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조각가 권오상
권오상 작가에 대한 텍스트들은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의 작품이나 예술관에 대한 분석 혹은 비평의 텍스트들이 말하는 권오상과 실제 그의 입을 통해 증명되는 권오상 사이에는 뭔가 괴리감이 있었다. 무거운 조각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가벼움을 추구한 그의 조각이 ‘정반합’의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낸 것처럼 ‘합(合)’을 찾고 싶었다. 작품을 보면 사람이 보이기 마련. 기자의 눈에 비친 권오상 작가는 엉뚱하기도 하고 위트가 넘쳐 보였으며, 때론 반항아적인 기질도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에 불과할 뿐, 한 번 더 꼬아서 생각해보면 권 작가는 너무나 깊고 심오한 세계관과 예술관을 갖고 있지만 대중에겐 아주 쉽고도 재미있게 의도를 전달하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인지도 모를 일이었다.권 작가에 대한 생각을 확신하지 못한 채 페리지 갤러리에서 한창 전시 중인 그의 신작들을 보는 동안에도 머리와 가슴은 따로 놀았다.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작품들 앞에서 ‘숨겨진’메시지를 찾으려 물음표를 떠올려보다가도 이내 작품이 품고 있는 특유의 상상력과 유머, 그리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낯선 형태에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뭐랄까.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들의 비일상적인 조합에서 느끼는, 그러나 긍정으로 가득한 현실 도피의 감정이랄까. 신기한 동화 속 세상 같기도 하고, 코믹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기도 한 작품들은 그래서 더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다. “왜 하필 ‘부엉이와 하키 스틱’이었을까” 혹은 “‘신발과 파인애플’은 그래서 어쩌란 것일까” 식의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매스모빌’의 오브제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에 이르기까지 언제나처럼 그렇게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내 안의 이야기들을 끌어냈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보는 사람마다 자기 식으로 던져질 이 ‘질문들’이 바로 권 작가의 의도이자 메시지이고 ‘소통’이다. 작품을 통해 어떤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지기를,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철저히 반(反)하는 권 작가 나름의 소통법은 이처럼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기억, 이야기에서 비롯된 자기만의 감상을 권하는 것이다. 막상 조합의 방식을 알고 보면 허탈하기까지 한, 일상 속 사소한 사물들을 갖다붙이는 방법 또한 ‘일상’이라는 화두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고 보면 ‘가벼운 조각’을 하고 싶어 사진이라는 매체를 택한 그의 가치관은 늘 같은 맥락에서 일관되게 유지돼온 셈이다. 특별하지 않아서 더 충만한 상상력
권 작가는 데뷔 이후부터 줄곧 ‘핫’한 작가였다. 예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데뷔전을 갖고 그 후로도 쭉 화제를 모으며 대중의 관심선상에 있었다. 다른 건 모두 차치하고 일단 사진이라는 평면으로 조각이라는 입체를 만들어낸 사진 조각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미술계 안팎으로 뜨거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단지 두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측면에서만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작품 시리즈인 ‘데오도런트 타입(Deodorant Type)’, ‘더 플랫(The Flat)’, ‘더 스컬프처(The Sculpture)’ 등에는 끊임없는 반증과 재구성을 통해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고자 한 그만의 독창적인 세계가 존재했다. 그러니 관객 입장에서 그의 작품을 만난다는 건 어쩌면 즐거운 ‘놀이’의 하나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전시는 전부 신작이더군요. ‘매스모빌’은 형태적으로도 낯선 감이 있어요.
“작년부터 사진 조각 덩어리들이 붙어 있는 ‘매스 패턴즈’를 선보이고 있어요. 그 덩어리들의 엉킴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등의 조각 작업에서 변형된 겁니다. 대리석 발목이 끊어질까 봐 뒤에다가 나무나 과일, 천, 아기 천사들을 붙였던 것처럼 내용적으로 의미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구조적 필요성에 의해 덩어리들을 연결하는 것이죠. 그러던 와중에 갤러리 측으로부터 영구 설치될 작품을 의뢰받아 만든 게 바로 ‘매스 모빌’이에요. 지난해 천장에 매달린 작품을 시도한 적이 있는 데다 ‘매스 패턴즈’의 덩어리들이 따로 분리돼 날아가는 모빌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리던데요.
“칼더의 영향이라기보다 모빌이라는 형태를 생각하면서 ‘그래, 칼더의 모빌이 있었지’ 하고 생각하게 된 거죠. 오히려 칼더의 ‘스테빌(stabiles: 정지된 조각)’에서 영향을 받은 건 ‘뉴 스트럭처’예요.” ‘뉴 스트럭처’ 시리즈는 잡지에서 찢어낸 이미지를 철사로 만든 틀에 붙여 실제 오브제처럼 만들고, 다시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줬던 ‘더 플랫’ 시리즈의 플랫들이 사진 밖으로 튀어나온 형태 아닌가요.
“맞습니다. 이번 전시작 중 ‘2014년 4월’이라는 작품 속의 사물이 튀어나온 것도 있어요. ‘더 플랫’ 작품이 2003년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왜 실제 입체물 자체를 전시하지 않느냐고들 말했어요. 그런데 사실 대형 사진으로 촬영했기 때문에 그럴싸하게 보인 거지 그냥 입체 자체는 볼품이 없어서 그랬던 거거든요. 하지만 언젠가는 좋은 방법으로 플랫들이 실제 공간에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10년 만에 실현된 거죠.”
모두가 궁금해할 것 같은데요, 작가님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들의 조합은 어떻게 이뤄지는 건가요.
“솔직히, 즉흥적으로 갖다 붙이는 게 많아요. 저는 예술이 인간 고뇌의 상징이니 뭐니 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어차피 저는 직업이 작가이고, 그런 면에서 제가 무엇을 만들든 ‘아트’가 될 수밖에 없어요. 또 인간의 뇌 속은 누구나 한정적이고, 제 라이프스타일 또한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가령 귀를 자른다든가, 폐렴에 걸린다든가, 부인을 여러 명 둔다든가 하는 식으로 예술가 하면 떠올리는 특정한 이미지와는 아주 거리가 멀죠. 또 하나 제가 생각하는 미술 작품의 감상법 혹은 소통법 자체가 관객 중심이에요. 작가가 여러 상황을 제시할 순 있지만, 관객들이 제 작품 앞에서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그로 인해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단 생각입니다. 제 작품엔 제가 갔던 곳, 작업실의 물건들처럼 제 생활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처럼 특별한 걸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더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신작엔 아예 실제 물건이 들어가기도 했어요.” 그걸 두고 ‘실제와 허구의 경계’라고 해석하는데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긴 한데, 사실 만들기 바쁘거나 구조적으로 봤을 때 실제 사물이 더 낫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해요. 제 작업실의 모토는 ‘완성’이거든요.(웃음)”
그런 얘기를 하면 농담처럼 듣지 않나요.
“맞아요. 근데요 사실 직업 미술가는 한 작품에 대해서 그렇게 대단히 많이 고민할 시간이 없어요. 아이러니한 게 깊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작가로 등단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그 반증이죠.”
조각에 대한 반감 혹은 예찬
그는 조각가다. 변함없는 사실에 한 번 더 방점을 찍는 건 우리 모두 가끔은 그가 조각가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조각이 먼저”라고 0.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는 권 작가가 사진 조각을 하게 된 것도 어쩌면 조각에 대한 깊은 애정의 발로였다. 물론 그 시작은 조각의 무게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지만.
사진 조각의 개념이 생긴 건 좀 의외의 배경이더군요.
“대학 입학한 첫날, 다들 한껏 치장하고 멋을 부리고 온 신입생들에게 작업실 풍경은 충격적이었어요. 영화 속에서 보던 크고 시커먼 작업실 그대로였는데, 대부분 조각 작품이 무겁다 보니 옮기다 다치기도 하고 기계 때문에 다치는 일도 종종 있었죠. 무엇보다 선배들이 작업한다고 후배들을 동원하곤 했는데, 밤을 새워 도와주고도 고맙다는 인사 한 번 못 받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런 환경과 상황에 대한 불만이 생기면서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안 해도 되는, 가볍고도 조각의 볼륨감은 있는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사진이 눈에 들어온 건 가까이 있던 재료라는 점에서 선택하게 된 거고요.”
모험이었을 텐데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던 건가 봐요.
“생각은 대학 2학년 때부터 했는데 실제로 가능성을 본 건 군에 입대하기 전 공룡 종이접기 등을 보면서였어요. 종이가 입체가 된다면 사진도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1998년 제대하자마자 사진으로 인물 조각을 만들었죠. 그때의 확신은 ‘이제 데뷔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그렇게 3학년 때 포트폴리오를 들고 아트 선재와 성곡미술관을 무작정 찾아갔죠. 당연히 김선정 씨도 이원일 씨도 못 만나긴 했지만, 그해 가을 양쪽에서 모두 전시를 했어요.” 그때부터 줄곧 잘나가는 작가로 사신 거네요. 스스로를 평가해보면 어떤가요.
“고등학교 때 감각이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봤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감각을 타고난 사람들은 미술을 안 하더라고요. 너무 쉬운 거예요. 그러고 보면 감각도 적당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글쎄요, 감각이 좋긴 한데 욕망도 커서 일반적인 작가와는 좀 달라요. 욕망을 성취하는 방식 자체도 다른 것 같고요. 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데 미술에서만큼은 그런 면이 있는 듯해요.(웃음)”
사진과 조각, 부등호로 표시해보면 어느 쪽인가요.
“무조건 조각이죠. 정말 위대한 분야예요. 전통적인 조각이 싫어서 사진 조각을 했고, 많이 만들고 싶어서 ‘더 플랫’ 시리즈를 했는데 람보르기니 구조물을 만들면서는 본격적인 전통 조각도 하게 됐어요. 사실 시작은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에서 전시하는 첫 한국 작가가 되면서 넓은 공간을 다 채우기 위한 아이디어를 찾다가 납작한 슈퍼카라는 답에 이르게 된 것이었어요. 그 당시에도 사진가냐 조각가냐 하는 질문이 많을 때라 ‘그래, 내가 잘하는 조각을 보여주마’ 하는 삐딱한 생각으로 한 거였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엄청난 우여곡절이 있었고 물리적, 심리적 고초를 겪었어요. 그 덕분에 조각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면서 그간 제가 가진 태도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어요. 조각이 정말 멋진 분야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 거죠.”
가벼운 조각에 대한 니즈에서 시작했지만, 지금 사진 조각을 하는 건 무게와는 상관없지 않나요.
“그렇죠. 브론즈로 람보르기니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 무게감 혹은 운반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고요. 요즘은 거의 인터넷 검색을 해서 얻은 이미지로 사진 조각을 하고 있는데 진짜 나사 하나까지 정확하게 표현이 가능해져요. 그러다 보니 사진 조각을 통한 일상의 표현이 오히려 실제 생활과 더 밀접한 측면이 있죠. 인물을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세계적인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반신상 또한 20대 시절부터 현재 보청기를 낀 사진까지 다 섞어서 만든 것이니 그것이야말로 진짜 아니겠어요.”
작가님이 등장하는 인물상이 나올 가능성도 있나요.
“작가가 등장하면 대중이 좋아하긴 하겠지만, 굳이 하려고 하진 않아요. 어차피 작가는 모든 작품이 자화상 같은 거예요. 남을 만들어도 결국은 자신을 만드는 거죠.”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