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효과적인 소방수 역할을 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전례 없는 개입은 위기의 충격을 완화하고 1930년대 대공황을 막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당시 Fed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대공황에 관한 전문가라는 호칭에 걸맞게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십분 발휘해 대규모 채권 매입에 나섬으로써 단기 금융시장의 마비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더구나 재무부와 갈등은 막을 수가 없었다.
[MARKET INSIGHT] Fed와 재무부의 갈등으로 본 미국 경제
주지하다시피 미국 재무부는 연방부채의 관리(debt management)를 맡고 있는 반면 Fed는 주로 정책금리인 단기 금리를 정하는 기관이다. 2008년 Fed가 단기 금리를 바닥으로 밀어 부치고 장기채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그동안 비교적 조화롭게 운영되던 양 기관의 역할에 혼선이 초래됐다. Fed가 제로(0) 금리하에서 더 이상 단기 금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대신 대규모 채권 매입에 나서면서 결과적으로는 재무부의 만기 연장을 실질적으로 부추기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세간에 미처 부각되지 못한 이러한 혼선은 전례 없는 비상상황에서 Fed의 역할이 크게 확대됨에 따라 초래됐다. 재무부의 부담을 가중시키면서 Fed가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국가채무의 관리 주체인 재무부의 역할과 기능에 상당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갈등의 모습은 장기 금리와 관련된 양 기관의 노력이 서로 반대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데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Fed는 장기채를 매입해 장기 금리를 낮추는 상황에서 조달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재무부는 더 많은 장기채를 발행해 결국 Fed의 금리 하락 효과를 상쇄하게 됐다. 특히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단기채 대신 상대적으로 많이 발행된 10년 만기 재무부 증권의 경우 2014년에 들어와 국내총생산(GDP) 대비 24.9%에 달하고 있다. 국가채무 구조를 들여다보면 만기가 연장되고 장기채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반면 Fed에서 양적완화(QE)를 통해 재무부 증권을 사들이다 보니 10년 만기 재무부 증권을 포함한 장기채 물량이 GDP 대비 15.6%가량 시장에서 흡수됐고 이중 차입 만기구조는 5.5%에 달했다. 한마디로 장기 금리의 하락 중 30% 정도는 재무부의 장기채 판매로 하락 효과가 상쇄된 셈이다.

Fed 입장에서 재무부는 단기채 공급과 흡수를 통한 금리 하락 노력에 협조하지 않은 것이고, 재무부 입장에서 Fed는 국가채무 관리의 주도권을 가져간 셈이다. 결과적으로 단기채 공급을 더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데 비해 재무부의 경우 조달비용을 줄이기 위한 장기채 판매로 잠재적 혜택을 포기한 셈이다. 즉, Fed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장기채 대신 단기채 공급을 늘려 시장수요에 부응하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될 여지가 있었으나 이 부분에서의 협조가 부족했던 것이다.

헌법에서 규정한 국가채무 관리의 책임자인 재무부의 권한이 실질적으로 금리정책을 맡고 있는 Fed로 이관되면서 두 기관 간의 갈등이 커져만 갔다. 바야흐로 재무부는 실제 자금이 돌아가게 하는 기본인 궁극적 안전자산을 공급하면서도 실제 국가채무 관리에 실질적 영향을 주는 대부분의 결정을 Fed에 맡겨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헌법에서 규정하는 고유 업무 영역이 전례 없는 상황으로 인해 뒤죽박죽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제금융체제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기관 간의 역할이 외면적인 갈등을 보이게 된 배경은 늘어나는 안정적인 차입비용을 통해 국가채무를 관리하는 주체의 시각과 위기상황에서 금융 안정을 위해 저금리와 양적완화를 지탱해온 시각의 불가피한 상충 관계다. 기관의 목표가 다르다 보니 서로 상반된 것으로 비춰지는 시장 개입에 나선 셈이다.

금융 분야의 양대 축을 맡고 있는 기관들의 운영 목표상 갈등은 글로벌 경제의 지배구조 개편이 절실한 점과 동시에 그만큼 개혁이 어려운 현실을 동시에 설명하고 있다. 보통 때라면 Fed는 재무부의 부채 관리 영향을 상쇄할 만한 충분한 여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리가 바닥으로 주저앉은 상황에서는 재무부와의 정책 공조가 절실하게 됐다. 장기채 대신 단기채 발행을 늘려 Fed의 노력에 도움을 주어야 하며 Fed도 정부 차입 비용을 안정화하려는 재무부의 노력에 부응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통화정책 수단이 작동하던 경우에는 정부의 채무관리 결정이 총수요에 미치는 영향, 즉, 차입을 늘릴 경우 금리가 오르면서 총수요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로 금리로 인해 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을 활용하기 힘들게 돼 오히려 채무관리가 총수요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상황이다. 서로 상반되는 모습이 시장에서 관찰되면서 관할 업무가 중복되는 영역에 있어 양대 축의 사전조율 필요성마저 제기된다. 그러나 이는 헌법기구의 법적 타당성과 상충되는 측면이 있어 쉽지 않은 과제다. 향후 갈 길이 먼 정상화 과정에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이러한 혼란 상황은 지속될 것이다.


양적완화의 부작용, 시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결과
일견 그간 금융시장 안정의 배경에는 양적완화가 어김없이 작용해왔다. Fed가 돈을 찍어낼 수 있었던 배경은 유통시장에서의 국채인 재무부 증권과 주택저당증권(MBS)을 대거 사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은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면서 시장의 패닉 심리를 안정시키고 시스템상의 문제가 부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더욱이 수반되는 초저금리 기조는 위험을 감수하기에 우호적인 배경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실제 시장 상황이 안정되고 실업률이 6%대로 하락하면서 이러한 선택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개입의 후유증은 사실상 쉽게 치유하기 힘든 상흔을 남겼다. 아직 실물경제의 회복이 고용과 투자의 회복에 기초한 건실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주식시장 등 자산 버블로 연결된 면이 보이고 노동시장 참여율이 오히려 낮아지고 있으며 양극화 심화와 왜곡된 상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금융시장의 기능등 그간의 노력을 정당화하기에는 부족한 증거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필요해진 엄청나게 포괄적인 대응의 필요로 인해 Fed의 역할이 깊이나 포괄 범위 면에서 커지게 된 반면 재무부는 재정 건전성의 멍에만 지게 된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상황이 조만간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은 상태다. 피상적 안정 기조의 이면에는 기관 간의 엉켜진 영역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자금의 상황은 그동안의 노력이 시장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를 기울인 대응이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양적완화와 관련된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를 반영하고 있다. 분명 시장개입으로 안정을 누리는 효과가 있는 반면 개입으로 문제가 생긴 부분도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저금리 기조의 안정 효과 이면에는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으로 대표되는 금융기관 간의 자금조달 창구인 금융시장의 기능이 여전히 위축된 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환경이 변했는데 이를 고려한 최선의 대응을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즉, 자체적 시장 기능이 약화된 채로 정부의 지지를 통해 겨우 지켜낸 안정인 셈이다.

실제 제로 금리로 단기 금리에 대한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상실한 Fed는 보다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일단 양적완화의 축소 과정에서 금리 급등을 피해야 하는 곡예비행의 부담을 안고 있는 데다 금융 안정을 위해 취하고 있는 일련의 지지 장치와 관련해 어려운 결정만 남기고 있다. 위기 이후 취해진 양적완화의 효과가 반감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시장이 요구하는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신용 중개 경로의 작동에 이상을 주지 않는 시장 안정이 기대됐지만 과잉 유동성으로 시장과 기관에 의한 자금 중개가 뒷전으로 물러난 피상적 안정인 셈이다. 즉, 여러 가지 부작용 중에서 가장 심각한 사실은 금리정책이 무력화됐다는 점이고 둘째는 실질적인 채무 관리 업무의 상당 부분이 장기 금리 관련 개입(operation twist)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Fed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즉, Fed의 금리 안정 노력으로 인해 재무부는 만기 연장을 통해 장기채 발행을 늘리는 업무로 끌려 들어가게 된 셈이다.

우선 금리정책과 관련된 딜레마는 엄청나게 늘어난 유동성의 대부분이 초과지준의 형태로 다시 Fed에 잠겨 있는 데다 초과지준에 대해 25bp(0.25%) 금리가 지급된다는 데 있다. 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돈의 가치를 더 이상 시장에서 결정하기는 어렵다. 실제 일정 수준의 금리를 유지해야 금리정책이 가능한 상황에서 Fed의 결정은 고육지책으로 간주된다. 초과지준에 대한 금리 지급은 유동성 함정하에서 금리정책 수단을 조금이라도 가지고자 하는 연방은행의 최후 수단인 셈이다. 이미 기존의 연방기금(FF) 금리가 정책금리로서의 효용성이 반감됐다는 점이다. 은행 간 차입이 줄어들면서 정책금리로서의 목표 금리는 용도가 사라진 셈이다.

어려워진 전통적 통화정책으로의 복귀
보다 심각한 문제는 초과지준 금리가 은행들에만 허용됨에 따라 헤지펀드나 자산운용사들은 자금조달 면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형평성 저하 문제로 고민하게 됐다. 비은행들은 일단 시장에서 그동안 단기 자금 조달창구 역할을 해온 환매조건부채권(Repo)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어려움이 가중됐다. 즉, 양적완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시중의 미 재무부 증권이 4조 달러 정도 사라짐에 따라 그들 간의 자금조달에 필요한 담보가 급격히 줄어들게 됐고 그 결과 비은행의 자금 중개도 떨어졌다. 더욱이 재할인창구나 다른 유동성 확보 경로가 원천적으로 막혔고 은행보다 비싼 금리로만 단기 자금조달이 가능하게 됐다. 풍부한 시장유동성 상황에도 불구하고 은행과 비은행에 다르게 적용되는 금리의 차이는 설명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최근 들어 Fed가 역리포(RRP) 시장거래를 통해 미 재무부 증권을 방출한 것은 이러한 시장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으로 간주할 수 있다.

사라진 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을 대체하기 위해 새로 제안된 수단의 핵심은 결국 RRP 시장의 금리로 볼 수 있다. 즉, RRP 금리와 FF 금리 간의 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금리 간 갭을 조절하는 것이 현 금리정책의 핵심으로 간주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Fed의 양적완화는 시장 안정에는 도움을 주었으나 이후의 출구전략에서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면서 현재 당국의 고민거리로 대두된 것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과거로의 복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는 Fed의 전통적인 통화정책 근간을 흔들었고 재무부의 국가채무 관리상 어려움을 가중시켰으며 정책당국 간 역할의 혼선마저 야기했다. 금융 환경의 변화를 감안할 때 새로운 역할 정립과 더불어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진화적 발전을 도모해야 비로소 금융 부문의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