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구 (주)창구식품 대표
단단한 돼지 창자가 감싸고 있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소. 투박한 외형과 달리 쫄깃하고 고소한 맛으로 널리 사랑받는 순대는 대표적인 내유외강형 음식이다. 20대에 남대문 액세서리 판매상으로 처음 사업을 시작해 숱한 실패와 좌절 끝에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순댓국 프랜차이즈로 연 매출 100억 원을 바라보는 강창구(46) (주)창구식품 대표는 이러한 순대의 습성을 빼닮았다. 강창구 대표는…1970년생. 연세대 경영대학원
FCEO 과정 졸업
제9대 청동라이온스클럽 회장
(사)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이사
(주)창구F&C 및 (주)창구식품 대표이사(현)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에 위치한 (주)창구에프앤씨 본사 사무실을 찾아가는 길. 구리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강창구찹쌀진순대 본점 쪽으로 가 달라”고 하자 택시기사는 “거기 국물 맛은 알아준다”, “구리 사람들은 강창구 순대 하면 다 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후 2시, 점심때가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본점에는 식사하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국내, 해외에 40여 개 프랜차이즈를 둔 강창구찹쌀진순대는 수택동 본점에서만 7000원짜리 순댓국이 하루에 2000그릇 이상 팔려나간다. 외식업이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서도 창업 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남대문에서 액세서리 판매상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 15년, 성공과 실패를 밥 먹듯 반복했다는 강창구 창구식품 대표는 “한낱 장사꾼이 아닌 기업가로서 변화의 길목에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100만 원 종자돈이라도 생기면 사업 궁리한 ‘천상 장사꾼’
‘남자라면 리더가 돼야 한다’는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강 대표는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내내 사업가로서의 미래를 꿈꿨다. 대학에서 토목과를 전공했지만, 공부보다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 버는 법을 익혔다. “슈퍼마켓, 카센터, 자동차 정비업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죠. 단 몇백만 원이라도 종자돈이 생기면 사업할 궁리를 했습니다. 그땐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웃음)”
결혼 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기 위해 광주에서 서울로 온 강 대표는 남대문 시장에서 아내와 액세서리 사업을 시작했다. 솜씨 있는 아내가 액세서리를 만들면 장사 수완이 좋은 그가 판매를 맡았다. 아기자기한 수제 액세서리는 바로 입소문이 났고, 이들은 ‘남대문시장에서 장사 잘 하는 젊은 부부’로 통했다.
“4500원 들여 만들어 7만 원에 팔았으니 마진이 대단했죠. 당시엔 저렴한 가격이 아니었는데도 사업이 꽤 잘 됐습니다. 4~5년 정도 지나자 전국 도소매 매장에서 수억 원씩 주문이 들어오더군요. 그런 시절이 영원할 줄만 알았는데 그때 외환위기가 터졌습니다.”
불경기에 액세서리 소비는 뚝 떨어졌고, 그 많던 거래처도 모두 끊겨 결국엔 장사를 접어야 했다. 액세서리 사업에 실패한 후 그는 남대문에서 장사하던 시절에 알고 지낸 지인을 찾아갔다. 음식도 맛있고 장사도 잘 돼 평소 눈여겨보던 삼겹살 전문점 사장에게 500만 원 정도를 주고 기술을 전수받기로 했다. 있는 돈 없는 돈 털어 신림동에 가게까지 얻었건만,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든다.
“이 양반이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는 겁니다. 기술을 전수받아 가게 문만 열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청천벽력이었죠. 암 투병 중인 아버지 치료비도 못 대는 상황에서 여기저기 돈 끌어모아 하려고 했던 일이 틀어져 버리니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결국 다른 삼겹살 프랜차이즈로 개업을 했지만 뜻한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힘들었다. 결국 2년 후 전셋집 보증금까지 다 날리고 길거리로 나앉게 됐다. 강 대표는 아내와 가게에서 생활했고,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양육을 부탁했다.
“누가 나를 차로 쳐 보험금이라도 받았으면 했습니다. 나쁜 마음을 먹고 영동대교를 서성이다 우연히 근처에서 순댓국 한 그릇을 먹었죠. 아, 진짜 눈물 나는 맛입디다. 뭔가 음식이 나를 위로하는 것 같은 묘한 느낌도 들고. 그 순간에도 이걸 팔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참 저도 사업가 기질을 타고났지요.(웃음)”
부부는 마지막 젖 먹던 힘을 다해 순댓국집을 열었다. 후미진 뒷골목에서 먹는 순댓국이 아니라 깨끗하고 건강한 순댓국을 팔자고 결심했다. 24시간 영업하며 365일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열었다. 2004년부터 4~5년 동안 ‘휴식’이라는 단어는 부부에게 없었다.
“사업의 경쟁력은 절박함에서 나온다는 걸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구리 쪽은 서울 강남처럼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없었죠. 야간 수요가 있겠다 싶어서 무리하게 야간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손님들이 음식이 맛없다고 해서 가게를 아내에게 맡겨놓고 저는 전국 순댓국집을 돌아다니면서 비법을 전수받았어요. 제 전공이 몸으로 뛰는 것 아니겠습니까.”
낮에는 다른 순댓국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틈틈이 자신만의 메뉴를 개발했다. 당시 전국을 다니면서 먹었던 수백 종류의 순댓국들은 지금 강창구찹쌀진순대의 음식 맛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는 진하면서도 시원한 육수를 만들기 위해 10여 년의 시간을 쏟아 부었다. 손님들의 다양한 기호에 맞춰 김치, 백년초, 솔잎 등을 넣은 수십 가지 순대를 만들었고 지금은 그중에서도 반응이 좋은 찹쌀·피·두부 순대만 판매하고 있다.
“맛있다는 소문이 나자 가맹점을 열게 해달라는 손님들도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어요. 먼저 가게 이름을 ‘강창구찹쌀진순대’로 변경하고 가맹 체계를 갖추기 위해 ‘(주)창구식품’을 만들었습니다. 남대문 시절 잘나가던 것을 믿고 혁신하지 않았던 것, 장사가 잘될 때 거만했던 것, 삼겹살 프랜차이즈를 하면서 본사의 횡포로 힘들었던 기억 등을 되짚으면서 또다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죠.”
순댓국 전 세계서 먹는 대표 한식 만들고파
강창구찹쌀진순대는 현재 전국적으로 40개의 가맹점이 있으며, 2013년에는 베트남에도 2개의 매장을 오픈했다. 2015년에는 이미 10개의 가맹점 계약이 완료되었고, 추가로 가맹점 개설과 관련하여 꾸준한 문의가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강 대표는 프랜차이즈사업을 하는 창구 F&C와 식자재 유통을 담당하는 창구식품으로 연 1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는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가맹사업을 시작한 지 5년째가 되는 2015년와 2016년에 본격적인 승부수를 던진다는 복안이다. 최근 문을 연 매장들은 모던한 인테리어로 고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중장년층은 물론 10대, 20대 젊은 층들도 유입하겠다는 전략이 적중했다. 해외 진출에 대한 목표도 뚜렷하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인해 돼지 부산물을 수출할 수 있는 기회도 호재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몇 년 안으로 중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청사진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와 식문화가 비슷한 동남아시아 지역과 달리 서양은 소나 돼지 창자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어, 소시지 외피로 만든 순대 등 색다른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100년 뒤에는 순댓국을 세계인이 즐겨 먹는 한식으로 만드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강 대표는 10년 넘게 복싱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구리시장배 권투제에서 3위에 오를 정도로 실력도 쟁쟁하다. 복싱만큼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배포를 키워주는 운동도 없다는 게 그의 설명. 점심시간이 끝나고 녹초가 된 상태에서도 체육관만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에너지가 솟는다. 2~3시간 정도 스파링하고 샌드백 치고 씻고 돌아오면 피로가 풀리면서 스트레스도 달아난다. 그는 “복싱을 하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지독한 근성을 배운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강 대표에게 또다시 실패할까 봐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도전한 후 실패하는 것이 무섭기보다는 여기에서 안주하고 멈추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변화하지 않고 매일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실패요? 별로 겁나지 않아요(웃음).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게 지금껏 장사꾼으로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요.”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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