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영의 공간 & 공감_첫 번째

요즘 공간 연출에 있어 중요한 화두가 바로 유연성이자 가변성이다. 하나의 공간이 여러 용도로 활용되는 것은 물론, 훗날 다른 성격의 공간으로 변신하더라도 무리가 없어야 하는 것.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공간은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까.
답은 간단하다. 더하지 말고 덜어내는 공간.
홀의 전체 이미지. 공간의 심플한 구조와 따뜻한 색감을 느낄 수 있다.
홀의 전체 이미지. 공간의 심플한 구조와 따뜻한 색감을 느낄 수 있다.
서울 청담동 한복판에 라임스톤과 스틸로 마감한 원석을 깎은 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인테리어를 의뢰받은 공간에 들어서니 복층 구조에 높은 층고는 족히 10m는 돼 보였고 벽들은 천장을 향해 사선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네모반듯한 공간만 주로 설계해 온 디자이너에게 이 독특한 공간 구조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클라이언트가 정한 이 공간의 명칭은 ‘플레이스 제이(place J)’. 평소엔 와인과 음악,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라운지 카페이며 때때로 파티를 열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연한 성격의 공간을 원했다.


숨기고, 덜어내고, 비워내는 방식으로 완성된 담백한 공간
개성 강하고 차가운 골조에다 용도의 다양성까지 감안하니 콘셉트는 명확해졌다. 단순하면서도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 연출이 그것. 화려한 것보단 장식이 없고 소박한, 인공적인 소재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소재를 사용하는 것에 포인트를 두기로 했다.
화장실로 가는 문과 수납장이 숨겨져 있는 우드 패널 마감의 벽.
화장실로 가는 문과 수납장이 숨겨져 있는 우드 패널 마감의 벽.
심플한 공간을 위해서는 일단 불필요한 것은 숨기거나 삭제하고 꼭 필요한 것만 구성하는 작업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먼저 복잡한 주방은 아래층으로 내리고 카운터, 홀, 화장실로 동선을 간결하게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화장실 일부는 쪼개서 오디오시스템, 코트 클로젯, 잡동사니 등을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을 만들되, 화장실 문과 수납장은 숨은 경첩으로 디테일을 풀어 벽의 일부처럼 보이도록 계획했다. 그뿐만 아니라 카운터 옆 계단실 자투리 공간에 세척실을 조성해 애초에 정리가 안 되는 부분은 미리 숨길 수 있도록 세심한 고려를 했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소재에 대한 선택과 매칭이었다. 따뜻한 감성을 지닌 공간을 연출하기 위해 주 소재는 베이지 계열의 컬러와 나뭇결이 살아 있는 우드 패널, 바닥은 웜 그레이 컬러의 에폭시로 공간의 전체적인 톤 앤 무드를 유지했다. 자칫 지루해 보이거나 무거워 보일 수 있는 거대한 아트월은 우드 패널로 마감하고 중간 중간 얇은 메탈을 끼어 넣는 묘미를 발휘했더니 벽면을 바라보는 그 느낌이 나쁘지 않다. 너무 다운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어, 높은 홀 천장에 폭죽이 터지는 형상을 캡처한 레이몬드(raimond) 펜던트로 포인트를 주었더니 활기가 돌았다.
우드 패널과 메탈의 매칭을 보여주는 아트월과 공간의 포인트가 되는 펜던트.
우드 패널과 메탈의 매칭을 보여주는 아트월과 공간의 포인트가 되는 펜던트.
가구 배치는 단 두 종류의 테이블과 의자로만 여유롭게 배치했다. 테이블은 메이플 하드우드 상판과 신주 다리로 공간의 전체적 톤을 유지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형태로 디자인했고, 의자는 1930년에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이 디자인한 것으로 심플한 셰이프와 부드러운 곡선의 디테일이 있고 좌판은 등나무 소재로 따뜻하고 오리지널리티가 살아 있는 것으로 선택했다. 전체적 프레임은 어두운 월너트 컬러로 매칭해 밝은 공간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공간이 가진 힘은 한마디로 ‘담백함’이다. 심플한 공간 구성에 내추럴한 컬러와 소재의 매치, 은은한 조도에 한두 가지 포인트의 조화까지 어우러진 이 공간은, 과한 콘셉트와 장식이 난무하는 요즘, 덜어내고 비워낸 공간의 미학을 드러낸다.


기획 박진영 기자│글·사진 심지영 판다스튜디오 디자이너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