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농부 박영옥의 투자 칼럼-다섯 번째

‘주식투자’는 ‘기업에 대한 투자’다.
따라서 올바른 주식투자는 기업에 대한 개념을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그래야 매매 게임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
[BACK TO BASIC] 당신에게 기업이란 무엇인가
‘영리(營利)를 얻기 위하여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조직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있는 ‘기업(企業)’의 정의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되는데 피부에 와 닿는 정의는 아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에게 기업이란 무엇인가?” 이런 ‘이상한’ 질문은 받은 적이 없을 것이다. 기업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지 않아도, 굳이 정의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만약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서 고민을 했다면, 해답이 나오지 않아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했다면, 밥 먹고 할 일 없으니 별 시답잖은 호기심이 발동하는 모양이라는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시답잖은’ 질문을 진지하게 해볼 때가 됐다.


‘주식투자’가 아닌 ‘기업 투자’가 적확한 표현
‘주식투자’라는 말은 다들 쓰고 있고 나 역시 종종 쓰는 표현이긴 하다. 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기업에 대한 투자’라고 해야 한다. 그러니 주식투자를 제대로 하려면 기업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내리는 것이 먼저다. 기업에 대한 정의가 올바로 서 있지 않으면 올바른 투자 역시 불가능하다.

먼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어떤지 묻고 싶다. 여러분은 기업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는 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기업 관련 뉴스들은 무미건조하거나 그들만의 잔치이거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비난이 주종을 이룬다. 간혹 미담이 있으나 광고의 다른 형태로 여겨지기 일쑤다.

소비자를 봉으로 알고 갖은 눈속임으로 여러분의 지갑을 털어가는 야비한 집단, 세계와 경쟁한다면서 한편으로는 골목 상권에 입맛을 다시는 탐욕스러운 재벌, 노동자들의 고혈을 빨아 자기 배를 불리는 기업주 등은 많은 사람들이 ‘기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릴 법한 이미지들이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 이미지를 여러분의 직장과 겹쳐보자. 우리는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지 ‘기업’에 출근하지는 않는다. ‘직장’에 다니지 ‘기업’에 다니지는 않는다. 내가 일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분리하는 용어들이다. 그러나 사실 나의 직장도 누군가에게는 기업이다. 우리는 타인의 직장에서 생산한 ‘재화나 용역’을 사용하고, 타인 역시 여러분의 직장에서 생산한 ‘재화나 용역’을 사용하면서 살아간다.

‘재화나 용역’의 종류는 한없이 많다. 아기가 먹는 분유, 꼬맹이를 즐거운 폭주족으로 변신시키는 세발자전거, 먼 거리에 있는 가족의 안부를 묻거나 조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연인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데 사용하는 휴대전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새 옷, 지구가 네모였던 시절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나라에 데려다주는 비행기, 그리고 먼 훗날 언젠가 우리의 마지막 여행을 도와줄 장례식장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조직체’를 바탕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필자에게 기업은 우리 삶의 터전이다. 여러분이 직장이라고 부르는 기업에서 일을 하고 그곳에서 받은 월급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먹듯이, 타인도 그들이 직장이라고 부르는 기업에서 일을 하고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것이 수익률, 손실률, 상한가, 하한가, 폭등, 폭락, 박스권, 이평선, 신고가 등의 용어에 가려져 있던 기업의 본질이자 정의다.


매매 게임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업에 대한 개념 바꿔야
필자는 여러분에게 기업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직장에 여러분과 동료들이 있는 것처럼 여러분이 투자하는 기업에도 사람이 있다. 그들이 생산하는 재화와 용역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지 생각해보라. 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부도덕하다고 욕하면서 그곳에 투자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난센스다. 올바른 주식투자는 기업에 대한 개념을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매매 게임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수익만 생각하고 투자하면 숫자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터전이라고 보면 그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 혹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보인다. 여러분의 투자금은 그 기업이 존재를 이어가면서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투자 수익은 그 도움에 대한 보상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필자는 ‘○○기업에 투자해주었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삶의 터전이라는 관점에서 투자할 기업을 보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은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미리 볼 수 있었고, 그것이 내가 어떤 기업에 투자하는 주된 이유가 됐다. 그 가치가 흔들리지 않는 한 주가가 하락해도 마음이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은 기업이 가진 가치를 인정해주었다. 이 같은 과정의 반복이 오늘날 필자의 자산을 일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