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상속 플랜, 물려주고 싶은 부모 vs 물려받기 싫은 자녀

“물려주고 싶은데 받을 사람이 없으니 걱정이죠.” 후계자가 없어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놓인 중소기업 오너경영자의 하소연이다. 1970~1980년대 경제성장기에 기업을 창업한 경영자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어 이런 사례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업승계를 원하는 부모와 원치 않는 자녀. 어떻게 합의를 도출해야 할까.
[BIG STORY] 거부감 없이 가업승계 하는 법
70세를 넘긴 한 오너경영자를 만났다. 그 나이까지 현역이니 혈기가 넘치고 야망도 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 그는 하루라도 빨리 이 어려운 짐을 벗어놓고 싶다고 했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30년 연속 흑자를 내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우수 중소기업 사례로 소개된 한 기업도 자녀들이 사업에 관심이 없어서 최근 폐업을 했다. 회사를 매도하려고 알아봤지만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경영권을 놓고 자녀들 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후계자가 없어 문을 닫는 경우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기업이 후계자가 없어 폐업한다면 거기에 딸린 수많은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어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세계적으로 장수기업이 가장 많은 일본에서도 최근 후계자가 없어 기업을 승계하지 못하는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도쿄 오타구에서 플라스틱 가공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72세 사장. 아들 2명 중 1명은 변호사, 다른 1명은 대기업 직원이다. 둘 다 경영 승계를 거절했다. 안정적 생활을 일부러 포기하고 힘들게 살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미쓰비시 리서치센터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연간 7만7000개의 기업이 폐업을 한다(3.6%). 경영난과 시장 전망의 불투명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적절한 후계자를 찾지 못해서’ 폐업하는 회사가 5개 중 1개꼴이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생해서 키운 회사, 자녀는 왜 승계를 거부하나
동일한 업종과 규모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데도 어떤 기업은 자녀들이 승계를 원치 않아서 폐업하는가 하면 어떤 기업은 자녀들이 기업을 이어받아 성공적으로 경영하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자녀들이 어린 시절에는 기업을 키우고 자리 잡느라 승계를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업 초기에는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한 경영자는 “자녀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며 “그래서 각자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하고, 회사를 맡아야 한다는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다수의 경영자들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자녀들이 고생하지 않고 좋은 직업을 얻어 편하게 살도록 최대한 지원한다. 그 덕분에 유학을 가서 현지에서 좋은 직장을 얻기도 하고, 귀국해서 원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기업이 성장하고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은퇴 시기가 가까워져서야 승계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자녀들은 이미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회사에는 관심이 없다. 자녀가 승계 의지가 없는 기업들은 대부분 이러한 패턴을 보인다. 사실 이는 승계에 대한 안이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고 손 놓고 있다가 은퇴 직전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이는 단지 중소기업만의 얘기가 아니라 승계 단계의 기업 대부분이 겪는 문제다.


승계를 염두에 두고 경영해야 하는 이유
성공적으로 기업을 승계한 가족들은 이와 다르다.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회사 이야기를 듣고 자라거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회사를 경험하며 자란다. 그리고 이들은 누가 굳이 부담을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승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해외의 명문 장수 가족기업들은 후손을 위한 회사 견학 프로그램과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기업의 역사를 들려주면서 회사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한다.

세계적인 화장품회사 에스티로더 창업자의 손녀딸인 에이린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어린 시절 식사 시간에 신제품 출시와 얼굴에 바르는 크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고 했다. 부친인 샘 존슨과 그의 아내, 그리고 네 자녀들은 주기적으로 만나 사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딸 헬렌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저녁 식사 시간에 손잡이에 치약이 달린 칫솔을 만들면 어떻겠느냐며 신제품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오너의 자녀들은 해외 유학을 통해 외국어 실력과 국제 감각을 갖춘 경우가 많다. 만약 이러한 자녀가 기업을 승계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실적으로 중소, 중견기업에서 자녀보다 더 우수한 인적자원을 구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중소기업 중에는 자녀가 경영한 뒤로 한 단계 도약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3대째 가업승계를 진행하고 있는 한 유리회사의 경영자 얘기를 들어보자.

“아들이 어렸을 때는 사실 회사 일에 정신이 없어서 승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자리 잡아 가면서 나중에 아들이 맡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들 고등학교 때부터 직접적으로 승계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회사 얘기를 자주 나누었지요. 그리고 아들이 대학에 진학할 무렵 승계를 염두에 두고 신소재공학을 전공하라고 권했는데 아들이 흔쾌히 따라줬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3년 정도 다른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어요. 그러는 동안 야간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 가서 품질분야의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취득했지요. 회사에 돌아와 4년 정도 사무실과 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공장에서 직원들에게 자신이 미국에서 배운 유리 가공기술과 품질을 직접 가르쳤는데 이 때문에 직원들 의식도 높아지고 생산성도 좋아지더군요. 2013년 아들에게 부사장직을 맡으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어보니 아직 현장에서 1년 정도는 더 일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들의 의견을 따라 1년이 지난 2014년 부사장으로 진급을 시켰지요. 지난 회사 창립 50주년 기념일에는 아들과 함께 회사 정문 옆 화단에 ‘새로운 50년을 기다리며’라는 현판과 함께 기념식수를 했습니다. 아들이 저의 꿈과 비전을 이어줄 거라는 믿음과 기대를 표현한 것이지요.”

이처럼 경영자는 자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승계를 염두에 두고 경영을 해야 한다. 만약 자녀에게 승계할 계획이 없거나 자녀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원하지 않는 자녀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외부에서 후계자를 영입할 것인지 회사를 매각할 것인지에 따라 미리 준비해야 한다.
[BIG STORY] 거부감 없이 가업승계 하는 법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