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석 교수 & 이윤경 기자의 ‘식탐’ - 동파육·어향동고·짬뽕
과거,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같은 시대엔 생존을 위해 먹는 경우는 드물며, 오히려 ‘제대로’ 먹는 데 촉을 세우는 미식가들이 많다. 같은 음식이라도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알고 먹을 때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법. 음식문화평론가로 이름난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와 함께 전 세계 음식 속에 숨겨진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찾아 나선다. “거, 목란에서 만납시다!” 2015년 1월호 푸드 칼럼의 주제가 중국 음식으로 좁혀지자 예종석 한양대 교수는 주저함이 없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중식당 ‘목란’은 미식가 예 교수의 ‘은밀한’ 식당 리스트 가운데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곳이다. 싱싱한 제철 해산물과 채소만을 사용해 시원한 국물 맛을 내는 짬뽕이 이 집의 ‘히트작’이지만, 그 밖에 게살 유산슬, 어향동고, 동파육, 탕수육 등 고급 요리도 제대로 만들기로 정평이 났다. 예 교수의 소개로 ‘목란’의 단골손님이 된 재벌가 회장들도 제법 있으니, 중국대사관 전 주방장 출신인 이연복 셰프의 손맛은 재계에서도 보증된 셈이다. 예 교수가 주문한 요리는 돼지고기 찜 요리인 ‘동파육’과 말린 표고버섯, 새우 완자로 만든 ‘어향동고’, 그리고 ‘짬뽕’. 이 셰프의 손끝에서 새롭게 탄생한 ‘한국식 중국 요리’를 앞에 두고 예 교수와 함께 이들의 기원과 맛에 관한 ‘쫄깃한’ 대화를 이어갔다. 스토리텔링에 성공한 음식, 동파육이윤경 기자(이하 이) 교수님, 동파육은 돼지고기 찜요리지요. 삼겹살 덩어리에 소홍주(紹興酒)와 간장 등을 넣고 졸여서 만든 음식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 요리 중에서도 조금은 생소합니다.
예종석 교수(이하 예) 음, 동파육은 중국 항저우지역의 음식이지. 전 세계 미식가들이 사랑하는 돼지고기 요리이자 지금도 중국 상하이에선 일반 가정에서 흔히 먹는 전채요리예요.
이 중국은 지역별로 맛의 차이가 뚜렷하다면서요.
예 북쪽 베이징의 산둥요리는 짜고, 동쪽 상하이 난징요리는 새콤달콤해요. 남쪽 광둥요리는 담백하고, ‘사천요리’로 유명한 서쪽 쓰촨지역의 음식은 매운 것이 특징이지. 그런데 이 기자는 이 동파육이 ‘음식 스토리텔링의 최강자’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
이 들어본 적 있어요. 중국 당송시대의 시인인 소동파(蘇東坡)의 이름에서 비롯됐지요. 소동파가 남긴 문장인 ‘적벽부(赤壁賦)’보다 이 동파육이 현대에 와서 더 유명해졌으니 그는 지하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예 아이러니할 거야, 아마.(웃음) 소동파로 널리 알려진 소식(蘇軾)은 당송시대 천재 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이름이 높지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미식가로도 저명해요. 동파육에 그의 이름이 붙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한데, 가장 흔한 것은 그가 항저우 태수로 있을 때 그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죠.
이 어떤 내용인가요.
예 폐허가 돼 있던 서호에 새로 부임한 소동파가 엄청난 인원을 동원해 제방을 쌓고 아름다운 옛 모습을 되찾게 했어요. 이에 감동한 백성들이 돼지고기를 선물로 보냈지. 돼지고기에 관한 ‘저육송(猪肉頌)’이라는 글을 남길 정도로 돼지고기를 좋아했던 소동파는 그 고기를 요리해 사람들에게 나눠줬는데, 그것이 동파육이 됐다는 거예요. 그는 돼지고기에 관한 글인 ‘식저육시(食猪肉詩)’에서 “항저우의 돼지고기는 질은 좋고 가격은 싼데, 부자는 거들떠보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요리할 줄을 모르네. 물을 적게 넣고 약한 불로 삶으면 다 익은 후 제 맛이 난다네”라고 노래했죠.
이 미식을 즐기는 것뿐 아니라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군요. 동파육이란 음식의 명성이 시인 소동파로 인해 높아졌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그런데 동파육은 만드는 과정이 그렇게 까다롭다고 하던데요(목란의 이연복 셰프는 생삼겹살을 낮은 불에 40분~1시간 정도 삶은 뒤 껍질에 캐러멜을 바르고 다시 튀긴 것을 썰어서 소스를 붓고 다시 보글보글 끓여 만들어 내는데, 그 시간이 무려 5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다).
예 갖가지 요리 방법이 동원되니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지. 그렇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만큼 맛이 좋고 귀해. 복합적이고 깊은 맛이 나고. 나도 중요한 손님을 모실 땐 반드시 이 동파육을 대접해요. 그럼, 이 기자가 한 번 먹어보라고.
이 겉모습은 약간 어두운 빛의 삼겹살 찜인데, 향이 참 좋습니다. 오랫동안 약한 불에서 삶아 촉촉한 삼겹살 찜과 아삭한 청경채가 무척 조화롭네요.
예 동파육 특유의 향은 ‘팔각’이라는 향신료가 들어가기 때문이에요. 중국 요리에 아주 고급스러운 맛과 향을 내는 주역이지. 여기에 들어가는 ‘소홍주’ 역시 상하이 발효주인데, 약으로도 먹고 고기 요리에도 넣어 먹어요. 나는 동파육을 먹을 때 가끔 한 잔씩 해요.
이 듣고 보니 술안주로 제격이네요. 그 옛날 소동파도 소홍주에 동파육을 안주 삼아 먹었겠지요.
예 시인이 술 안 마시면 시가 나오나.(웃음) 음식은 그 자체의 맛만큼이나 술과 얼마나 잘 어울리나 하는 것도 무척 중요해요.
한국화된 중국 음식, 어향동고·짬뽕
이 교수님, 새우 다진 것과 표고버섯을 완자로 만든 소스를 끼얹은 어향동고는 더욱 낯선 음식입니다.
예 이건 이 셰프가 창작한 요리로 베이징에서 많이 먹는 새우완자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거예요. 목란에서 처음으로 내놓은 건데, 지금은 다른 중국 음식점에서도 많이 흉내를 내죠. 양파, 피망 등을 넣어 매콤하게 만든 어향소스 맛이 독특하지. 중국 음식이 인정받는 건, 지구상에서 가장 세계화된 음식이기 때문이죠. 세계 각국에 진출한 중국 식당들은 그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개발해내요. 같은 광둥요리라도 맛이 홍콩과 뉴욕, 도쿄 등 도시마다 조금씩 다른 것은 그들이 현지의 재료를 써서 현지인 입맛에 음식을 맞추기 때문인 거죠.
이 짬뽕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짬뽕은 중국의 면 요리인 탕육사면을 19세기 일본 나가사키의 중국 요리사 진평순이 일본인들 입맛에 맞게 변형해 나가사키 짬뽕으로 정착시켰고 그게 인천 제물포로 건너와 지금 우리가 먹는 짬뽕이 된 거잖아요. 변화무쌍하게 얼굴을 바꾸는 중국 음식은 흡사 가면술 ‘변검’을 떠올리게 하네요.
예 나가사키 짬뽕은 우리나라 중국집에서 파는 우동에 가깝지요. 본시 짬뽕은 중국에서 건너왔지만 슴슴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은 담백한 나가사키 짬뽕을, 매콤한 맛을 즐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춧가루를 푼 얼큰하고 매콤한 짬뽕을 먹죠. 내 경우는 짬뽕 먹을 때 먼저 국물에 식초를 넣어요.
이 네? 짬뽕에 왜 식초를….
예 개성 출신 동화 작가이자 미식가로 유명한 마해송 선생께서 생전에 짬뽕 국물에 식초를 넣어서 드셨어요. 복국 먹을 때 식초를 넣는 것처럼 생선이나 해물로 만드는 국에는 식초가 들어가야 산뜻한 맛이 나는 법이지. 요즘 식당에서 사용하는 식초가 빙초산이라고 해서 말들이 많지만 원래 식초는 몸에 좋은 음식이니까요. 이 기자도 한 번 시도해봐요.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촬영 협조 목란(02-732-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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