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환 AJ네트웍스 인사교육 총괄 고문

조영환 AJ네트웍스 인사교육 총괄 고문은 삼성 출신으로 ‘삼성 출신 CEO는 왜 강한가’ 등 6권의 책을 낸 저술가다. 2010년 삼성화재 상무로 퇴임한 그는 한때 연중 150일간 골프장으로 향했던 골프 마니아다. 그의 저서 ‘멋지게 나이 들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그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Mad about Golf] 삼성 출신 골퍼의 멋지게 나이 들기
조영환 AJ네트웍스 인사교육 총괄 고문(59)은 삼성에서만 26여 년을 일한 삼성맨이다. 재직 기간의 대부분을 인사 분야에 몸담았던 인사·교육 전문가다. 삼성화재 강서사업부장를 끝으로 삼성에서 나온 해가 2010년. 55세에 자연인이 된 그는 하루의 반은 책 쓰고 강의하는 데 썼고 나머지 반은 골프에 할애했다. 5년 가까이 연 150일 이상 필드로 나갔다. 그때는 직업이 골퍼라고 할 정도로 원 없이 즐겼다.


왼손잡이 골퍼의 설움
지금이야 보기 플레이어 수준이지만 그때는 싱글이었다. 골프에 관한 한 할 말 참 많은 그이지만, 입문은 남들보다 늦었다. 테니스, 탁구, 야구 등 자타가 공인하는 만능 스포츠맨이지만 골프 입문이 늦었던 것은 왼손잡이라는 이유가 컸다. 대부분의 골퍼들이 오른손잡이라 골프에서 왼손잡이는 장애우에 가깝다. 클럽도 드물고 연습장에서도 왼손잡이가 설 곳은 별로 없다.

당시만 해도 왼손잡이용 드라이버 1개면 오른손잡이용은 500개가 들어오던 때였다. 왼손잡이 여자 골퍼는 아예 없고, 남자도 찾기 어려웠다. 오죽하면 그를 포함한 몇몇이 모여 왼손잡이 골퍼들 모임을 만들 정도. 캐나다 출신 왼손 골퍼 마이크 웨어가 한국프로골프(KPGA)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는 그 모임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공항에 환영을 나가기도 했다.

“동호회에서 골프대회도 하는데 대회 이름이 ‘장애인 골프대회’입니다. 골프에서는 왼손잡이가 장애우거든요. 왼손잡이 4명이 한 조로 골프를 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세요. 파3 홀은 그린에서 티 그라운드가 보이잖아요. 첫 번째 골퍼가 그라운드에 서면 ‘저기 왼손잡이가 있네’ 그래요. 두 번째, 세 번째 반대편에 서면 고개를 갸웃합니다. 마지막까지 반대편에 서면 자기가 잘못 봤다고 생각해요.(웃음) 그 정도로 한국에선 왼손잡이 골퍼가 드물어요.”

그런 탓에 그는 45세에 임원이 된 후에야 골프클럽을 처음 잡았다. 삼성화재 수원대지점장을 할 때였는데 임원 골프대회에 나오라고 해 어쩔 수 없이 골프를 시작했다. 어렵게 시작했지만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첫 라운드에서 103타를 쳐 ‘골프 신동’ 소리를 들었다. 그게 문제였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연습을 게을리했다. 골프가 늘 리가 없었다. 그의 표현대로 ‘1년 돼도 10년 된 듯하고, 10년 돼도 1년 된 듯’했다.

오랫동안 그 실력을 유지하던 그는 어느 순간 안 되겠다 싶어서 독을 품고 레슨을 받았다. 2년여를 그렇게 연습하자 80대 초반까지 스코어가 줄었다. 연습을 하니 센스가 생겨서 어프로치가 됐고, 퍼트에 따라 파 아니면 보기를 기록하게 됐다. 하지만 주말 골퍼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골프장에선 본색을 드러내는 삼성 임원들
싱글 골퍼가 된 건 회사를 그만두고 제대로 골프를 즐기면서부터. 삼성에서 나왔을 때 여기 저기 오라는 데도 있었지만 ‘이제는 인생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에 5년 가까이 야인생활을 했다. 그때 원 없이 골프를 쳤다. 골프를 직업으로 삼으면서 느낀 점도 많다. 먼저 잘 치려고 할수록 스코어가 더 떨어진다는 점이다. 오히려 술 마시고 난 다음 날이 스코어가 더 좋을 때가 있다. 그는 “오늘은 즐기면서 치자고 하면 스코어 잘 났다”고 했다.

“골프는 당구랑 비슷해요. 제가 당구 300점을 칩니다. 당구 300점 이상이면 골프도 싱글인 경우가 많아요. 당구가 150점이면 골프도 90대 수준이고요. 운동이란 게 비슷한 점이 많아요. 힘에 대한 배분, 집중력, 공에 대한 센스 등 실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유사하거든요.”

생애 최저 타는 2010년 기록한 74타. 버디 4개, 보기 6개를 기록했다. 그때만 해도 열심히 골프를 칠 때라 드라이버 비거리가 240~250m 나갔다. 드라이버 거리가 나자 편하게 골프를 칠 수 있었다. 세컨드 샷에서 그린에 올린 후 퍼트가 들어가면 버디, 2퍼트면 파였다. 실수로 3퍼트를 하면 보기. 그때는 골프가 참 쉬웠다.

주로 찾는 골프장은 신라컨트리클럽(CC), 포레스트힐CC, 엘리시안강촌CC 등 회원권이 있는 곳이다. 수도권에서 떨어진 퍼블릭CC 중에 그린피가 6만~7만 원 하는 곳도 있어 그런 곳도 가끔 찾는다. 한때는 공군에서 운영하는 골프장도 자주 갔다. 공군 인사장교 출신인 그는 공군 골프회 모임의 회장을 맡기도 했는데, 공군 장교회 이사로 등록되면 골프장을 4만2000원에 사용할 수 있다. 주중에는 이용객도 많지 않아서 한동안 자주 다녔다.

가장 많이 간 곳은 삼성에서 운영하는 가평 베네스트CC.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가평 베네스트는 ‘드라이버는 호쾌하게, 아이언은 정교하게’라는 골프의 정석을 잘 살린 곳이다. 드라이버 샷이 떨어지는 곳은 페어웨이가 넓고, 그린 주변에는 벙커가 많은 게 특징이다.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지지만 익숙해지면 스코어가 잘 나는 게 가평 베네스트CC다.

전 직장동료나 친구들이 라운드의 주요 멤버다. 가끔 친선대회도 나간다. 삼성그룹 퇴직 임원들의 모임인 성원회 주최 골프대회도 그중 하나다. 2년 전 퇴직 임원 100여 명이 모인 골프대회에서는 80타를 기록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롱기스트상도 수차례 받았다.

“재밌는 사실은요, 삼성 출신 임원들이 일할 때는 FM인데 골프 칠 때는 굉장히 관대하다는 점입니다. 삼성 내에 일본 출신 고문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과 너무 대조적이에요. 그분들은 양파도 없이 10타 치면 10타를 다 적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첫 홀 올 파는 기본이고 멀리건도 잘 주고 퍼트도 웬만한 거리면 오케이를 줘요. 삼성 임원 대회에서 80타를 쳤다고 하면 85타 이상 쳤다고 보면 됩니다. 다른 건 철저하게 기본에 충실한데 골프는 안 그래요. 아마 직장 내에서 억제된 게 회사 밖에서는 표출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생애 최저 타는 2010년 기록한 74타. 버디 4개, 보기 6개를 기록했다.
생애 최저 타는 2010년 기록한 74타. 버디 4개, 보기 6개를 기록했다.
아내·두 아들과 한 팀으로 라운드 즐겨
요즘에는 약사인 아내와 동반할 때가 잦아졌다. 그보다 먼저 골프를 시작한 아내의 실력도 수준급이다. 몇 년 전만 해도 80대 초반을 치던 아내는 그가 옆에서 코치를 하면 “너나 잘 하라”고 지청구를 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아내가 골프를 하니까 부부끼리 라운드를 할 때도 있다. 한 번은 이름이 같은 후배 부부와 필드에 나갔는데, 아내들 이름까지 같아 라운드 내내 캐디가 힘들어했다. 옷도 같고 자동차까지 같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의사와 약사인 두 아들도 골프 멤버다. 자신이 늦게 골프를 시작한 탓에 아이들은 빨리 골프를 가르쳤다. 특히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배우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골프를 시켰다. 지금은 아내, 두 아들과 4명이 한 팀이 돼 골프를 친다. 1년에 한두 번은 제주도로 골프 여행을 가기도 한다. 그럴 때 가족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보는 이들에게 “잘났다”는 원성을 사기도 한다고 그는 웃었다.

유명 골퍼와도 가끔 라운드를 하는데, 배경은 프로가 그다. 수양딸인 배 프로는 그가 삼성화재 수원대지점장 재직 시절, 배 프로의 어머니가 지점 생활설계사로 일한 게 인연이 돼 지금까지 만난다. 당시는 배 프로의 어머니가 어렵게 번 돈으로 골프를 시키던 때였다. 그걸 본 그가 수양딸 삼아 밥도 사주고 옷도 사주며 도움을 줬다. 2005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상금왕이 되고 미국에 진출해 성공한 후에도 배 프로는 “아빠, 아빠” 하며 그를 따른다. 그는 도와준 게 1이면 받은 게 10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가장 어려울 때 도와준 그에게 항상 감사해한다고 말한다.


골프는 건강과 재미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레저
최근 그는 AJ네트웍스 인사교육 총괄 고문 자리를 맡았다.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PGA(평일 골퍼 모임)를 탈퇴한 그는 공군 골프회, 성당 골프회 등의 회장 자리를 내려놨다. 필드에 못 나가는 대신 틈나는 대로 스크린 골프장을 찾는다.

“간단한 내기를 하면서 동료들과 즐겁게 소통하는 것, 그게 골프의 매력 아닐까요. 홀당 1만 원 내기를 해도 잃어야 5만 원 정도거든요. 그게 끝내 아쉬우면 점심 먹으면서 1~2시간 고스톱을 치면 되고요. 4시간 정도 걸으니 건강에도 좋잖아요. 골프는 건강과 재미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레저입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