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생산하는 신비의 미생물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처럼 쓰는 석유. 석유 자원 고갈에 대한 경고는 끊임없이 있어왔지만, 이제 석유가 없어지는 것은 코앞의 현실이 되고 있다.
[NEW TECH] 37년 후 석유 ‘제로’ 시대 ‘성큼’
지구에 매장돼 있는 석유는 2조 배럴 정도로 추정되는데, 지난 100년 동안 그중 절반을 이미 써버렸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써 대는 석유는 연간 270억 배럴 정도로, 이 추세가 계속 유지된다고 가정할 경우 37년 정도 지나면 석유 ‘제로’의 시대에 살게 된다. 실제로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석유매장량은 1조4747억 배럴로 전 세계가 37.5년 정도 사용 가능한 석유양이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석유를 대체할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그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효모가 당분을 먹고 맥주를 만들 듯, 잡초나 나무 찌꺼기를 먹고 휘발유를 만들어내는 미생물을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 이상엽 특훈교수와 최용준 박사는 ‘대사공학’을 이용해 나무나 잡초 등 먹을 수 없는, 어찌 보면 쓸모없는 식물에서 휘발유를 생산할 수 있는 대장균을 개발했다는 연구 성과를 세계적인 과학 저널인 네이처 최신호에 발표했다. 대사공학은 세포의 유전자를 변형하거나, 없던 유전자를 추가하는 등 인위적 조작을 통해 원하는 화합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인데, 이 교수는 이 기술을 이용해 올해 8월에는 나일론 같은 산업용 화학원료 생산에 필요한 미생물 균주를 쉽고 빠르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발표하기도 했다.

2010년 미국 연구진이 식물을 이용해 디젤로 불리는 경유를 만드는 미생물을 개발했다는 연구 내용을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발표했지만, 휘발유를 만든 미생물을 만들어낸 것은 이 교수팀이 처음이다. 석유에서 얻는 휘발유는 자동차는 물론 비행기 등의 연료나 도료, 고무가공, 플라스틱 생산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이번 이 교수팀의 성과에 대해 많은 연구자들은 에너지난 해소는 물론 환경보호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휘발유는 원유를 섭씨 30~200도로, 경유의 경우는 섭씨 250~ 300도 이상 가열해야 기체로 바뀌어 분리해낼 수 있다. 휘발유나 경유 모두 탄소와 수소로 이뤄진 사슬 구조의 탄화수소 화합물인데, 차이는 탄소의 개수다. 휘발유는 탄소 수가 4~12개지만, 경유는 13~17개로 더 길다. 대장균은 식물을 먹고 탄소 16~18개로 이뤄진 지방산을 합성한다. 이 때문에 대장균을 이용해 경유를 합성하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이에 연구진은 대장균의 유전자를 변형해 탄소 10~12개의 지방산을 만들게 했고, 또 다른 변형 유전자로 여기서 탄소를 하나 더 떼어내 몸 밖으로 배출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대장균은 탄소 9~11개로 이뤄진 휘발유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처럼 주목받고 대단한 기술이기는 하지만 아직 상용화까지는 길이 멀다. 이 교수팀은 이번 기술을 이용해 대장균을 키우는 배양액 1리터에서 휘발유 580mg을 얻었다. 미국 연구진이 대장균에서 경유를 만들어낸 것보다는 효율이 높지만, 아직 상용화를 하기에는 ‘극미량’의 수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효율을 수십 배 이상 올려야 하지만 이 교수팀의 대사공학 기술 수준을 고려한다면 상용화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유용하 동아사이언스 편집장(더사이언스팀)