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와 전주는 최근 몇 년간 국내 여행지 가운데 주류로 우뚝 섰다. 크지 않은 도시, 그러나 구석구석에 숨겨진 보석 같은 매력들이 관광객의 시선과 발걸음을 그곳에 머물게 한다. 경주와 전주에 각각 거주하며 그 지역을 누구보다 잘 아는 두 명의 여행작가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낯선 여행지로 안내한다.
오목대에서 바라본 전주 한옥마을 전경
오목대에서 바라본 전주 한옥마을 전경
맛있는 주전부리와 호젓한 산책길
전주 한옥마을의 재발견

비 오는 날 마루 끝에 앉아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이 그리울 때, 아궁이 잔불 속에 묻어두었던 고구마를 꺼내어 ‘호호’ 불어가며 껍질을 벗겨주시던 어머니가 그리울 때,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무언가 아쉬움이 남고 옛 정서들이 그리워질 때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떠올리는지도 모르겠다. 도시 속에 옛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전주. 어쩌면 사람들은 고향 같은 곳이 그리워 전주를 찾고, 맛을 찾고, 옛 흔적들을 찾게 되는지도….

전주 여행지에서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한옥마을은 한옥이 700여 채 정도가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성곽을 헐고 일본 상인들이 성 안에 들어오자 반발했던 전주 사람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고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는데, 지금도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태조로 시작점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전동성당, 왼쪽에는 경기전이 마주하고 있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천주교를 탄압했던 주역들의 터전이라 할 수 있다고 보면 전동성당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옥마을에 들어서서 태조로 시작점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그곳에 너무나 예쁜 전동성당이 한눈에 보인다.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 만큼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곳 중에 하나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 외관을 따라 성당을 타박타박 걸어본다. 은은한 벽돌색 때문인가 괜스레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전동성당을 나와 마주하고 있는 경기전으로 향했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곳이지만 특히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경기전은 기와 사이로 오래된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산책을 하듯 가족들이, 연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 즉 어진을 모시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에 지어진 건물로 세종 때 ‘경기전’이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산책하기 좋은 경기전.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산책하기 좋은 경기전.
완자꼬치·구운 치즈 먹고 향교길 산책
타박타박 태조로를 중심으로 걷다 보니 길거리 음식이 즐비하다. 그중에 떡갈비 완자꼬치가 눈에 들어왔다. 주전부리로 먹어볼까. 출출하던 참에 떡갈비 완자꼬치 하나를 먹으니 고소하고 담백한 떡갈비에 부드러운 소스가 더해져 씹을수록 육즙이 느껴졌다. 맥주 생각이 절로 났다. 하지만 이대로 배를 채울 수는 없어서 타박타박 또 걸어본다. 이번에 눈에 보이는 것은 문어꼬치. TV 방송을 타면서 더욱 유명해져 주말에는 사 먹으려는 여행객들로 줄지어 서 있다. 삶은 문어를 구워 소스를 바르고 가츠오를 뿌려주는 것인데 문어가 좀 질긴 느낌이 든다. 질긴 문어를 씹으며 건너편으로 가자 이번에는 구운 치즈가 보였다. 불판에 치즈를 노릇노릇 구워내어 요플레를 뿌려주는데 짭조름하면서 쫄깃했다. 느끼해서 많이는 먹지 못할 것 같고 가볍게 주전부리로 먹기엔 좋다.

주전부리로 배를 채우고 소곤소곤 향교길을 걸어본다.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가장 온전하게 보존된 곳이라고 한다. 400여 년 정도 된 은행나무가 대성전과 명륜당 넓은 뜰에 각각 두 그루씩 있는데 단풍이 들면 바닥이 온통 노란 물결로 눈이 부시다. 겨울이 돼서 앙상한 가지만 남았지만 은행나무는 벌레가 먹지 않고 오래오래 살 수 있는 나무라 유생들도 건전하게 자라 바른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향교에 많이 식재돼 있다고 한다. 옛 조상의 기상과 전통을 느끼며 사색하기에 좋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는 전동성당.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는 전동성당.
향교에서 나와 오목대에 올라본다. 한옥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한옥마을 관광안내소에서 태조로를 따라 오른쪽에 위치한 오목대는, 고려 말 우왕 때 태조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개경 개선길에 들러 종친들을 모아 잔치를 벌이면서 중국 한나라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를 읊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동행했던 포은 정몽주와 갈라서게 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오목대까지 올라가는 길은 여러 곳이 있지만 어느 곳에 올라서든 뒤돌아보면 한옥마을의 기와가 내려다보인다. 한옥 기와가 겹을 이루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즈넉해진다. 고풍스러운 한옥은 낯설지만 익숙해 편안하고 아늑함을 주는 듯하다. 여름날에는 처마 위로 휘영청 뜬 밝은 달을 보며 수박이나 옥수수 같은 간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에 충분하고, 겨울날에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전통 차와 화롯불에 고구마나 알밤을 구워 먹는 즐거움은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동락원, 학인당 등 9곳에서 한옥숙박체험을 할 수 있는데, 한옥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일반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 및 게스트하우스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덕진공원의 연꽃.
덕진공원의 연꽃.
한옥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카페가 있어 그곳을 찾아갔다. 오목대와 리베라호텔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전망’이라는 카페는 이름답게 한옥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예쁜 전망을 갖고 있었다. 4층과 5층을 사용하고 있으며 큰 통 유리창의 인테리어로 밖의 한옥마을 기와지붕과 옆으로는 오목대의 풍경도 함께 볼 수 있다. 삼면이 큰 유리창으로 돼 있어 햇살이 카페 안으로 가득 들어와 눈이 부셨다. 게스트하우스도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한옥마을 골목골목을 돌아봤다면 따뜻한 차를 마시며 ‘전망’에서 한옥마을 전망을 내려다보는 것도 꽤 운치 있는 여행길이 될 것이다.
전주 향교 골목길.
전주 향교 골목길.
한옥마을 이외에도 연꽃이 가득 피어나는 6월에는 덕진공원을 꼭 들러봐야 한다. ‘덕진채련(德津採蓮: 덕진연못에 핀 연꽃의 모습)’이라 해 전주 8경 중 하나로 꼽힌 만큼 이곳의 연꽃은 그 아름다움과 풍경이 뛰어나다. 오리배가 둥둥 떠 있는 덕진공원을 보면 어쩐지 낯설지만 익숙한 풍경이 그곳에 있다. 공원 앞 나무숲은 어르신들의 쉼터가 되고 여름이면 음악분수를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활기가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전주의 여행길이 만약 4월이거나 5월이라면 꼭 들러보라 권하고 싶은 곳이 있다. 개인이 30년 이상 가꾸어 온 철쭉 군락지를 전주시가 매입해 영산홍, 자산홍, 백철쭉 등 철쭉류와 왕벚나무 등을 재정비해 아름다운 산책길을 조성한 완산칠봉이다. 멀리서 봤을 땐 그런 곳이 있을까 싶은 곳에 들어서면 온통 꽃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꽃을 좋아하는 동네 어르신들은 팔각정에 모여 앉아 꽃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연인들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발걸음마저 묶어 놓을 만큼 그 꽃들이 어마어마하다.
한옥마을의 주전부리, 구워먹는 치즈
한옥마을의 주전부리, 구워먹는 치즈
전주는 작은 도시이지만 어쩌면 시골에 더 가까운 모습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살고 있는 그 자체를 보여주고 삶 속에서의 소소하고 편안한 풍경을 보여주는 도시. 도시 생활에서 쌓인 피로를 풀어주고, 숨 가쁘게 달려왔던 시간을 잠시 내려두고 느리게 호흡하며 타박타박 걸을 수 있는 전주의 매력에 다시 또 전주를 찾게 되는 건 아닐까.


교통편 서울에서 전주까지 10분 간격으로 고속버스가 운행된다. 동서울종합터미널, 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탑승. 전주고속버스터미널 하차. 소요시간은 약 2시간 40분이다. 부산에서는 1시간에서 1시간 30분 간격으로 고속버스가 운행되며 약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전주역에 서는 고속철도(KTX)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시간표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먹을거리
조점례 순대국밥 남부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조점례 남문 피순대.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에 곁들여 나온 부추 겉절이를 넣어 먹으면 더욱 깔끔하고 개운한 순대국밥을 맛볼 수 있다. 전주시 완산구 전동 3가 2-198(063-232-5006)

왱이 콩나물국밥 식사 때는 물론이며 해장하러 오는 사람들로 늘 붐비는 왱이 콩나물국밥집은 펄펄 끓는 육수에 싱싱한 콩나물이 듬뿍 담겨 나온다.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 2가 12-1(063-287-6980)

양반가 한옥마을 대표 한식집 양반가는 각종 상견례는 물론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즈넉한 한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며, 음식 또한 정갈하고 깨끗하다.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 1가 12-1(063-288-4853)

다문 저렴한 가격에 한정식을 맛볼 수 있는 다문은 한옥마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20여 가지 밑반찬과 청국장, 고기수육으로 한 상 가득 차려진다. 주말이나 식사 때는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전주시 완산구 교동 82(063-288-8607)

전일슈퍼 가맥이란 가게 맥주의 준말로 가게에서 판매하는 가격에 안주를 즐겨 먹을 수 있는 술 문화의 하나로 전주만의 독특한 풍속 중 하나다. 눈앞에서 구워주는 갑오징어나 황태에 따라 나오는 소스는 청양고추와 통깨가루가 들어 있어 달달하면서 고소한 맛이 특징. 자꾸만 맥주를 마시게 한다.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 3가 13-12(063-284-0793)
해질녘 보문호수.
해질녘 보문호수.
찬란한 숲길과 안온한 왕릉
‘수학여행지’ 아닌 경주의 진짜 속살
경주는 대표적인 수학여행 장소였다. 해마다 다른 학생들이 같은 학년의 명찰을 달고 줄지어 이동하다 사진을 찍고 설명을 듣고 또 줄지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닮은 풍경이 오래오래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 ‘경주’의 개봉으로 다시 혹은 새롭게 찾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경주는 제법 한정된 곳 위주로 나오긴 하나 그곳들의 매력을 참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이후로 능 위는 올라가본 적이 없는데,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올라가서는 안 되는 곳에 올라가 본 밤 풍경이 얼마나 멋있던지 어느 밤엔가 나도 다시 한 번 올라가보고 말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월성 숲으로 들어가는 길.
반월성 숲으로 들어가는 길.
그 후 어느 밤, 결국 사람의 눈을 피해 친구와 달려 올라간 능. 그 밤 능 위에서 경주를 보고 ‘아~’ 하는 소리만 나왔다. 그 밤의 능은 그동안 경주에서 익숙하게 봐 오던 능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더는 흥미를 끌 것이 없을 만큼 익숙하고 가보지 않아도 귀에 또 눈에 익어 조금은 지루한 경주를 나는 그렇게 낯설고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반월성, 비밀의 통로로 다다르는 숲속
유명 관광지인 경주에서도 제법 조용한, 아직은 깃발을 들고 줄 서서 찾는 이 없는 (반)월성 숲 안으로 난 둘레길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이곳에 사는 우리들은 보통 ‘반월성’이라고 부르지만 혹자는 ‘월성’이라고도 하는 이곳으로 가는 길은 세 갈래다. 계림 앞에서 아치형으로 무성하게 자란 나무 사이 길로 갈 수도 있고, 안압지에서 길을 건너 비스듬하게 쌓인 돌계단을 통해 갈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출입구는 사라지기 좋은, 비밀스러운 길로 월정교 뒤편으로 얕게 흐르는 개천의 넙적한 징검다리를 건너 길이 아닌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어느 봄,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이랬던가 싶을 만큼 찬란하던 천 앞에 서 있다가 먼저 돌다리를 건너던 두 사람이 벚나무 사이로 홀연히 사라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이 신비하게 남아 나도 그 길로 반월성 숲으로 들어갈 때엔 보고 있는 누군가가 없는지 한 번 괜히 뒤를 돌아보곤 한다. “난 이제 여기서 사라질 거야”라고 속삭이며.
[TRAVEL BUCKET LIST] 익숙한 곳, 낯선 여행 전주·경주
그 마지막 비밀의 통로로 올라가면 입구도 출구도 아닌 숲속으로 불쑥 들어서게 된다. 월성의 양쪽 입구에 크게 나있는 흙길은 너르게 펼쳐진 잔디밭과 나뭇잎 무성한 고목들, 뒤로 겹겹이 쌓인 숲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큰 길을 통해 앞으로 쭉 걸어가곤 하지만 숲을 향해 안쪽으로 둘러 걸어가고자 한다면 멀리서 보던 고목 아래에서 고목이 바라보는 풍경을 볼 수 있고, 숲 뒤로 또 높낮이가 다르게 펼쳐진 들판을 만날 수가 있다.

그렇게 들어선 숲길 안에서 나무들 사이로 남천을 보고, 지붕이 고른 교촌을 내려다보고, 아직 복원이 완공되지 못한 월정교를 보고(아직 주변 천막이라든가 공사 가림막이 남아 있지만 곧게 뻗어 기와를 얹은 긴 다리는 미완성일지라도 자꾸 바라보게 된다), 혹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러다 건너편 박물관에서 들려오는 선덕여왕의 에밀레종의 소리를 듣고는 갑자기 아까까지 여기였던 곳이 어딘가 낯설어진 숲이 된다.

한창 걷다 돌아나가는 길을 못 찾아도 어디로든 가로질러 가면 그만이다. 그러다 석빙고와 마주칠 수도 있고, 작은 정자에 앉아 계실 어른을 볼 수도 있고, 오목하게 파인 비탈을 따라 내려가면 개천의 넙적한 바위에 우뚝 설 수도 있다. 진평왕릉 역시 경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다. 진평왕릉으로 가기 위해 월성에서 보문 방향으로 이동한다. 가끔 경주가 고향인 친구들의 부모님들께서도 “그런 곳이 있느냐”고 하신다. 아는 이들은 잘 알고 아끼고 모르는 이들은 또 모르는 곳, 진평왕릉.
사색하기 좋은 진평왕릉.
사색하기 좋은 진평왕릉.
보문으로 향하다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곳인데 왼쪽에는 전원주택과 펜션으로 이루어진 마을이 고르게 있어 골목을 걸어 다니면 멋진 한옥도 여러 채 볼 수 있다. 마을의 길 건너편에 진평왕릉이 있는데, 몇 해 전 나의 이모는 해질녘 진평왕릉이 그렇게 좋다고 데려가기 전부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다. 과연 듣던 대로 조용하고 안온하고, 사시사철 언제 가도 푸근한 느낌의 장소다.

언제 가도 사람이 별로 없는 진평왕릉에서는 각자 고개를 숙이고 한참 네잎클로버를 찾기도 하고, 왕릉 아래 슬쩍 기대 누워 왼편 멀리로 나지막하게 보이는 선덕여왕릉도 바라본다. 초저녁 산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볼 때는 말이 없어지며 그리운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다시 발걸음을 보문으로 돌린다. 이번에도 모두 잘 아는 보문단지 안쪽이 아니라 살짝 길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길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 굽이굽이 찾아 들어가야 한다. ‘이 길이 맞나’, ‘정말 이 길이 맞나’ 하고 두어 번 의심하며 마지막으로 경사 심한 내리막을 내려가서야 ‘저기구나’ 하며 종오정에 도착한다. 종오정은 오래전 지어진 전통한옥으로, 정원이 아주 멋진 곳이다. 훌륭한 정원을 가진 만큼 사계절 언제나 방문해도 좋을 테지만 첫 번째로는 정원 가득 배롱나무 꽃과 연꽃이 활짝 피는 여름, 두 번째로는 겨울의 향나무와 쓸쓸한 풍경이 어쩐지 사색하게 하는 겨울에 올 것을 추천한다.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에 학자 최치덕의 제자들이 학문을 갈고 닦기 위해 지어진 곳인데 잘 보존된 고택으로 남아 지금은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로도 사용되고 있어 산속에 둘러싸인 곳에서 조용한 여행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숙소를 이용하지 않아도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바라보기에도 좋은 곳이다.
경주의 별미 푸짐한 회덮밥.
경주의 별미 푸짐한 회덮밥.
노란빛 가득한 도리마을
도리마을은 경주가 고향인 나도 최근에야 알게 된 곳이다. 서면에 위치한 은행나무숲 도리마을은 숲이라고 하기엔 그 면적이 좁은 편이지만 마르고 키가 큰, 빼곡한 은행나무들 사이에 서 있으면 아주 넓고 깊은 숲속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계절 풍경이 훌륭하지만 은행잎의 노란빛이 절정인 가을이 유난히 더 좋은데, 그중에서도 해가 저물기 시작할 때 길게 뻗어 내리는 은행나무의 그림자들과 바닥을 가득 메운 은행잎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도리마을의 은행나무 숲은 공원이 아닌 개인의 사유지이기 때문에 좀 더 조용히 살피며 걷는 것이 좋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는 몇 대 없는 버스라 시간을 잘 맞춰야 하니 오가기가 힘들고, 개인 자가용이나 렌트카를 이용하는 편을 추천한다.


교통편
경주로 오는 고속철도(KTX)가 개통되면서 신경주역을 이용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KTX는 편리하지만 경주 시내로 들어오려면 버스를 한 번 더 타야 하고, 가까운 곳에서의 출발이라면 무궁화호를 이용해 시내 가까이에 있는 경주역이나 버스를 타고 시외·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는 것도 편리하다. 첨성대를 비롯한 천마총, 계림, 월성, 교촌마을, 안압지, 분황사 등의 관광지는 모두 경주 시내와 인접해 모여 있기 때문에 지도를 보며 시간이 조금 걸려도 걷는 것을 추천한다. 10, 11번 버스를 타면 보문단지나 남산, 불국사 방면으로 쉽게 갈 수 있지만 더 멀리는 자가용이나 렌트카를 추천한다.


먹을거리
명동쫄면·원조콩국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이려면 시내에서 가볍고 따끈한 국물쫄면 ‘명동쫄면’도 좋고, 천마총 가까이 ‘원조콩국’의 따뜻한 콩국도 추천한다. 1~3번까지 세 가지 레시피의 콩국이 있어 입맛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다. 명동쫄면 경북 경주시 황남동 142-2(054-743-9644), 원조콩국 경북 경주시 노동동 80-8(054-743-5310)

용산회식당 메뉴는 회덮밥 하나뿐인데 아침부터 점심 장사까지만 해서 직장인들도 찾아오기 때문에 조금 늦게 가면 줄을 서야 한다. 푸짐한 회덮밥의 맛이 일품. 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610-3(054-748-2119)


기획 이윤경 기자 | 글·사진 경주=조안빈 여행작가, 전주=이지예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