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농부 박영옥의 투자 칼럼

주식투자는 동업자와 동행하면서 성장의 과실을 공유하는 것이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결정적인 선택에는 우리가 동업자로 선택할지도 모를 ‘경영자’가 있다. 따라서 바른 기업가 정신을 가진 최고경영자(CEO)를 알아보는 눈이 반드시 필요하다.
[BACK TO THE BASIC] 경영자의 선택이 기업의 미래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현재의 자신을 만든 몇몇 중요한 지점들이 보인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인생을 살았으리라 생각되는 것들이 있다.

필자의 경우를 보면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중학교에 간 것, 산골에 살다가 상경한 것, 20대 중반 대학 은사의 권유로 증권분석사 시험을 치른 것, IMF 사태를 거치면서 주식투자의 본질을 깨달은 것, 그리고 9·11 테러 때 위기 너머의 기회를 본 것 등이 있다.

당시에는 인생 전부가 걸린 것처럼 고민했지만 지나고 나니 고민했다는 기억만 있을 뿐 무엇 때문에 괴로워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인생의 갈림길에 전혀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선택이 인생의 항로를 크게 바꾸기도 했다. 결과를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크고 작은 선택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한다.

기업의 현재와 미래도 그렇다. 기업의 역사를 되짚어가다 보면 기업의 현재를 만든 결정적인 선택이 보인다. 특정 기간에 기업이 크게 성장했다면 그 이전의 어떤 시점에 좋은 선택을 한 것이고, 그 반대라면 적절하지 않은 선택을 한 것이다. 미래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한 선택을 한 사람들의 정점에 우리가 동업자로 선택할지도 모를 경영자가 있다.

주식시장에 몸담은 지 20년이 훌쩍 넘었고 그동안 수백 개 기업에 탐방을 갔지만 경영자를 아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한 이불 덮고 수십 년을 같이 산 아내도 ‘저 인간이 왜 저러나’ 할 때가 있다는데 술 한 잔, 밥 한 끼 같이 해본 적 없는 경영자의 속내를 속속들이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불가지론을 내세우며 검토 대상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행적을 통해 몇몇 중요한 포인트는 확인할 수 있다.

그가 경영을 시작한 이후 기업이 꾸준히 성장해 왔는지 봐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의 성장과 안정성을 말하는 것이지 우상향 직선 그래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전문경영인이라면 이전에 있었던 기업의 상황을 알아볼 필요도 있다. 그를 영입한 이유도 중요하다. 조직 정비를 위한 포석일 수도 있고, 성장을 위한 투자에 초점을 둔 인사일 수도 있다. 그 역할을 잘해내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매출이나 영업이익만 보고 그의 능력을 평가하기에는 성급하다. 영업이익이 꾸준히 상승하다가 최근 몇 년 사이 주춤하는 경우도 있다. 새로운 성장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는지 알아야 경영자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다.

배당도 경영자(또는 대주주)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기업은 날로 성장하는데 배당을 하지 않는다면 기업 경영은 잘하는데 주주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경영자다. 차익을 내고 팔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경영 방침’을 고수하는 경영자도 있다. 그렇다면 배당만 많이 주면 좋은 기업인가? 거둔 수익에 비해 배당을 많이 주는 기업도 있다. 그러나 많이 준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적정한 돈을 남겨서 위기에 대응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도 발굴해야 한다. 배당을 많이 주는 기업들 중에는 대주주와 그의 가족들이 대부분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기업의 성장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CEO를 동업자로 생각하고 선택해야
재무제표에 나타나는 지표가 나빠도 경영자가 잘 들어오면 회사는 좋아진다. 반면 유보율이 1000% 이상인 기업이라도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그러면서 탐욕스럽고 무능력한 사람이 경영자 자리에 앉으면 순식간에 망가진다. 업종을 제외한 기업의 거의 모든 요소가 경영자의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경영자를 파악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경영자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기업가 정신’이다. 경영자의 행위가 기업가 정신에 부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법정에서처럼 명확하게 가르는 잣대는 아직 없다. ‘정신’에 대한 것이고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할 테니 엄밀한 기준을 적용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전반적인 정의는 가능하다. 기업가 정신에 대한 필자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우리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잊지 않는 정신.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정신.’

경영자의 마음을 햇볕 아래 펼쳐놓고 기업가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여러분들처럼 필자도 방법을 모른다. 그래도 필자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특별히 소통이 안 되는 경영자가 아니면 한두 번 이상 만날 수 있고 가끔 통화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분이라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포털사이트에서 경영자의 이름을 검색해 시간 순으로 읽어보라. 그의 역사가 보일 것이다. 특히 인터뷰 기사는 유심히 보기 바란다.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기자가 일부 단어나 문장을 바꾸기는 하지만 자주 쓰는 단어나 문장이 있다. 인터뷰 때마다 직원들의 노고를 잊지 않는 사람도 있고, 혼자서 모든 것을 일군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비약적인 매출 성장을 자주 약속하기도 하고, 경기의 어려움을 반복적으로 토로하기도 한다.


소액주주 모임을 만드는 것도 멋진 일
미래에 대한 포부를 밝혔을 때는 차후에 그것을 이뤘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듣기 좋은 꽃노래인지, 냉철한 계획에 따른 발언인지 알 수 있다. 운이 좋다면, 포부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의 반응도 볼 수 있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서 또 다른 버전의 포부를 들고 나오는지, 아니면 실패를 인정하고 원인을 분석하는지 살펴보라. 혹시라도 횡령, 배임 등의 전과가 있다면 바로 탈락이다. 사람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지만, 잘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사람이다.

여러분에게 의지가 있다면 주주모임을 만들 수도 있다. 경영자나 주식 담당자 입장에서는 주주가 찾아올 때마다 만나주면 일할 시간이 없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이 모여 대표단을 구성한 뒤에 인터뷰를 요청한다면 만나줄 공산이 크다. 경영자가 너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임원이라도 나와서 맞아줄 것이다. 요청을 해도 전혀 반응이 없다면 투자를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사적인 자리에서는 물론 책, 칼럼, 강연을 통해서 “주식투자는 동업자와 동행하면서 성장의 과실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비슷한 말로, 나보다 사업을 잘하는 사람에게 돈을 대주고 그에게 경영을 맡기는 ‘대리 경영’이라는 표현도 썼다. 이런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대개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농부처럼 투자하라’라는 말보다 더 낯설게 받아들인다. 특히 증권업계에 근무하는 사람들처럼 공부를 많이 했다는 사람일수록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대리 경영이라는 생각으로 투자해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하니 일단 읽고는 있는데 현실성은 없는 것 같다. 왠지 그냥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하는 말 같다. ‘대리 경영’, ‘농심 투자’라는 건 말이 그렇다는 것뿐이고, 진짜 비밀은 알려주지 않는 것 같다.

여러분이 이런 의심을 한다면 필자로서는 참 곤란하다. 그저 선택의 문제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어떤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투자할 것인지를 선택하고, 미래에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달게 받아들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