셔리 1인용 호텔 패키지
호텔가는 골드미스의 지갑을 가장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업종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 가족, 연인 등 2인 이상을 겨냥했던 패키지 상품에 1인용을 추가하거나 아예 싱글용을 신설하면서 ‘고소득 나홀로족’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롯데호텔서울은 여성들끼리 특별한 모임이나 파티를 즐길 수 있는 ‘레이디스 셀레브레이션 패키지’를 선보여 인기몰이 중이다.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은 지난해 말 싱글 여성들을 위해 바비 파티 드레스와 클럽 라운지의 조식, 와인 룸서비스 등이 포함된 ‘바비룸 패키지’를 선보여 소위 대박을 쳤다. “개장하자마자 주말 예약 문의가 빗발쳤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파크하얏트서울의 ‘스위트 템테이션 패키지’는 180만 원에 달하지만 골드미스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다. 리츠칼튼 서울은 1인 전용 패키지인 ‘‘원더’풀 트리트’를 2월 28일까지 판매한다. 수페리어 딜럭스 룸 1박과 함께 세계적인 스파 코스메틱을 이용할 수 있는 럭셔리 서비스로 가격은 31만 원이다. 리츠칼튼 서울 관계자는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여성 고객들을 겨냥한 ‘레이디스 패키지’가 어느새 호텔가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며 “골드미스들은 재방문률이 높고, 입소문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행·항공업계도 골드싱글에 주목한다. 온라인쇼핑몰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에어텔(항공과 숙박을 패키지로 묶은 여행 상품)을 이용한 해외 여행객 중 30% 이상이 ‘1인 여행객’으로 나타났다. 이 중 83%가 20~30대이지만, 40~50대(17%)도 나 홀로 여행에 동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내일투어가 1인 여행객을 위해 선보인 개별 자유여행 상품 ‘금까기’는 싱글 룸 추가 비용을 낼 필요 없어 실속 있게 유럽, 미주 등 개별 자유여행을 즐길 수 있다. 롯데제이티비의 레이디스 홀리데이 역시 ‘여성이 만드는 여성을 위한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여행 디자이너가 여성의 취향에 맞춘 여행지, 호텔, 푸드, 에스테틱, 쇼핑을 제안한다. 자유여행으로 인기가 좋은 테마는 골프나 건축, 미식 등이다. 30대 후반 골드미스 윤승주 씨는 “10년 전부터 혼자 여행하기 시작해 워낙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요즘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관광을 즐기게 된다”며 “이번 설 연휴에는 발칸반도 쪽으로 클래식 투어를 다녀올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 프리미엄 호텔 예약 사이트 관계자는 “유럽의 유명하지 않은 부티크 호텔 등 독특한 숙소를 예약하는 경우를 보면 혼자 떠나는 싱글족”이라며 “그들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여행을 추구하는 만큼 개성 있고 프라이빗하게 만들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다이아 미스터’ 1000만 원대 피부 관리도
골드미스터 시장은 골드미스 시장보다 더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능력 있는 독신 남성을 뜻하는 ‘골드 미스터’에 외모를 꾸미는 데 관심이 많은 ‘그루밍족’의 특성까지 겸비한 남성을 가리키는 ‘다이아 미스터’가 신조어로 등장할 정도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지난해 1인 가구의 부상과 솔로 이코노미 보고서에서 막강한 경제력으로 무장한 골드미스터들의 씀씀이가 골드미스의 배에 달한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강남의 한 피부과가 30~40대 미혼 남성 고객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1인당 700만~1000만 원을 지출해 골드미스 고객보다 3배나 높은 구매력을 보였다. 아내와 함께 온 기혼 남성들이 평균 100만 원을 쓰는 것과 비교해도 골드미스터의 파워는 막강했다. CNP차앤박피부과 관계자는 “미혼 남성들은 회당 80만~120만 원인 주름, 탄력, 기미색소 관리 프로그램을 한번에 5회 정도 구매한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신세계와 롯데, 현대백화점이 잇따라 남성 전문 편집숍을 리뉴얼하고 수입 브랜드를 대거 영입한 것도 이들 골드미스터를 잡기 위해서다.
신세계백화점은 본점 7층에 남성 클래식·컨템퍼러리 전문관을 선보인 데 이어 6층에 에르메네질도 제냐, 브리오니 등 100여 개의 고급 해외 브랜드를 모은 ‘럭셔리 남성관’을 열었다. 롯데백화점 본점도 기존 남성 캐주얼 매장을 확장해 프라다옴므를 비롯한 남성용 고급 수입 브랜드들을 입점시켰으며 현대백화점 역시 무역센터점 에 남성 전문관 ‘현대 멘즈’를 열어 남심(男心) 잡기에 나섰다.
신세계 관계자는 “남성 고객 비중은 2007년 만 해도 전체 매출의 23%에 그쳤지만 지난해 상반기 32.2%까지 늘었다”며 “여성 패션 시장이 한계에 달한 반면, 소득 수준이 늘고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패션에 관심을 갖는 남성 고객의 씀씀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 정보기술(IT)제품, 자동차 역시 골드미스터가과감하게 투자하는 분야다. 영화광인 성형외과 의사 한준호(40) 씨는 얼마 전 700만 원을 들여 홈시어터를 최고급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했다. 한 씨는 “소위 ‘골드미스터’라고 해서 무조건 흥청망청 돈을 쓰는 것은 아니다”라며 “누구보다 미래를 치밀하게 계획하되, 나이가 지금보다 더 들어서도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에만 과감하게 소비를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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