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는 금융산업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모바일 기술의 대두로 현재 인터넷 기반의 온라인 환경에 가까스로 적응했던 금융기관들이 다시 한 번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12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됐던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핀테크가 금융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집중 논의됐다. WEF 참석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세상의 변화무쌍함은 우리에게도 지속적인 변화와 적응을 요구한다. 2014년 12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됐던 세계경제포럼(WEF)의 주제는 기술혁신, 특히 핀테크(Fintech)라고 불리는 변화가 금융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엄밀히 말해 기존의 패러다임을 흔들 수 있는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 특히 휴대전화에서 구현되는 모바일 기술이 금융산업의 변화촉매제로서 어떻게 구현되는지에 관한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우리나라도 시장 중심의 금융 시스템으로 발전하는 과정이고 ‘천송이 코트’ 사태 이래 간편결제로 전환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어 이러한 선진 금융산업의 움직임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영국의 새로운 금융센터인 카나리 워프(Canary Wharf)는 전통적인 은행 중심의 은행(bank)과 더불어 활발하게 금융에서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물론 근래의 변화는 다양한 실험 차원에서 소개되고 있어 미래 행방을 가늠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모양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관찰되는 작은 변화가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정성껏 다듬어 가는 다양한 시장참여자들의 진지한 자세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종이와 인터넷에 이어 모바일 환경에 본격 진입하면서 금융 서비스도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기 시작했고 실제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벤처기업들이 개발과 논의에 상당수 참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제2의 벤처 붐을 이끌어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백화점식의 개발을 위한 개발에 치중하고 있어 ‘치어’ 양산효과가 크다. 영국과 같이 금융의 도도한 변화 추세와 접목된 시장밀착형 개발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어 ‘창조경제’의 기초를 다지는 데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국의 전통적 주력 산업인 은행들이 핀테크 관련 벤처기업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모습은 타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유로 출현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베를린에 전통적 금융 역량이 일부 이전되긴 했지만, 런던은 민·관 합동으로 미래지향적인 창조적 파괴 과정을 통해 눈에 띄는 활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국 은행, 핀테크 관련 중소기업 적극 지원
어찌 보면 핀테크는 결제와 송금, 자금조달, 대출, 자산 운용, 보험 및 연기금 등 일련의 금융 서비스를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하게 소비자 밀착형(P2P·O2O)으로 공급하는 기술적 변화로 총칭한다. 새로운 형태의 금융자산과 비트코인 등 전자화폐의 새로운 개념에 대한 논의도 전개됐다. 물론 에쿼티 크라우드 펀딩(Equity Crowd Funding)이나 핀테크 스타트업(Fintech Startup)+거대 은행 등 다양한 펀딩과 포맷의 협력 관계가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다. 그렇다고 금융의 근간이 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은행들의 예금 수취에서부터 대출 전반의 과정은 보다 투명해졌고 영국의 경우보다 효율적인 이원화 감독체제로 관리되고 있다. 기술벤처가 금융 서비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다수에게 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는 가운데 은행들은 이들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려는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금융회사들과 비금융회사들 간의 다양한 협업 관계는 양분화되기 쉬운 생태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바클레이스 액셀러레이터(Barclays Accelerator)는 수십 개의 벤처들을 지원, 육성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기술과 상품을 끊임없이 테스트하는 별도의 사업부를 운영하고 있었다. 일견 혁신적 기술발전은 전통적인 은행 업무, 특히 예대마진에 의존한 수익 기반을 저해하는 위협요인이지만 보다 큰 그림 아래 협업체계를 일찌감치 구성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은 각자의 이전투구식 생존경쟁에 익숙한 우리 환경에서 부러운 부분임에 틀림없다. 즉, 환경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파이를 지키는 일은 새로운 기술벤처와의 협업 체계를 일찌감치 구성해 파이를 키워가는 것임을 시사한다.

우리 경제의 문제는 개별적 경쟁력이라기보다는 상부하달식의 문화적 장벽이 높기 때문에 환경적 폐쇄성과 단기적 성과주의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있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도 거대 시장에 적용될 수 있는 플랫폼이 없다면 다른 곳으로 싼값에 팔려나갈 수밖에 없다.

전체를 보기 힘든 우리의 생태계와 사일로(silo)식 상부지배구조로 인해 아까운 잠재력이 크지 못하고 팔려가거나 사장되기 일쑤다. 외부와, 그리고 우리끼리조차 단절된 생태계에서는 고부가가치가 생성되기는 어렵다. 민간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고 역량을 키우려면 현재와 같은 어설픈 나열식 규제 환경은 변해야 한다. 물론 시장 혼란을 감내할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과감한 환경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영국과 같이 차분히 긴 안목을 가지고 생태계를 조성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핀테크와 같이 공동의 주제를 중심으로 산재된 역량을 집중시키는 노력이 아쉽다. 과거와 같이 질적 변화 없이 가시적 성과만 추구하면 선진 경제 도약에 필수적인 시스템 구축을 놓치기 쉽다.

최근 국내 전자금융결제의 편의성 저하 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전자상거래 결제 간편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카드 거래 시 공인인증서 등의 사용 의무 폐지, 결제대행업체(PG)의 카드 결제정보 보유 허용, 사전 인증의 사후 확인으로의 전환 등 전자금융 보안 정책의 대폭적인 변화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안전성을 보장한 결제의 편의성이 제고될 수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문제를 보완하는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다.

템스 강의 폐쇄된 부두를 최첨단 금융의 메카로 변화시키는 장기적 안목과 전략적 계획은 선진경제만이 누릴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도 보다 장기적인 계획과 큰 그림하에서 정권 교체와 상관없는 민간 주도의 노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정부 스스로 단기 업적에 매몰되지 말고 민간의 노력이 큰 결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특히 금융 분야의 핵심인 금융기관, 그중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역할을 못 하면 현 법·규제 체계하에서 통제 불가능한 혼란을 초래하기 쉽다. 영국은 변화에 대응하는 경제주체들의 자발적이고 일사분란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벤처 요람인 캐나다스퀘어의 레벨 39(Level 39)조차 민간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최종 판단은 시장의 몫으로 남아 있다. 상부하달식의 변화가 아니라 시장의 수요를 발굴하고 이를 충족시키려는 혁신이 기존의 규제 체계를 변화시키는 측면이 강하다. 우리와 같이 시장 상황보다 정부의 조치를 우선 확인해야 하는 환경은 그 자체가 역량을 제약한다. 산업 간 융합의 대표적인 예인 모바일 결제의 사례만 보더라도 일단 기술 발달이 가시화되면 시장참여자들이 모여서 감독 기준 관련 의견을 조율하고 시장 형성에 협력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극히 상식적인 접근이지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업계 규율로 정착시키는 과정에 신뢰가 간다. 시장에 밀착해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생태계의 불확실성이 관리되며 보다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런던 WEF 회의가 던져주는 시사점은 우리에게 결여된 금융 생태계 인프라의 중요성이다. 미래 혁신 생태계의 핵심은 보다 긴 안목, 플랫폼 차원의 경쟁력, 그리고 사업주체인 민간의 주도다. 우리의 난맥상은 이러한 핵심 요소가 결여된 채로 가동되는 지원 체계의 난맥상과 자발적인 시장형성 과정의 생략이다. 시장의 수요가 아닌 상부 지시에 의해 촉발되는 변화는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끊임없이 변화된 환경에서 잘 팔릴 수 있는 금융 서비스와 상품 개발에 금융기관이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스스로 적극 참여해야 한다. 정부의 TLC(Tender Loving Care)는 스스로 돕는 자들을 위한 뒷받침이다. 막상 주인 역할을 해야 하는 주체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영국 금융산업 핀테크로 재도약 꾀해
무엇보다도 런던 WEF 회의 논의의 핵심은 모바일 기술의 대두로 현재 인터넷 기반의 온라인 환경에 가까스로 적응했던 금융기관들에 다시 한 번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현실을 일깨워준 점이다. 변화된 환경에 적용될 수 있는 규제 체계에 대한 논의를 포함해 궁극적으로는 금융 서비스의 고유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마저 개진됐다. 예금수취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금융 서비스를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제공할 수 있는 여건에 진입한 것이 분명하다. 이를 진입장벽으로 관리할 경우 이중적 구조가 강화되면서 소위 규제되지 않는 그림자금융이 대신 발전할 것이고 이를 전면 허용할 경우 규제를 받는 은행 시스템의 고사마저 우려될 수 있다. 더욱이 우리의 가두리 양식장과 비슷한 보호 환경에서는 변화에 적응할 자체적 인센티브를 찾기 어렵다. 미래지향적으로 대규모 시장 선점을 위한 전략적 접근 대신 기존 업체들 위주의 폐쇄적 환경으로 인해 잠재력이 사장되고 있다. 모바일 환경의 특성상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면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의 크기가 엄청나게 커지는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대략적인 논의의 결과는 상식적인 타협 수준에서 수렴됐다. 즉, 기존 은행 체제의 근간을 토대로 다양한 서비스 제공이 허용돼야 하며 사전 식별이 어려운 위험요인에 노출돼 있는 금융 이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비상시의 책임 소재 및 한계와 손해배상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도출이 강조됐다. 신기술 표준화에 대한 필요성도 제시됐다. 금융 사고나 정보 유출에 대한 위험, 그리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중요한 주제로 제기됐다. 이러한 논의의 공통점은 기술발전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부작용을 사전에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는 대응체계를 준비함으로써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추구하고 관련 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영국의 핀테크산업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이점을 향유하고 있었다. 즉,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규제 환경이나 전반적 생태계가 새로운 시도를 혼란 없이 수용하는 데 적합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뿌리째 흔들렸던 영국의 금융산업은 핀테크의 개발과 기본 토대의 건실화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과거의 잘못을 겸허히 수용하고 소비자와 시장을 기반으로 한 발전을 선진 규제의 틀 안에서 모색하는 최근 런던의 모습은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외치고 있었다. 새로운 미래는 이미 우리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런던(영국)=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