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에서 생애설계와 자산관리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해외 선진 기업에서는 일찍부터 이런 교육을 실시해 왔다. 예를 들어, 미국 최대 목재 관련 기업 ‘와이어 하우저’는 1980년대부터 이 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다. 제대로 된 생애설계와 자산관리 교육이 종업원의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된다는 판단에서다.
노동조합에서 생애설계와 자산관리 교육을 실시하는 사례도 있다. 일본 세이코 엡슨 노동조합의 라이프 서포트(Life Support) 활동이 바로 그것이다. 조합원이 약 1만2000명인 이 회사의 ‘라이프 서포트 활동’은 생애설계와 생활설계로 구성된다. 생애설계란 이상적인 인생 목표를 구상하는 것이고, 생활설계는 인생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생활설계에서 노조가 신경 쓰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부분은 재무설계다.
세이코 엡슨 노조의 라이프 서포트 활동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이 무렵부터 노조의 역할이 임금 인상 투쟁과 노동환경 개선 투쟁을 위한 파업 중심에서 라이프 서포트 활동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임금 인상이나 노동 조건 개선만이 근로자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수단이 아니라, 제대로 된 재무 교육을 통해 불필요한 가계지출을 줄이고 가계자산 운용의 효율을 높이는 것 또한 그 방법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서였다.
현재 이 라이프 서포트 활동은 경영 지원 활동, 사회공헌 활동과 더불어 세이코 엡슨 노조의 3대 활동 부문 중 하나로 정착돼 있으며, 회사 내부뿐 아니라 일본 내의 다른 기업에도 이 활동이 전파되고 있다.
선진국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국내 기업에서 생애설계와 자산관리 교육에 대한 관심은 더욱 더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에서 생애설계와 자산관리 교육을 실시할 경우, 어떤 내용의 교육이 돼야 할 것인가? 몇억 원의 노후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재테크 교육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인생 100세 시대에는 현역시절보다도 퇴직 후 30~40년의 노후 생활이 훨씬 더 중요한데, 이 후반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 현역시절에 어떤 설계를 하고,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이 돼야 할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00세 시대에 인생 후반을 좌우하는 다섯 가지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그 첫째 리스크는 생각보다 오래 살게 되는 리스크 즉, 장수 리스크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맞아 그에 맞는 자산관리가 필요하다. 노후 자금 마련을 위한 자산관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퇴직 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의 준비다. 100세까지 한다고 가정할 때, 20세 후반에 취직을 해서 60세에 퇴직을 한다면 일하는 기간은 30여 년인 데 비해 은퇴 기간은 무려 40년이나 된다. 부족한 노후 자금 때문에도 그렇지만, 건강과 보람 있는 삶을 위해서라도 퇴직 후 무슨 일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수명이 70~80세일 때는 ‘공부-취업-은퇴’라는 삶의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인생 100세 시대는 ‘공부-취업-공부-재취업’과 같은 삶의 방식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준비를 현역시절부터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둘째는 건강 리스크인데, 문제는 너무나 당연한 사항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셋째는 자녀 리스크다. 자녀 문제로 인해 노후에 큰 고생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결혼한 자녀가 갑자기 찾아와 신용불량자가 되게 생겼다며 손을 벌리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자녀가 커갈수록 손을 벌리는 자금 규모도 커지고 그만큼 리스크도 커진다는 것이다.
자녀 교육과 결혼에 과다한 비용을 지출하고 궁핍한 노후 생활을 하는 것도 자녀 리스크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5060세대 648만 가구 중 60%에 해당하는 271만 가구가 은퇴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말하는 은퇴빈곤층이란 부부가 월 생활비 94만 원 이하로 살아야 하는 가정을 말한다. 은퇴빈곤층 전락 위험율이 이렇게 높은 것은 수명 연장, 금리 저하, 조기 퇴직 등에도 이유가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자녀 교육비와 결혼 비용의 과다 지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자녀 리스크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우선, 부부가 같이 자녀 교육과 결혼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 공통된 인식, 소신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공통된 인식과 소신을 갖고 올바른 자녀 경제 교육을 통해 자립심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자녀 교육비와 결혼 비용을 아낀 돈으로, 자신들은 3층 연금(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에 가입해야 한다. 100세 시대에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저생활비 정도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해 두는 것이 장수 리스크와 자녀 리스크에 대비하는 구체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에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저생활비 정도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해 두는 것이 장수 리스크와 자녀 리스크에 대비하는 구체적인 수단이다. 넷째는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구조 리스크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부동산 불패신화가 지배해 온 결과, 대부분의 우리나라 가정은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구조를 갖고 있다. 60대 이상의 가정만 보면 85% 정도가 부동산이다. 지나치게 부동산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가정의 자산구조는 자산관리의 원칙에서 보나, 부동산 가격 전망으로 보나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젊은 시절부터 합리적인 자산 배분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섯째는 저금리·인플레이션 리스크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두 자릿수였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최근에는 2%대로 떨어졌다. 반면에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이후 대량 살포된 자금이 언제 물가를 위협할지 모른다.
인플레가 진행된다는 것은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연 3%의 인플레율이 25년간 계속된다면, 원본 100만 원의 가치는 약 48만 원 즉, 절반 이하의 가치로 줄어든다. 노후에 대비해서 오랫동안 가입해 온 연금, 저축 자금이 이런 식으로 줄어든다면 후반 인생은 얼마나 힘들어지겠는가? 젊은 시절부터 공부를 해서 주식, 채권, 펀드, 변액보험, 변액연금과 같은 투자 상품에 일정부분 자산을 운용해 고수익을 내지 않으면 노후 대비가 어렵다. 그런데 투자 상품은 저축 상품과 달리 고수익을 낼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원금 손실을 볼 수도 있는 리스크가 따른다. 투자의 원칙과 투자 상품의 내용에 대해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강창희 미래와금융 연구포럼 대표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