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진원지 유럽

유럽은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의 위험요인이었다.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로 대변되는 유럽 내 위험 국가들은 그동안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유럽 경기의 불확실성이 크게 낮아지면서 위험 국가들의 국채 금리가 하락하고 주가도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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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럽 국가의 증시를 포함한 유럽 증시의 상승세는 특히 2013년 4분기 거셌다. 김일혁 하나대투증권 선임연구원은 그 배경을 네 가지에서 찾는다. 지난해 11월에 발표된 3분기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이 2분기 연속 상승하는 등 경기 회복에 대한 확신이 강해졌고, 유럽중앙은행(ECB)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완화된 통화정책을 펼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는 점. 여기에 유럽 증시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밸류에이션이 낮다는 점, 달러화 대비 유로화의 낮은 가치로 수출이 긍정적이라는 점 등도 주가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상반기까지는 무난히 상승할 듯
지난해 유럽 증시를 이끌었던 이런 요인들은 2014년에도 유효해 보인다. 그 첫째 근거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다. 최근 유럽 제조업 경기를 판단할 수 있는 제조업 PMI가 31개월째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ECB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둘째, ECB의 통화정책 완화 기조의 유지다. ECB은 지난해 11월 예상을 깨고 금리를 인하하면서 경기 부양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나아가 1월 통화정책회의에서는 추가 조치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셋째, 남유럽 국가 국채 금리의 추가 하락이다. 지난해 4분기 주가 랠리의 영향으로 선진 유럽 국가들의 주가지수 밸류에이션은 10년래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그 사실만으로는 주가에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남유럽 국가의 국채 금리가 올 1분기에도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불확실성 완화에 따른 밸류에이션 상승은 단기적으로 더 진행될 수 있다.

넷째, 무역수지다. 지난해 3분기 이후 유로화 가치가 상승했다. 이로 인해 낮은 유로화 가치로 수출이 증대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약해졌다. 그렇지만 유로화 가치 상승에도 불구하고 유로존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확대되고 있다. 유로화 가치 상승이 유로존 수출 증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유럽 증시에 위험요인도 있다. 가장 큰 위험 변수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양적완화를 축소하면 유럽 주가 상승세가 약해지거나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은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 금리 하락이 진행되고 있어 그 같은 상황을 우려할 시기는 아닌 듯하다. 그 시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채권 매입 규모가 현재의 절반 수준이 되는 올 2분기 말이 되면 그런 우려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이루어지더라도 올해 중반까지는 유럽 선진국 증시가 양호하리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유럽 선진국 증시는 올해 중반 상승세가 꺾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상승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남유럽 증시 회복은 시간 필요
유럽의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최근 유럽 증시의 상승세가 무섭다. 독일, 영국 등 선진국뿐 아니라 재정위기의 주범 국가들이었던 소위 남유럽 국가들의 증시도 지난 7월 이후 평균 두 자릿수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남유럽 증시는 일단 저점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이전 고점 대비 그리스 증시의 최대 낙폭은 91%를 기록했고,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스페인 증시 역시 최저점까지 각각 70% 안팎의 낙폭을 기록했다. 사실상 국가 디폴트라는 최악의 상황은 벗어난 것이라면 이제 문제는 추가 하락보다는 반등의 폭과 강도가 될 것이다. 각국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노력도 증시의 리스크를 낮추고 있다.

이 같은 환경을 감안하면 남유럽 증시의 회복 또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남유럽 증시들은 2007년 이후 적게는 60%에서 많게는 무려 90% 이상 폭락했다. 유로존 탈퇴나 국가 디폴트와 같은 최악의 상황은 비켜나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저점은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김중현 신한금융투자 글로벌팀장은 그러나 “최근 남유럽 증시의 반등은 급락 이후의 기술적 반등의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일부 경제지표들의 개선을 근본적인 펀더멘털의 개선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아직은 남유럽 증시에 대한 시각을 방향성보다는 변동성 중심의 박스권 흐름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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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별 접근 역시 제한적인 수준에서 선별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 내수보다는 수출 중심의 경제활동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만큼 대형 에너지 기업 중심의 관심이 적절해 보인다. 또한 금융권 구조조정이 여전히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자본건전성이 높은 대표 은행들의 주가는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스 4대 은행들은 자본 확충이 마무리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올해 이후 ECB 감독 체제에서 드러날 수 있는 잠재 리스크와 낮은 주가 수준을 감안하면 변동성이 높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런 이유로 유럽 증권 전문가들은 국가별 접근보다 개별 종목을 중심으로 접근하기를 권한다. 이용훈 신한금융투자 글로벌사업부 팀장은 유럽의 굴뚝으로 불리는 독일의 자동차·기계 종목, 스페인의 글로벌 의류업체 등을 관심 종목으로 추천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한 독일 자동차업체 중에서는 유럽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 폭스바겐이 단연 돋보인다. 폭스바겐의 2013년 판매 대수는 전년 대비 970만 대 증가했다. 폭스바겐 계열인 아우디와 포르쉐 등 럭셔리 카의 매출 증가, 특히 세계 최대 자동차 소비시장인 중국 시장에서 16% 증가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올해에도 골프, 폴로, 시트(Seat), 스코다(Skoda) 등 중가 브랜드와 아우디, 람보르기니, 포르쉐 등 럭셔리 브랜드의 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대 리테일러인 스페인의 인디텍스도 성장세가 무섭다. 우리에게 익숙한 글로벌 브랜드 자라(ZARA), 마시모두티(Massimodutti) 등을 보유한 회사다. 일찌감치 유럽 시장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을 공략한 덕에 유럽 재정위기에도 스페인 증시에 상장된 종목 중 유일하게 매 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그 덕에 ‘스페인 유일의 안전자산’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자라는 최근 중국에 온라인 시장을 열며 이 시장에서의 매출이 30% 정도 성장하는 등 기대가 커지고 있다.

스페인 증시에 상장된 아마데우스도 추천 종목에 포함됐다. 아마데우스는 세계 항공 시스템 1위인 알테아시스템을 보유한 회사로 경기 불황에도 유럽 2위 저가 항공사인 이지젯과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2013년 하반기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도 알테아시스템을 도입, 발표했다. 글로벌 경제 회복에 따른 여행객 증가가 전망되는 가운데 최근 클라우딩 컴퓨팅 기반의 호텔 정보기술(IT) 서비스업체인 뉴마켓 인터내셔널 인수로 사업 확장도 꾀하고 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