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의 성공, 열풍의 기폭제 될까, 볼륨 갖춘 산업군? “최소 4~5년 걸린다”

[SPECIAL REPORT] 전기차 시대 개막하나
올해 초부터 국내 증시에 불기 시작한 ‘2차전지 테마’ 열풍의 진원지는 미국 전기자동차 제조 업체 테슬라(Tesla)다. 이 회사가 한번 충전으로 기존 전기차의 두 배 수준인 300km 이상(확장형 선택 시 426km)을 달릴 수 있는 양산형 전기차를 내놓으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전기차와 전기차 제조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인 2차전지에 집중된 것이다.

테슬라가 내놓은 모델S는 ‘전기차는 작고 멀리 달리기 힘들며 불편하다’는 편견을 깨트렸다. 대용량 배터리를 채용, 한 번 충전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의 한계치로 여겨졌던 120~150km의 벽을 넘었다는 게 주목할 만한 포인트다. 모델S가 소형차가 아닌 중형차라는 점도 매력 요소로 꼽힌다. 이 모델은 원화로 7000만 원이 넘을 만큼 비싸지만 올해 상반기 1만 대 이상이 팔렸다. 전체 순수 전기차 판매량의 27%에 해당한다.

테슬라 열풍은 증시에 신호탄 역할을 했다. 모델S를 본 소비자들이 5~6년 후쯤으로 여겼던 전기차 시대가 목전에 다가왔다고 판단, 관련 주식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근 테슬라 차 한 대에서 화재가 발생, 잠시 주가가 출렁이기도 했지만 ‘메이드 인 테슬라’ 전기차의 상승세는 이어지고 있다.


2009년에 이은 두 번째 랠리
전기차 시대 개막에 대한 기대감으로 2차전지 테마가 약진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하이브리드카 열풍, 완성차 2차전지 업체 간 합종연횡 등이 연일 보도되던 2009년에도 관련주들이 일제히 상승하며 올해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배터리 제조 업체였던 삼성SDI와 LG화학의 주가는 각각 134%와 153% 뛰었다. 배터리 운영 시스템 제조 업체인 파워로직스의 경우 2008년 10월 1255원에서 이듬해 9월 1만7150원으로 10배 이상 폭등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전기차 관련주들이 각광을 받았다. 중국의 전기차 제조 업체인 비야디(BYD)의 2009년 주가 상승률은 465%에 달했다.

2009년 랠리는 강렬했지만 짧았다. 관련주들의 주가는 2010년 이후 급격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전기차와 2차전지 관련주들이 실적을 내놓지 못한 것이 전성기가 길지 못했던 원인이었다.

올해 랠리도 시작은 힘차다. 국내에서도 2차전지 셀을 제조하는 삼성SDI와 LG화학, 2차전지 부품인 양극재 생산 업체 엘엔에프, 음극재 업체 포스코켐텍 등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2차전지주 랠리에 대해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올해 상반기 미국 시장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4배가 늘어나는 등 본격적인 순수 전기차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미국을 중심으로 충전 인프라가 만들어지는 등 2009년과는 양상이 다른 만큼 2차전지 테마에 대한 관심이 한동안 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시장에서 2차전지 테마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실체가 아닌 기대감이 주가를 높인 측면이 크다는 견해가 여전히 우세하다. 특히 자동차용 2차전지에 국한해 보면 ‘테슬라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테슬라가 발표한 올해 전기차 판매 목표는 2만1000대이며 이 물량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원통형 2차전지는 1억2000만 개가량이다. 이는 세계 노트북용 2차전지 시장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차전지 업체의 한 해 실적을 좌지우지하기에는 미미한 물량이다.

2차전지의 또 다른 수요처인 하이브리드카 시장은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제조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특히 도요타는 지난해 배터리가 들어가는 자동차 시장의 75%인 115만 대를 독식했을 만큼 범전기차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다. 이들은 국내 업체들과 달리 주로 파나소닉 등 일본 업체로부터 2차전지를 납품받는 경우가 많다. 배터리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도요타의 경우 국내 업체들의 기반이 약한 니켈카드뮴(NiCd) 전지를 활용 중이어서 국내 업체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문경준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차와 2차전지 관련주의 중장기 전망이 밝은 것은 맞지만 여전히 정부 보조금 없이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시간을 두고 업계의 동향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긍정적인 변화는 전기차의 중심이 하이브리드카에서 순수 전기차로, 주력 시장이 일본에서 미국 및 유럽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하이브리드카를 포함한 범전기차 시장 규모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5.3% 늘어난 86만 대다. 최대 시장인 일본 시장 판매량이 정부 지원 종료로 12% 줄어든 반면 미국·유럽 시장 판매량은 각각 29%와 59% 늘었다. 범전기차 시장 중 순수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상반기 기준 4.3%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시장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 원가 절감 노력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는 것도 전기차 대중화에 긍정적인 요소다. 최근 일본 닛산은 순수 전기차 리프의 가격을 3만6000달러에서 2만9000달러 수준으로 낮췄으며 다른 업체들도 일제히 저렴한 전기차 모델을 준비 중이다.

국가환경기술정보센터에 따르면 전기차의 원가는 같은 차급의 가솔린차보다 2.5배 비싸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 정부가 1000만 원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 관련 산업을 장려하는 것만으로는 대중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업체들이 밀고 있는 리튬이온(LiB) 방식의 자동차용 2차전지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시기를 2~3년 후로 보고 있다. 제조원가가 합리적인 수준으로 떨어지고 충전 인프라가 확충돼야 순수 전기차가 하이브리드카를 대체할 수 있고, 니켈카드뮴이 아닌 리튬이온 전지의 시대가 열린다고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볼륨을 갖춘 산업군으로 자리 잡는 데까지는 4~5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증권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25억 달러 규모였던 자동차용 리튬이온 2차전지 시장은 올해 35억 달러, 2015년 78억 달러 수준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2017년이 되면 2013년 IT 제품용 리튬이온 전지 시장 규모인 연간 120억 달러를 넘는 132억 달러까지 ‘파이’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관수 흥국증권 연구원은 “발광다이오드(LED) 테마의 선두주자인 서울반도체의 주당수익률(PER)이 30배를 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신기술 테마주들은 고평가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며 “2차전지도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만큼 주가 향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적이 나오는 시기는 2~3년 후
증권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매출이 나오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2차전지 공급 사슬에 속해 있는 업체들의 투자에 신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어떤 거래선을 잡느냐, 협력 거래선이 유의미한 매출을 올릴 수 있느냐 등에 따라 주가의 희비가 엇갈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증권 업계에서는 공급 사슬 최상위 업체인 삼성SDI, LG화학과 관련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IT용 전지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만큼 자동차용 전지 시장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점유율을 가져갈 수 있다고 예상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자동차 제조 업체들의 경우 대부분 두 회사 중 적어도 한 곳과 거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삼성증권이 평가한 삼성SDI의 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의 가치는 5861억~2조2000억 원 수준이다. 이를 주가로 환산하면 3만 원 이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사업이 본격화되면 주가가 3만 원은 더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이 회사의 주력 납품처는 BMW이며 테슬라와도 납품 협상을 벌이고 있다. LG화학도 GM, 포드 등 10여 개 거래선을 가지고 있다. 현재 공급 물량 측면에서는 삼성SDI보다 우위에 있다.

소재 부문에서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등 주요 부문 1등 업체들을 주목하라는 게 증권사들의 조언이다. 현재 실적을 내고 있고 생산 설비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송형석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