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국내에 영화 ‘버킷리스트(Bucket List)’가 상영된 이후 버킷 리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버킷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을 말한다. 중세시대에 교수형을 집행할 때, 뒤집어 놓은 양동이(bucket)에 올라간 후 양동이를 걷어찼다고 해서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이 ‘죽는다’는 의미로 쓰이게 됐는데,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는 주인공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한 병실을 쓰게 되면서 죽기 전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만들고 병원을 탈출해 하나씩 실행에 옮긴다. 시한부의 삶일지라도 후회 없이 인생을 살다 가고픈 두 사람의 열망을 담은 이야기다.
우리나라 은퇴자들이 지금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에서 50세 이상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건강, 돈과 생활, 일과 인간관계라는 삶의 3가지 영역에 걸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먼저, ‘건강’에서는 운동으로 체력을 다지지 못한 것, 스트레스 해소법을 익히지 못한 것, 치아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 순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은퇴 후 사회활동을 하고 싶어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후회하는 것이다. 치아건강은 저작(咀嚼)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고 뇌신경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장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중요하다.
‘돈과 생활’에 관련해서는 노후에 쓸 여가 자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것,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여행하지 못한 것 순으로 후회하고 있었고,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은 것, 노후 소득을 준비하기 위해 생애설계를 하지 않은 것도 공동 3위로 꼽혔다. ‘일과 인간관계’에서는 평생 즐길 취미를 만들지 않은 것을 가장 후회하고 있었으며, 자녀와 대화가 부족했던 것, 자녀를 좀 더 사교성 있고 대범하게 키우지 못한 것, 부부간 대화가 부족했던 것 등 주로 가족들과의 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성별로 비교해보면 대체로 남성이 여성들에 비해 후회하는 것들이 많았다. 체력단련, 취미생활, 가족과의 관계에 대한 아쉬움은 여성 은퇴자들과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남녀 간 차이가 두드러진 대목도 있었다. 예를 들면, 남성들은 자녀와의 대화 부족, 자주 웃지 않은 것, 사람들에게 좀 더 상냥하지 못했던 것, 집안일을 익히지 않은 것, 회사 외 내가 있을 곳을 만들어 두지 못한 것, 일탈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 등이 후회하는 것 톱 10에 포함됐다. 반면, 여성 은퇴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후회하는 것은 피부 관리에 소홀했던 것, 대출상환을 못 끝낸 것, 간식을 절제하고 영양 식품을 고루 섭취하지 않은 것 등으로 나타났다.
후회 없는 인생 위해 가족부터 챙기는 마음자세 필수
은퇴 후 후회하는 것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재 내 삶에서 무엇을 우선적으로 챙기고 있는지, 어떤 부분에 삶의 의미를 느끼고 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에서 20세 이상 성인 남녀 1726명에게 현재 삶에서 무엇을 가장 의미 있다고 느끼는지 물었다. 그 결과, 은퇴 여부와 상관없이 현재 삶에서 가장 의미 있게 느끼는 것은 ‘나의 건강’이 1순위였다.
여성은 남성들에 비해 자녀를 현재 삶에서 의미 있게 느끼는 경향이 강하고, 부모님과 종교, 신앙생활에도 큰 의미를 뒀다. 반면, 남성은 여성들에 비해 배우자나 직장생활, 일을 의미 있게 느끼는 편이었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나이가 많을수록 ‘건강’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는 응답이 많았고, 30대는 ‘배우자(또는 연인)’, 40대는 ‘자녀’에 대한 애착이 높게 나타났다. 한편, 40대는 주로 자녀 학령기에 자녀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느꼈지만, 50대 이상은 ‘자녀에게서 삶의 의미를 느낀다’는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떨어졌다. 이들은 오히려 배우자나 일, 사회활동에서 의미를 찾는 경향을 보였다. 다시 말해, 50대 이상 부모세대는 건강하고, 적당히 일하며, 배우자와 잘 사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는 것이다. 반대로 20대는 ‘부모님에게서 삶의 의미를 느낀다’는 응답률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현저하게 높았는데, 이는 학업, 취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부모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한편, 20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취미, 여가생활에서 삶의 의미를 느낀다는 응답이 많아 기성세대와는 다른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줬다. 은퇴자들이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서 이미 은퇴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먼저 챙겨야 할지 돌아볼 수 있고, 은퇴하기 전의 젊은 세대는 노년기를 후회 없이 맞이하기 위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은퇴 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째, 몸과 마음의 건강을 부지런히 살펴야 하며, 규칙적인 자기관리 노력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은 수레의 양 바퀴와 같아서 한쪽이 약해지면 수레 전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중요성을 인식하는 단계를 넘어 매일 적극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둘째, 전문가로부터 생애설계 상담을 받고 노후에 필요한 여가 자금, 연금, 의료비 등 필요한 소득을 미리 예측해서 준비한다. 20~30대 젊은 층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태도를 버리고, 매월 소액이라도 자신의 노후를 위해 꾸준히 적립하는 것이 좋다. 복리효과의 이점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취업과 동시에 생애설계 상담을 받고, 가능한 한 일찍 노후 계획을 세워두면 도움이 된다. 40대는 자녀에 대한 기대심리와 지나친 애착을 줄이고, 본인과 배우자의 노후 생활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미리 계획해본다. 특히, 여성들은 자녀에게 지나치게 몰입하기보다 남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을 찾는 등 남편의 은퇴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좋다.
셋째,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현재를 즐기며 ‘지금’ 제대로 잘 노는 법을 익힌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하고 나면 어딘가로 떠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러나 막상 은퇴해서 여가 시간이 늘면 젊은 시절 한창 바쁠 때 고대하던 만큼 여행의 짜릿함을 느끼지 못한다. 바쁠수록 시간을 쪼개어 가까운 곳이라도 떠나보면 어떨까. 여행을 통해 얻는 휴식의 소중함과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만끽해보자.
마지막으로, 가족과 공감하고 시간을 함께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은퇴자들이 후회하는 것들 톱 10’ 중 상당 부분이 가족과 관련한 것이었다. 부부, 자녀, 부모, 형제자매들과 더 자주 대화하지 못한 것, 원만하게 지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은퇴자들이 많았다. 직장생활과 일에 몰두하다 보면 가족은 으레 다음 순위로 밀리기 쉽다. 그러다 막상 은퇴하고 가정으로 돌아오면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이들도 가족이고, 내 마음에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도 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가족부터 챙기는 마음자세가 필수다.
박지숭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