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펀드 가입자들이 혼쭐이 났다. 미국에서 양적완화 이슈가 불거지면서 아세안 일부 국가에 대한 외국인들의 매도가 집중된 것.

자본 유출로 인해 통화는 약세를 보였고, 자본시장의 변동성은 높아졌다. 그러나 아세안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6억 인구의 내수시장을 가진 신흥시장. 아세안을 포기할 수 없는 4가지 이유를 짚어봤다.
[GLOBAL MARKET] ‘위기의 아세안’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4가지 이유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아직도 우리에겐 동남아라고 하면 후진국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열악한 인프라, 낙후된 생활수준,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 등 부정적 이미지가 뿌리 깊게 각인돼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더해졌다. 미국에서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이슈가 불거지면서 인도네시아, 인도 등 재정과 경상수지 적자를 겪고 있는 일부 국가에 외국인들의 매도가 집중된 것이다. 자본 유출로 인해 신흥국 통화는 약세를 보였고, 자본시장의 변동성은 높아졌다. 마치 1990년대 말의 아시아 외환위기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투자심리는 위축됐다.

그렇지만 아세안은 1990년대 말과는 체질적으로 달라졌다. 풍부한 천연자원 및 6억 인구의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높은 성장세도 유지하고 있다. 우리와는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도 역시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투자 관점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이하 아세안)을 어떻게 봐야 할까. 아세안의 경제 및 증시 현황, 그리고 위험요인에 대해 점검해보고, 투자 전략을 고민해 보기로 하자.

첫째, 아세안은 중국의 보완재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이전부터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지역개발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1990년대 들어서는 엔고, 자국 내 인건비 상승, 내수시장 위축 등으로 아세안 지역을 자국 기업의 생산기지로 본격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쿠릴열도(일본 vs 러시아),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일본 vs 중국), 스프래틀리 제도(베트남·필리핀·중국 포함 6개국) 등 주변국과의 영토문제로 인한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아세안의 전략적 중요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정치, 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리스크를 분산하고 지역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글로벌 기업들도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 아세안을 택하고 있다. 휴렛패커드(HP)는 2010년 이래 중국 비중을 줄이고 인도네시아에서의 생산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보다 중국의 높아진 인건비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매년 근로자들의 최저 임금을 10% 이상 인상하며, 내수시장 확대를 위해 주력하고 있다. 높아진 인건비 부담 때문에 노동집약산업의 경우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미얀마 등 저개발 국가들이 중국을 대체할 시장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둘째, 역내 투자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경제 발전 단계의 초기 국면에서 필요한 것은 자본이다. 개발도상국은 초기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성장을 위해서는 해외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 투자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투자가 본격화돼 경제가 성장하면 잉여자금이 발생하고, 저축이 늘어 다시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사이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GLOBAL MARKET] ‘위기의 아세안’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4가지 이유
아세안은 낮은 도시화율,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로 인해 향후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메콩 강 유역개발사업(GMS)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을 관통하는 메콩 강 유역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GMS를 통해 철도 등 인프라가 건설되면 역내 물류 및 운송비용이 감소돼 지역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메콩 강 유역을 관광지로 개발하고, 이를 통해 문화교류를 활성화시키는 일도 가능해진다.

셋째, 내수시장의 성장도 주목할 부분이다. 통상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소비수준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소득수준별 소비여력을 보면 소득수준이 높아지는 초기 국면에는 식료품, 의류와 같은 생필품 지출이 늘어난다. 인간의 생리적인 욕구가 충족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다음 단계는 컴퓨터, 자동차 등 내구재 소비지출이 증가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는 여행, 교육 등 서비스 부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중국의 보완재 시장으로 급부상
현재 아세안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600달러 수준이다. 소득수준이 증가하는 초기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경우에는 경제 발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어 구매력평가(PPP) 기준 8000달러를 돌파한 중국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와 같이 소득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 되는 국가의 경우 내구재 소비지출 증가가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아세안 역내 통합 가능성이다. 아세안은 지역 안보 환경을 논의하기 위한 느슨한 협의체로 시작됐다. 발전 과정을 보면 초반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 5개국의 선발회원국으로 시작했다가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 5개국이 추가로 가입하면서 현재의 10여 개 회원국으로 확대됐다. 현재 아세안은 유럽연합(EU)과 같은 경제공동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15년까지 아세안 단일 시장과 단일 생산기반을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금융 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는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됐다. 그러나 아세안은 여전히 높은 성장성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 기준 아세안 국가는 5% 내외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2013년에도 2012년과 비슷한 수준의 성장세가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 전망을 통해 2017년 아세안 성장률을 5~8%로 예상하고 있다.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저개발 국가의 경우 아직까지 높은 투자 수요로 성장성이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아세안의 성장성이 높은 만큼 부담해야 될 리스크도 상존한다. 1990년대 말, 경험했던 아시아 외환위기는 아직까지도 우리 뇌리 속에 남아 있다. 자본시장이 국제화된 만큼 외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인도네시아와 같이 쌍둥이 적자국의 경우 개별 국가 리스크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이 외에도 불완전한 시장경제 체제, 정치적 불확실성 등 역내 리스크 요인도 함께 고려돼야 할 요인이다.

주가 측면에서 본다면 아세안은 최근 주가 조정에도 높은 프리미엄이 부여되고 있다.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로 본다면 필리핀은 18.8배, 인도네시아는 13.5배에 달한다. 신흥국 평균 대비 할증돼 거래되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익성장성이 뒷받침되고는 있지만, 향후 이익의 변화 추이를 관찰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투자 관점에서 아세안에 대한 비중 확대 전략은 유효하다는 판단된다. 현재 국내 간접투자자들이 증권 펀드에 투자하는 금액은 공모 기준 110조 원에 이른다. 이 중 국내를 제외한 해외 펀드에만 31조 원이 투자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자금이 중국을 포함한 브릭스 국가에 투자되고 있다. 한편 아세안을 포함한 아시아 펀드는 1.3%에 불과해 특정 국가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중장기 관점에서 아세안 시장의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이 글로벌 자산 배분에 있어 유효할 것으로 판단한다.


오온수 현대증권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