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현지 르포-재무부·중앙은행·금융기관
위기일까. 기회일까.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브라질 경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브라질은 브릭스(BRICs)로 통하며 중국, 인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신흥국으로 통했다. 하지만 미국의 양적완화(QE) 축소 움직임의 영향을 받은 신흥국들이 위기에 처하면서 브라질 또한 위기설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신한금융투자 글로벌리서치팀은 지난 8월 직접 브라질을 방문해 브라질 경제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취재 과정에서 브라질 재무부와 중앙은행 등 10여 곳의 관련 기관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무려 23시간에 걸친 항공기 이코노미석과의 사투 끝에 도착한 브라질 상파울루. 장시간의 비행에 녹초가 된 몸을 추스르고 출발한 첫 일정은 산투스 항구였다. 상파울루에서 자동차로 약 50분 거리에 위치한 산투스 항은 남미 최대의 수출 항구다. 그럼에도 현재 산투스 항은 브라질의 열악한 인프라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턱없이 부족한 항만 시설로 인해 선박이나 컨테이너가 대기해야 하는 시간은 갈수록 늘고 있다. 비단 산투스 항뿐만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전 세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브라질의 인프라 환경은 144개 국가 가운데 107위에 머무르고 있다.경제 발목 잡는 열악한 인프라
이처럼 열악한 인프라 환경은 세계 최대의 자원부국인 브라질의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브라질 정부가 인프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추진하고 있고, 이를 통해 경기 회복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찾아가본 산투스 항구는 을씨년스러웠다. 비단 가랑비가 흩뿌리는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주변 도로는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데다 무질서하게 높이 쌓여있는 컨테이너 무더기는 어지러울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부산항이나 울산항을 인천국제공항에 비유한다면 산투스 항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수준이라고 할까. 산투스 항을 둘러보면서 받은 느낌은 브라질이 분명 중요한 갈림길에 서있다는 점이었다.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집권했던 지난 8년 동안 브라질은 원자재 슈퍼사이클의 수혜를 마음껏 누렸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인프라 투자에는 소홀했다. 잠재성장률을 안정적인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인프라 병목 현상을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는 현 정부의 진단은 정확하다.
주말이 지나 본격적인 현지 취재 활동을 위해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로 향했다. 국내선 전용인 상파울루의 콩고냐스 공항에서 브라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는 15분에 한 대씩 운항하고 있었고 거의 대부분 표가 매진이었다. 이 정도의 수요라면 현재 추진하고 있는 고속철도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15분에 한 대씩 줄지어 활주로를 이륙하는 비행기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고속철도 건설을 앞장서 반대하고 있는 게 거대 항공 업계라는 말이 단지 우스갯소리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브라질리아 공항은 상파울루의 구아룰류스 국제공항보다 작은 규모였지만 한참 터미널 확장 공사가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었다. 상파울루에서도 도로 확장 공사나 신축 중인 건물 공사 현장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월드컵과 올림픽이라는 대형 이벤트가 가지는 의미는 단지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를 계기로 브라질에 가장 필요한 인프라 환경의 개선이 진행 중이었다. 브라질 재무부의 국채운영국과의 미팅에서는 정책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아무래도 정부 조직의 특성상 경제 전망에 대한 부분은 민간 금융기관에 비해 긍정적인 성향을 나타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토빈세(금융거래세) 폐지의 배경에 대해서는 국채운영국 공무원들도 시장과의 소통이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토빈세가 투기적인 단기 외화유동성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세인 만큼 미국이 출구전략을 고려하는 시점에서 그 목적이 완료돼 폐지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토빈세는 폐지된 것이 아니라 세율이 6%에서 0%로 인하된 것이며,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든지 다시 세율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비과세 협약의 폐지 여부에 대해서는 분명한 어조로 폐지할 이유도 없고, 폐지할 생각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특히 토빈세와 달리 여러 나라와 체결하고 있는 비과세 협약을 폐지할 경우 외국인 투자 자금의 유입에 부정적 요인이라는 점에서 경우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브라질 재무부 “고금리 정책 아니다”
또한 브라질이 외국인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냐는 국내에서의 시각도 사실과는 다르다. 브라질 정부는 지난해 기준으로 정부 재정 수입의 13%를 이자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이는 다른 신흥국 평균인 8~9%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임을 재무부도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으며, 앞으로 이러한 부담을 줄여가기 위해 장기적으로 시중금리의 하향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거시경제 안정을 통해 현재 브라질 시중금리에서 3%포인트 수준을 차지하고 있는 리스크 프리미엄을 줄여나갈 계획을 갖고 있었다.
중앙은행과의 미팅에서는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경제전망치에서 더 이상 나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기관 이외에 많은 해외 투자은행(IB)들과의 미팅을 통해서는 브라질 경제의 현주소와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브라질 최대 은행인 이타우 은행과 산탄데르 은행을 비롯해 HSBC와 도이치뱅크, 바클레이스 등 10여 곳의 민간 금융기관들과 미팅을 가지면서 의견을 교환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들이 말하는 가장 공통적인 이야기는 브라질 경제가 리밸런싱(rebalancing)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시각이었다. 2000년대 중반 원자재 슈퍼사이클의 수혜 속에 브릭스의 선두주자로 각광받았지만, 그와 같은 시각에는 다소 과도한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브라질에 대한 눈높이의 조절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공통된 시각은 바로 그러한 리밸런싱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과도한 쏠림 현상이 지나치게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두 달간 헤알화가 두 자릿수의 급락세를 나타내고 시중금리가 3%포인트 가까이 치솟는 것 또한 결코 브라질의 펀더멘털을 정확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 금융기관들에서 실제로 외환과 채권의 매매를 담당하는 트레이더들로부터는 한국에서 알기 어려운 실질적인 시장 내에서의 매매 동향을 들을 수 있었다. 외환 트레이더들이 전해준 헤알화 수급 상황은 흥미로웠다. 최근 헤알화가 가파르게 하락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시장에서 헤알화를 내다 팔았던 주된 주체는 브라질 내 거액 개인 투자자들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출구전략을 들고 나오면서 5월 이후 신흥국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이들 거액 개인 투자자들이 일제히 헤알화 자산을 달러로 바꾸는 매매에 나섰다는 것이다. 반면에 미국이나 유럽, 중국 등의 대형 기관투자가(real money investors)들로부터 헤알화를 팔겠다는 매도 주문은 거의 받은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안전자산인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빈부격차가 심한 브라질의 부유층이 헤알화를 대거 내다팔면서 헤알화 가치가 급락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개인들의 통화 매도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헤알화의 과도한 하락세가 곧 진정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했다.
채권 트레이더들이 전해준 브라질 채권 시장의 수급 동향 역시 단기 매매에 따른 영향이 가장 크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채권 시장에서의 주된 매도 주체인 단기 투자에서 손실을 본 브라질 국내 헤지펀드들이 일제히 손절매에 나섰다는 이야기다. 반면 외환시장과 마찬가지로 미국이나 유럽의 기관투자가들로부터 브라질 채권에 대한 매도 주문은 크지 않으며, 최근에는 일부에서 매수 타이밍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줬다. 실제로 브라질에 다녀온 이후에 발표된 외국인 투자 동향을 보면 8월 중 브라질 채권 시장에서 외국인들의 순투자 규모가 전월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직접 다녀와본 브라질은 한국에서 우려했던 것보다 오히려 평온했다. 당시 헤알화의 하락폭이 심화되고 금리 상승세도 계속되는 상황에 대해 현지 금융권에서는 과도한 쏠림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한편 신한금융투자 일행이 브라질에 체류하는 동안에 중앙은행은 대대적인 통화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현지의 반응은 중앙은행의 의지가 보기 드물게 강력하고, 시장참여자들도 정부의 외환 방어 의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위기였다.
이번 브라질 현지 탐방 이후 헤알화는 10% 반등했고, 시중금리 하락에 따라 채권 가격도 반등했다. 브라질 경제성장률이 장기 추세 수준인 3%대 초반까지 올라서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국내 일각에서 제기됐던 과도한 위기설은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시나리오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시장을 억눌렀던 불확실성과 불안심리의 안개는 걷히고 있다. 브라질 채권이 가지고 있는 메리트가 다시금 살아나고 있는 시점이다.
브라질리아·상파울루=김중현 신한금융투자 글로벌리서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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